[편집실에서]넘버4를 위한 법
할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1번은 며느리, 2번은 손녀딸, 3번은 아들이었다. 4번은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였고 5번은 가정부였다. 6번이 할아버지였다는 것이 친구의 이야기였다. ‘3번아, 잘 있거라. 6번은 간다’는 것은 ‘아들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라는 의미였다.
이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된 것을 보면 네티즌에게 어느 정도 공감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렇게 자랑스런 아들이 3번이었던 것이 불만스러웠을 것이고, 자신의 처지가 강아지보다 못한 6번이었다는 것이 불만이었을 것이다.
이 인터넷 글의 끝은 ‘당신은 몇 번인가요’였다. 가족끼리 순위를 따지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서 굳이 ‘먹는 것’ 순위로 따지자면 내 경우도 3번이다. 단지 순위가 좀 다르다. 딸이 1번이고, 아내가 2번이다. 외식을 가려면 딸이 먹고 싶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으로 아내의 취향이 두 번째다.
<주간경향> 편집실이 이번 주에 표지 이야기로 삼은 것은 4번에 관한 것이다. 강아지를 비롯한 반려동물,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 있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표지 회의를 하면서 격렬한 토론이 이뤄졌다. 반려동물 이야기만 나오면 어떤 장소든 논쟁이 뜨거워지게 마련이다. 보신탕 논쟁 때문이다. 최근 리우 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딴 기보배 선수를 둘러싸고 모델 최여진 모친의 SNS 글 때문에 보신탕 논쟁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주간경향>은 보신탕 논쟁이 아니라 동물학대에 관한 법의 제·개정에 초점을 두기로 했다.
편집실에서 표지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청와대의 호화 식단에서 샥스핀 요리가 언급돼 동물보호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강에서는 한 무속인이 굿을 한 후 죽은 소와 돼지를 버려 눈길을 모았다. 이래저래 동물보호가 한 주 동안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표지 이야기의 또 다른 회의에서 회의 참석자 한 명은 자신의 집에서는 반려동물이 4번이 아니라 3번이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더워 에어컨을 틀자고 해도 꿈쩍도 안 하던 넘버1(아내)이 강아지가 헥헥거리자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강아지가 이 집에서 넘버3라고 할 만하다.
넘버3이든 넘버4든 반려동물은 이제 우리 생활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라고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만 해도 거의 매일 엘리베이터에서 반려동물을 보게 된다. 가끔 반려동물 때문에 아파트 게시판에는 이런저런 권고문이 달리기도 한다.
아파트 밖에서는 길고양이를 놓고 주민들끼리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자, 이를 아파트 밖으로 몰아내려는 주민과 새끼에게 먹이를 주려는 주민의 신경전이다. 이쯤 되면 서로 간의 배려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약속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주간경향>은 이런 점에 주목했다. 우리 곁으로 바싹 다가온 ‘넘버4’에 대해서도 지금의 우리 사회에 걸맞은 법이 필요하다.
<윤호우 선임기자hou@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