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을 때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받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에요"

송윤경 기자 입력 2015. 4. 29. 19:11 수정 2015. 5. 4. 11: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랑받을 때의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받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에요"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4월 강연은 <정희진처럼 읽기>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 정희진씨(사진)가 '사랑과 권력'을 주제로 진행했다. 신선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힘을 가진 글쓰기로 사랑받아온 그의 '사랑 이야기'는 역시 달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리했고 통쾌했다. 권력관계·제도·정상과 비정상·윤리 등 연애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내내 이어졌고 달랑 칠판만 갖고 진행됐는데도 80여명의 참석자들은 그녀의 호흡을 따라가며 자주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2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정희진씨의 강연 내용을 정리했다.

<정희진처럼 읽기><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 정희진씨가 지난 2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사랑과 권력'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제가 자기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요, 자기소개가 사실 인생의 전부죠. 사랑에서도 상대방에게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잖아요? 가장 편의적으로 제 소개를 하자면, 시간강사 즉 비정규직 노동자이고요, '사랑에 관하여' 강연장인 이 자리에서 저를 소개하자면, 저는 사랑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행동과 태도, 즉, 사랑의 정치학과 윤리학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걸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걸 평가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훌륭한 사람이었으나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이런 말은 거짓말이라고 봐요. 특히 저는 헤어질 때의 태도를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봐요. 인생에는 여러 종류의 '헤어짐'이 있죠. 직장 그만둘 때도 헤어지는 것이고, 두 시간 후 오늘 강의가 끝날 때도 헤어지는 것이고요. 두 시간 후 저의 태도를 보고 저를 판단할 수 있는 거죠. 즉 저는 '품성론자'입니다. 인간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여기까지가 제 소개입니다. 사실,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소개해요. 가정폭력에서부터 자주국방에 관심이 있다거나 혹은 저는 인간을 두 종류로 나누어요, 청소를 하는 인간과 안 하는 인간. 이렇게 소개하기도 하죠. 혹은 영화감독 장률과 미카엘 하네케의 광팬이라고 소개하기도 하고요. 최근 관심사는 한국사회의 유명인사 신드롬과 그 윤리에 관한 것이라고 자기소개를 할 때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소개를 하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구나'라고 좀 파악이 되지 않나요? (청중 보면서) 안 되고 있군요(웃음)

오늘 주제가 사랑인데요, 특히 '사랑과 권력'에 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사랑, 인간관계가 모두 권력의 문제죠. 권력관계라는 것은 곧 힘의 관계라는 얘기인데요, 힘이라는 건 '보살핌'이 될 수도 있고 '주먹질'이 될 수도 있죠.

저는 이성애 사회의 루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도 그렇게 부릅니다(웃음). 제가 인생에서 의미 있는 점을 세 번 봤어요. 세 분 다 똑같은 얘기를 하셨는데요, 제가 남자복이 없대요. 어느 정도까지 없느냐면요, 아버지나 배우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동료나 길 가는 남자, 남학생까지…. 일단 "너는 남자를 가까이 하면 큰일 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근데, 경험상 맞는 것 같아요. 남자 덕 본 적이 별로 없고, 더 문제는 남자를 보는 눈, 분별력도 없어서 맹한 타입이에요. 이렇게 자기가 어떤 타입의 인간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은 이성애에 국한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사랑은 너무 광범위한 주제지요. 영원한 사랑이나 '성공'한 사랑? 그런 건 없잖아요? 사랑에서 '성공'을 하면 뭐할 건가요? 결혼? 그건 제도죠? 굳이 말한다면, 사랑에서의 성공은 상호 성장을 의미하는데, 매일 매력을 갱신하는 사람은 드물죠. 인류의 0.00001%? 게다가 동시에 두 사람이 일신우일신, 발전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오래가는 게 사랑이 '잘 된' 걸까요? 오래가는 사랑도 없어요. 회자정리를 거스르는 관계는 없습니다. 우선, 누구나 죽잖아요? 그래서 전 사랑에 대해 고민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사랑이 뭐가 새삼스럽습니까. 다 안 되잖아요(웃음). 그냥 욕망이 있죠. 사랑하고 받고 싶다는 욕망이 사랑이라는 제도를 작동시키죠.

