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종엽]광복 80주년에도 갇혀있는 야스쿠니신사의 ‘죄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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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茂雄(임무웅), 沈相鳳(심상봉), 石岡俊植(석강준식), 海本順玉(해본순옥), 豊原匡雄(풍원광웅). 모두 태평양전쟁 당시인 1945년 2, 3월 이오지마(硫黄島) 전투에서 숨진 조선인들의 이름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이들의 사망 사유는 '옥쇄(玉碎)'로 기록됐다.
유족들은 "침략전쟁의 정신적 지주, 침략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내 아버지와 형제를 합사한 것은 우롱과 모욕일 뿐"이라며 합사 철회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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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80년이 흘렀음에도 고인들은 여전히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붙잡혀 있다. 조선인 군인과 군속은 이오지마에 최소한 200명이 있었는데, 사망한 137명 중 군인 22명은 모두가 나중에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 영(靈)이란 것이 있다면 납득할 수 있을까. 생전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미명 그대로 “천황을 위해 기쁘게 죽은” 이들의 일부가 돼 있다는 걸….
야스쿠니신사 한국인 무단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의 소송이 17일 또 최종 기각됐다. 이 신사에 한국인 2만여 명이 합사돼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족들은 2001, 2007년 일본 법원에 합사 철회 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2013년 유족 27명이 낸 세 번째 소송마저 이날 일본 최고재판소(우리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것이다.
유족들은 “침략전쟁의 정신적 지주, 침략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내 아버지와 형제를 합사한 것은 우롱과 모욕일 뿐”이라며 합사 철회를 요구했다. “아들마저 일본한테 빼앗겼다고 울부짖던 할머니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째서 제 아버지를 일본을 위해서, ‘천황’을 위해서 죽은 사람으로 취급합니까.”(육군 군속으로 동원돼 팔라우에서 숨진 이낙호 씨 아들 명구 씨) “가족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망했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고 합사하겠다고 묻지도 않았다니 말이 됩니까. 지금도 식민지 시대입니까.”(해군 군속으로 동원돼 북태평양에서 숨진 동선홍 씨 아들 정남 씨)
일본 법원은 “타자의 신앙 행위에 대해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해 왔다. 역사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관용’을 요구한 것이다. ‘합사 대상자의 이름이 외부에 공표되지 않아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수 없다’고도 했고, 이번엔 ‘국가가 전몰자 명부를 제공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는 결론까지 냈다. 핵심을 피해 가면서 유족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소리다.
일본 측은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었다. 앞서 일본 법원은 합사된 조선인들이 ‘일본인으로서 죽었다’는 야스쿠니신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인에겐 유족 원호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 ‘전후 일본 국적을 잃었다’는 이유다. ‘시베리아 포로’ 보상금에서도 한국인과 대만인은 제외했다. 유골 수습 문제도 ‘나 몰라라’ 회피했다. 한국인이 자기들 좋을 때만 일본인이 될 수 있나.
침략전쟁의 중핵이었던 야스쿠니신사에 식민지 출신 사망자를 합사해 놓고 있는 건 일본이 여전히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명예교수는 합사된 이들을 두고 “영령이란 이름의 수인(囚人)”이라고 했다.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일본이 한 걸음이라도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이들을 야스쿠니라는 감옥에서 풀어줘야 할 것이다.
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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