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폭염에 ‘극한 출동’…3개월새 소방관 4명 사망
“극한출동 관리 규정 마련돼야”
지난 3일 오전 8시40분쯤 전북 익산소방서 산하 여산지역대 소속 소방위 A씨가 근무지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50대인 A씨는 근무교대를 앞둔 상황이었다. A씨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그는 사망 전날인 지난 2일 오전 9시부터 근무하며 하루 새 6건의 현장 출동 일정을 소화했다. 차량 화재 진화 1건, 구급 출동 2건, 벌집 제거 등 구조 출동 3건 등이었다. 그날 익산의 낮 최고기온은 34도에 달했다. A씨는 1994년 임용 이후 30년간 활동한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지난 1일 새벽 부산 금정구 한 화학물질 제조공장 화재 진압에 투입됐던 소방관 김모씨(44)는 화재가 완진될 때까지 7시간 동안 진압작전에 투입됐다. 당시 부산 최고기온은 33도에 이를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다.
김 소방관은 13일 “비 오듯이 땀이 나는데 방화복을 입고 산소통을 끼고 있으면 제대로 땀 배출이 안 돼 힘들다. 철수해서 옷에 스며든 땀을 짜보면 물이 한 바가지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땀 때문에 옷이 몸에 달라붙으면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긴급한 화재 현장에선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폭염 속 화재진압에 투입된 소방대원들 중에는 무더위로 인해 탈진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지난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전기차 화재 진압에 투입됐던 소방대원은 아파트 주민들을 대피시키던 중 갑자기 구토하는 등 탈진 증세를 보였다. 당시 청라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32도였다.
이처럼 올여름 폭염이 이어지면서 소방관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소방당국은 소방관의 온열질환을 막기 위한 자체 지침을 두고 있지만, 긴박한 현장 상황에선 거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이에 여름철엔 출동 건수 등을 고려해 소방관의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청의 보건관리 표준지침에 따르면, 소방관의 현장 활동 가운데 최소 20분의 회복 시간이 제공돼야 한다. 또한 차단형 천막 등 회복 지원 공간을 마련하고 방화복 상의는 완전히 탈의한 후 휴식을 취하는 것이 권고된다. 아이스 버킷에 손과 전완부를 담그고 이온 음료를 마시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런 지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경기 남부 지역에 근무하는 소방관 A씨(31)는 “큰 화재 발생 시 소방관의 회복 시간이 지켜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잠시 현장에서 벗어나더라도 산소통을 교체한 후 곧바로 긴박한 현장에 다시 투입된다”고 말했다.
A씨는 “체온을 내릴 도구와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만 방화복을 벗고 아이스 조끼를 사용할 시간도 체력도 없다. 대부분은 화재현장에서 벗어나면 잠시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고 쉬는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B씨(32)도 폭염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그는 “여름은 소방관에게 정말 지옥이다. 한번은 벌집 제거요청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섰는데, 벌집이 땅에 숨어 있어서 반나절을 땡볕에서 삽질한 적도 있다”며 “초임 소방대원들은 화재 현장에서 탈진 현상을 자주 겪는다. 그래서 화재 현장에는 반드시 안전관을 배치하고 동료들이 서로의 상태를 예의주시한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소방관 C씨(41)도 “화재 진압 중 소방관이 잠시 쉴 수 있는 회복지원 차량은 대형 화재에만 배치된다. 이마저도 광역 소방본부에 한 대씩밖에 없어서 화재 진압 후에 뒤늦게 도착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보통 소방서마다 있는 중형버스가 쉼터로 이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부산 화학공장 화재를 진압했던 김 소방관도 “대형화재 현장이라 회복지원차가 왔지만,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대원들이 회복 차량 이용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옷과 피부가 오염돼 있는 상황에서 회복지원차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신발을 갈아신어야만 들어갈 수 있게끔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동했던 화학공장 현장은 규모도 크고 이동 시간도 오래걸려서 출동한 대원들 대부분이 다른 공간을 찾아 쉰다. 시원하진 않더라도 내 장비 옆에서 방화복을 벗고 그늘에 누워 시원한 얼음주머니가 있어서 겨우 버텼다”며 “재난 현장에서 더 큰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회복지원차량은 지난해 기준, 전국에서 11대만 운영 중이다. 회복지원차가 없는 지역의 소방기관장은 차량이 필요할 경우 다른 지역에 차량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 탓에 소방대원들의 여름철 온열질환 사고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전북 남원시 공장에서 화재진압을 하던 소방대원 2명이 탈진으로 화상을 입었다. 2021년 경북 포항에선 구급환자를 병원에 인계하던 중 한 소방대원이 실신했고, 2020년에는 경남 김해시 공장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대원 3명이 탈진했다.
이창석 소방노조위원장은 “올여름 들어 최근 3개월간 근무 중 사망한 소방관이 4명”이라며 “폭염 속에서도 출동해야 하는 극한의 근무 환경이 원인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원인 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출동 현장에서의 안전수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과도한 출동에 대한 안전 규정이 전혀 없는 것도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관들은 화재진압과 구조 활동 등 고강도 신체 활동을 자주 수행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고온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극한의 환경에서 일하는 소방관들에게는 유연한 휴식시간 보장과 출동 건수에 따른 근무시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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