사랑은 일단 '제도'입니다. 제도에는 규범이 있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또한 강제가 있고요. '이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 그리고 구속력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랑에는 '정상'과 '비정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랑을 정상이라고 하고, 어떤 사랑을 비정상이라고 할까요? 이를테면 친구들끼리 그런 얘기를 합니다. 위로 몇 살, 아래로 몇 살까지 사랑이 가능한가. 나이 차이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더불어 정상 개념을 좌우하는 이슈죠. 제 경험은 아래로 10살, 위로 17살인 경험이 있는데요. 그러면 친구들이 '펜팔 친구 말고 섹스한 나이를 말하라'고 놀리죠(웃음). 세 번 째로 사랑에는 '윤리학'이 있습니다. 사랑과 존중, 폭력, 착취의 관계죠.

심리톡톡-사랑에 관하여' 4월 강연을 맡은 정희진씨.

이중에서 정상·비정상이라는 규범에 대해 더 들여다볼까요. 비정상은 '변태'가 아니라 제도 밖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흔히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사랑, 어떤 게 있나요? 혼외사랑, 가족 내 사랑, 동성애도 있을 수 있고 사회적 약자의 사랑, 노인의 사랑, 아줌마의 사랑, 죄수의 사랑 등이요. 보통 젊은이들이 나오는 연애 영화는 로맨스로 분류되는데, 앞서 말씀드린 분들이 나오는 사랑영화는 독립영화이고 퀴어영화로 분류되잖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랑의 기분은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사랑이죠. '중산층' '이성애' '선남선녀' '미혼'…. 이들의 사랑만 사랑이라고들 말해요. 그 외엔 변태, 불륜, 그냥 친구라고 말합니다. 사실, 사랑의 범위와 실제 행위는 엄청나게 넓지만 규범적으로 용인하는 사랑은 매우 협소합니다. 제도 밖의 사랑이 힘들면서도 열정적인 이유는 규범을 거스르는 용기와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자살도 하고 정체성 혼란도 느끼지요.

'제도 밖의 연애'에 또 뭐가 있나요? 인정받지 못하는, 당당하지 못한 연애요. 장애인, 빈민, 노숙자 그리고 SM(주:가학-피학적 성관계를 갖는 연인)? 저는 근데 이런 사랑을 다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일어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그런 사랑을 한다면 지지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사랑을 다 지지한다고, 하면 의문이 생기실 거예요. 뭐가 의문이세요? (청중 가운데서 '가족 내 사랑'과 'SM' 등의 답변이 나옴). SM이라는 것은 피학과 가학적 성애를 말하는데, 철저히 준비와 동의에 기초한 매우 기획된 실천이죠. 부지런해야 가능해요. 대개 섹스를 충동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섹스는, 아니 폭력이야말로 계획적입니다. 성범죄야말로 굉장히 계획적이죠. 문제는 진짜 폭력을 SM이라고 착각, 주장하는 경우죠. 사실 우리사회에는 사랑과 폭력이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SM 개념이 수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연애 중인 많은 젊은이들이 '밀당' 에 대해 관심이 많죠. 저는 밀당을 아주 싫어합니다. 일단, 밀당의 전제는, 더 사랑하는 쪽이 더 헌신하는 쪽이 약자라는 거죠. 연애에서'조차' 권력자가 되고 싶은 거죠. 연애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일반적 인간관계에서도 밀당이 있잖아요. 누가 먼저 문자를 끊나, 이메일을 끊나 이런 문제로 신경 쓰잖아요. 저는 밀당 대신에 협상을 제안하고 싶어요. 제가 밀당을 싫어하는 이유는 불필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해요. 약간, '저질 권력투쟁'이라고 할까?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밀당에 힘을 쏟는 대신에 그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거죠. 밀당은 굉장한 여성성을 필요로 해요. 여자들이 대체로 잘해죠. 밀당의 핵심은 이중성과 모순성인데요, 왜 여성이 강하냐면 '정숙하면서도 섹시하다' '남자를 잘 조정하면서도 남자 위에 있지 않는 현숙한 아내' 이런 말 있잖아요. 여성의 성역할 노동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게 '착한여자 콤플렉스' 인데요, 착한 여자와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다릅니다. 착한 여자는 좋은 거예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문제인 거죠. 착한여자 콤플렉스는 여자에게만 착한 것이 강요되는 것을 말하죠. 페미니즘이 반대하는 것은 착한 여자가 아니라 착한 여자 콤플렉스입니다. 저는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말이 무서워요. 페미니즘은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악담이죠. 착한 여자가 성공해야 좋은 사회 아닌가요. 여하튼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걸린 여자는 착하면서도 자기를 위해 다 챙겨야하기 때문에 굉장히 머리를 써야 합니다. 과로사 하기 쉽죠(웃음).

