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부 장관으로 민생과제 설계”에 임대인들 ‘부글부글’, 왜?
업계 관계자 “서민주거안정 파탄”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60)이 TV토론회에서 장관 시절 업적을 강조한 데 대해 부동산 업계 “주택 임대시장을 망쳐 놓은 장본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 전 장관 시절 정부가 강화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비율 때문에 빌라·연립 등의 매물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공공임대 주택도 원 전 장관 시절 원가 이하로 사기로 했다가 시장에 매물이 나오지 않아 결과적으로 공급 확대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원 전 장관은 지난 9일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첫 TV토론회에서 “국토부 장관으로서 그간 아무도 손 못 댄 화물연대·건설노조 문제와 집 값 안정 등 수많은 민생국정 과제를 설계했다”고 말했다.
‘20년 정치한 사람의 최대 업적이 학력고사 전국 1등’이라는 비판 댓글에 대한 답변이었다. 원 전 장관은 “이런 것들을 알면 댓글은 반대로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을 두고 비아파트 다가구 임대인들 사이에서 “최악의 제도인 ‘126% 룰’을 만든 원 전 장관이 할 소리가 아니다”는 반박이 나왔다.
126% 룰은 빌라 등 비아파트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의 전세금 상한을 공시가격의 126%로 정한 제도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집주인(임대인)이 전세(임대차) 계약이 끝났는데도 세입자(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상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우선 지급하고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
국토부는 공시가격의 150%였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가능 주택 전세금을 지난해 5월부터 126%로 낮췄다. 전세사기를 줄이려는 조치였지만 신규 세입자 모집 과정에서 집주인이 보증금을 낮출 수밖에 없게 돼 기존 세입자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세입자도 반환보증 가입 가능 매물을 찾기 어려워졌다.
비아파트 임대인 모임인 주거안정연대는 최근 국토부를 상대로 126% 룰을 폐지해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김나래 주거안정연대 대표는 “126% 룰이 시행된 후 빌라 시장이 죽었고 실제 비아파트 임대차는 전세에서 월세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원 전 장관은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을 ‘사기꾼’으로 매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원 전 장관 재임 기간에는 민간임대뿐 아니라 공공임대 시장도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해 4월부터 매입임대주택 대상 중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감정가가 아닌 원가 이하로 매입하기로 했다.
매입임대는 공공임대의 한 유형으로 국토부·지자체가 계획을 세우면 LH와 지방공사가 기존주택을 매입(준공형)하거나 신축매입약정(약정형)을 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원 전 장관은 악성 미분양 상태였던 서울 강북구 수유 칸타빌을 LH가 고가에 매입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해 1월 “내 돈이었으면 이 가격에 안 샀다”고 비판했고, LH는 3개월 만에 매입임대 제도를 바꿨다.
혈세를 막고 건설사의 도덕적해이(모럴헤저드)를 막겠다는 취지였지만 공급물량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LH에 원가 이하로 주택을 내놓는 매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LH의 공공임대 공급 실적은 4610가구로 목표치(2만476가구)의 22.5%, 2022년 실적(1만4054가구)의 32.8%에 그쳤다.
LH는 원 전 장관이 물러난 지 2개월 만인 지난 2월 준공형 매입 기준을 감정가(토지)와 재조달원가(건물)의 90%로 다시 변경했다. 재조달원가에는 건물 건축 시 원가뿐 아니라 금융비용 등도 포함된다.
한 임대업계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의 매입임대 청약 경쟁률은 통상적으로 100 대 1이 넘을 정도로 수요는 많고 공급이 부족한데 원 전 장관이 ‘왜 민간 건설업자를 도와주냐’는 생각만으로 부동산 정책을 폈다가 공공임대 수요자만 피해를 봤다”면서 “원 전 장관이 민생국정과제를 설계한 게 아니라 서민주거안정을 파탄 낸 셈”이라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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