저는 '밀당을 잘 해야 연애를 잘한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명언이 있어요. '남자들이 말이 없는 것은 과묵해서가 아니라 화제가 없어서 혹은 무식해서다'. 말 많은 남자가 훨씬 낫습니다. 말 없는 남자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요. 오히려 위험한 남자입니다.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을 많이 하다 보니 '누가 안 때릴 남자냐' 이런 질문 많이 받는데요, 그건 알 수가 없어요. 하지만 어떤 남자랑 식당을 갔는데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실 감은 잡히죠. 제가 맨날 주장하는 게 '사랑'보다는 '존중'이거든요. 존중이 훨씬 어려워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밀당엔 더 사랑하는 사람이 '패자'라는 전제가 있어요. 실연의 고통을 인격의 성장이나 예술로 승화시키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사랑한 사람과 사랑받은 사람 중에 누가 더 성장할 것 같아요? 사랑한 사람이 성장하죠. 모든 문학 작품은 '그가 나를 떠났도다, 내가 남겨졌다' 이렇게 남겨진 사람의 시점이죠. '내가 너를 버렸도다' 이런 관점으로 쓰인 작품은 전 세계에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언어가 없어요.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언어를 가질 가능성이 높죠.

사랑이 여성에게 중요한 인생 문제인 이유는요, 남자는 세상일을 하고 여자는 남자를 돕는 게 바람직한 성역할이라고 (주입해 왔는데) 이제는 여자가 세상을 만들려고 하니 '여성 상위 시대'이니 '여성부를 없애야 한다'느니 말이 많잖아요. 성공에의 공포(fear to success)라는 말이 있죠. 우리는 다 성공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여성들은 은근히 성공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거예요. 남자는 성공하면 돈 명예 여자 다 따라와요. 하지만 여자들은 성공을 하면 시기를 받고 남자 떨어져 나가고 외로운 경우가 많죠. 남자들은 관계냐 성공이냐를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여자는 둘 중 하나 택하거나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을 스스로 포기하고 관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데 관계가 잘 되면 좋은데, 그것도 잘 안되면 망가지는 거죠.

2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여적향에서 열린 '심리톡톡 - 사랑에 관하여' 강연 참석자들이 사랑과 권력에 대한 정희진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협상과 밀당의 얘기로 돌아가서요, 제가 밀당 대신 협상을 제안한다고 했는데 둘은 어떻게 다를까요. 밀당은 겉과 속이 다른 상태에서 가면을 쓰는 거예요. 성질 급한 사람은 이거 못하죠. "10분 정도 늦게 가야 한다", "먼저 일어서야 한다", "질투심 유발해야한다", 이런 수칙이 있잖아요. 쓸 데 없어요. 저는 그 시간에 신문이나 보라고 합니다. 밀당에 능해서 이룬 것이 진정한 사랑이겠어요? 그럴 리가 없죠.

연애상담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이미 상담이 필요한 상태라면, 사랑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만족스럽고 행복하면 상담이 필요 없죠. 또 상담을 해 봤자, 자신이 변하든 상대가 변하든 해야 하는데, 그게 상담으로 가능한가요? 자기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잖아요? 저도 연애 상담을 많이 받는데, 실은 정보를 제공할 뿐이에요. 좋게 끝내고 싶다? 좋으면 왜 끝나겠어요? 상대방의 진심? 그런 건 없어요. 모든 것은 행위가 말해줍니다. 행위로만 판단하면, 의외로 인생이 편해집니다. 쓸데없는 기대와 고민이 사라지니까요.

이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사랑에 대한 제 주장은 이렇습니다.

1. 사랑은 권력관계 즉 힘의 관계다. 이 얘기는 사랑은 정치적 관계이고 정치적 의제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인권,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거지요. 사랑 나쁘게(?) 하는 남성이나 여성은, 윤리의식이 낮은 사람이고 인권 의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권력을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랑은 곧 '자원 혹은 매력의 교환'을 의미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눈이 먼다는 건, 신화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생각하는 낭만적, 배타적 1:1사랑은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입니다. 생긴 지 200년 밖에 안 됐어요. 개인이란 개념이 생기면서 연애라는 개념도 생겼죠. 사랑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역사라는 겁니다. 문제는 자원과 매력이 성별화 되어 있다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많은 남성과 여성이 고통 받습니다. 보통 남성의 매력은 돈과 지식, 여성의 매력은 외모라고 여겨지죠. 그래서 못생긴 여자, 돈 없는 남자는 괴로워합니다. 만일 이 틀에서 벗어나서 조건이 안 맞는 사랑을 하면 뭐라고 말하나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고, 조건에 맞는 사랑을 하면 속물 소리를 듣기도 하죠. 그만큼 사랑의 성립 자체가 사회적 행위라는 겁니다.

제가 사랑은 '자원'의 교환이라고 말했는데 자원엔 여러 가지가 있어요. 캐릭터, 인격, 여러 가지 그 사람만의 고유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유성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고요,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고유성은 이것(남자는 돈과 지식, 여자는 외모)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상대에게 대체되지 않은 고유성을 원하지만 그런 사랑 주실 분은 신밖에 없어요. '법 앞에 평등' '신 앞에 평등' 이게 그런 뜻이거든요. 내가 어떤 모습을 가져도 사랑한다? 사실, 부모님들도 그렇지가 않죠. 미국에서는 장애아를 돌보는 부모들이 아이가 성장하지 못하게 호르몬 투여해서 종종 인권침해 문제가 생기는데요, 부모가 그 문제로 고발당하기도 하죠. 보살펴야 할 대상의 미모가 굉장히 보살핌에 영향을 끼치는 거예요. 제 얘기는, 우리가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자체를 당연시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상대방한테 사랑이나 매력을 느낄 때, 그건 '순수한' 감정이 아니에요. 사랑이 순수하다고만 생각하면 사랑의 어려움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순수한 게 원래 없는데, 특히 사랑이 제일 순수하지 않아요. 젊은 이성애의 경우 더욱 더 그래요. 오죽하면 결혼시장이라고 하겠어요. 가장 개혁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젊을 때 결혼하라는 어른들의 압력도 이 때문이죠. 여성의 자원은 주로 몸에 의해서 결정되고, 남성의 자원은 (아까 '지식'도 얘기했지만) 주로 경제력이죠. 이런 사랑과 성차별이 결합했을 때,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힘의 관계'라고 얘기하는 건 그것에 대한 성찰을 해보자는 뜻에서입니다. 나는 이 사랑을 순수하게 생각하는데 '과연 상대가 10살 많아도 좋아했을까'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유한 그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 조건의 산물입니다.

2. 인간의 인격은 사랑받을 때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할 때 태도는 늘 고귀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을 때는 어떤가요. 특히 내가 사랑하지 않는데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때 태도가 중요합니다. '네가 감히 나를 사랑해' 이런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나는 당신을 존중한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한 다음에 '당신이 나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어요. 사랑받을 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되게 많죠. 그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잃었을 때 고통이 오는 거죠. 당연하다고 생각 안 하면 고통이 크지 않아요. 저는 사랑받는 사람 모두가 그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감사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함부로 하고 심지어, 아니, 사실 이용하지요. 성공하고 힘이 있고 사랑받을 때, 소위 잘 나갈 때 그 사람의 태도가 인격의 '바로미터'입니다. 사랑받는 것을 당연시 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사랑받을 때 도취되지 않고, 사랑받지 못했을 때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인간이 가장 성숙한 사람 아닐까요?

제가 사랑은 권력 관계라고 강조했지만, 이건 새삼스러운 상투적인 말이죠. 다들 사랑받으면 권력을 부리잖아요? (웃음)

3. 자기 모멸감으로만 안 끝나도 성공한 사랑입니다.

상처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있나요. 문제는 상처로 계속 갖고 갈 것이냐 아니면 성숙의 자원으로 삼을 것이냐 입니다. 사랑의 상처 때문에 망가지거나 괴로워하는 경우 많이 보셨을 겁니다. 헌신했고 사랑했는데, 배신당하면 이후에는 사람 일반을 믿을 수 없게 되죠.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게 줄일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죠. 당연합니다. 이것을 극복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어떤 게 극복하는 거죠? 내가 출세하면 되는 건가요? 헤어지자마자 헬스 클럽 끊고 영어 학원 가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어느 정도는 애도의 기간을 가져야죠. 몸에 기억이 남아있는데.

제 생각에는요, 그래도 상대가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정도면, 헤어져도 '대성공'이라는 겁니다. 자기 모욕만으로 끝나지 않아도 성공한 사랑이에요. 특히 여성에게 이성애는 동일시 감정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가 괜찮았다면 상처가 덜해요. 그런데 '거지 같은' 남자였다면,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면 상처가 깊죠. 저런 인간을 사랑하다니…. 수치심이 남죠. 실연이 추억이냐, 악몽이냐. 그게 나한테만 달린 문제가 아니므로 행운을 빌어야죠.

<질의응답>

질문 : 강의 초반에 헤어질 때의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헤어질 때 성숙하다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답변 :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두 가지. 끝났으면 끝났다고 얘기를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취할 게 있으니까 그냥 놔두는 사람이 있어요. 상대를 희망 고문과 미스터리로 고민하게 하는 게 가장 저질입니다. 또 하나는 좋은 이미지로 남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쁜 여자, 나쁜 남자 되기 싫어서 질질 끄는 경우 있잖아요. 이별은 정산입니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있는데, 이익만 남기려고 하는 것은 망상이죠. 이성 관계에서 좋은 인상으로 남으려는 것, 이것은 인간의 가장 추잡한 욕망입니다. 저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할 것,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을 버릴 것. 이렇게 두 가지 꼽고 싶네요.

질문: 씨네21 칼럼에서 제임스 스페이더 좋아하신다고 해서, 제가 그 배우가 나온 미국드라마 '블랙리스트'를 봤거든요. 어떤 면이 좋으신 거예요?

답변: 제가 나이 많은 남성에 대한 환타지가 있거든요. 아버지 콤플렉스. 근데, '블랙리스트'에서 제임스 스페이더가 자기 딸로 추정(?)되는 요원을 헌신적으로 돕고 멘토 역할을 하죠. 그 관계가 부러웠어요. 제임스 스페이더는 원래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14편 정도 다 봤습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에 나왔죠. 지적이고 연약하면서도 악역을 잘 합니다. 저는 여성들과는 인간관계가 좋은 편인데, 동년배 남성들과 인간 관계를 잘 못해서 나이 많은 남성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이것도 기대지 실제로는 개인차가 더 크겠죠(웃음). 대개 동년배들은 저를 부담스러워 했어요. 사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권력은 남성과의 관계, 특히 자원이 많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나오거든요. 사회적으로 성공한데다 안정된 여성들은 많은 경우, 싱글이고 대신 굉장히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좋은 아버지를 둔 경우가 많습니다. 제게도 그런 아버지에 대한 선망이 있고, 또 그런 선망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 자신의 여성문제, 아킬레스건입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Copyright©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