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 철거 공사 두고 원주민·LH 갈등, 왜?[올앳부동산]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 등 3기 신도시 조성 사업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해당 지역에 있는 기존 시설물 철거작업을 두고 원주민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원주민들은 LH가 관련 법 취지와 달리 철거공사 일감을 주민들에게 주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고, LH는 법 규정은 재량사항일 뿐이며 자격 요건 등을 고려해 업체를 선정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토지가 수용되는 개발지역 원주민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원주민이 철거공사를 맡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지만, 정작 현실에선 개발사업의 또다른 갈등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3기 신도시 연합대책위원회(대책위)는 14일 “LH가 지금까지 1314억원에 달하는 주민위탁사업을 당사자인 각 신도시 주민생계조합(조합) 대신 민간업체와 계약을 맺었다”면서 “법에서 보장하는 주민 생계 지원 사업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9월 조성 계획을 밝힌 3기 신도시는 일부 지구에서 조성공사에 착수했다.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 공공주택지구는 지난 3월 주택건설공사에 착공해 오는 9월에 본청약을 시행한다.
각 지구의 토지 보상은 거의 마무리된 상태이지만 지장물 보상률은 일부 지구에서 60~70%대(지난 2월 기준)에 그치고 있다. 지장물은 공공사업 시행 지구에 속한 토지에 설치돼 있거나 재배되고 있어 철거·이전이 필요한 물건을 말한다. 비닐하우스, 농작물 등이 있다.
원주민은 LH 등 시행사에 지장물 철거 공사를 달라고 요구하면서 2022년 초 개정된 공공주택 특별법을 근거로 제시한다.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은 공공주택사업 등으로 생활기반을 상실하게 되는 주택지구 안 주민을 위한 직업전환 훈련, 소득창출사업 지원 등을 지방자치단체나 사업자가 수립·시행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토지가 수용됐지만 보상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원주민을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개정안은 2022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그해 8월부터 시행됐다. 시행령은 주택지구 안의 주민으로 구성된 법인 또는 단체에 분묘 이장, 수목 벌채, 방치된 지하수 굴착시설의 원상복구, 지장물 철거 등의 사업을 위탁해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국토교통부도 2020년 8월에 ‘3기 신도시 등 기존 주민을 위한 보상·재정착 방안’을 마련하고 주민 일자리 제공을 위한 주민위탁사업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LH나 경기도주택도시공사(GH) 등 3기 신도시 사업시행자가 주민이 참여한 법인이나 단체에 맡긴 철거공사는 아직 없다.
예컨대 LH는 남양주 왕숙1지구(6개 공구) 중 1·3공구 철거공사를 외부업체에 맡겼다. 조성공사 입찰에 낙찰된 업체가 철거공사를 함께 하는 곳도 있다.
LH는 지난해 4월 남양주 왕숙1 주민생계조합에 “1·3·4공구는 사전청약에 따른 본청약과 국도 47호선 지하화 등 사업 일정을 맞추기 위해 별도 발주가 불가피하고, 2공구는 주민생계조합과 협의하려고 한다”고 했지만, 지난 9일 ‘2공구 및 국도 57호선 이설구간 건축물 해체 공사’ 입찰 공고를 냈다.
이원근 남양주 왕숙1 주민생계조합장은 “LH가 처음에는 원주민이 설립한 법인의 정관을 문제 삼았고, 이를 해결했더니 이번에는 시공능력을 문제 삼는다”며 “3기 신도시 원주민 등 토지 수용 주민의 재정착을 지원한다는 공공주택 특별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H는 지난달 남양주 왕숙1 주민생계조합에 수의계약 체결을 위한 시공능력평가액 확인자료를 요청했다.
이 조합장 등 3기 신도시 원주민들은 LH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으로부터 사업을 위탁받아 분묘 이장, 도로시설물 관리, 공원관리 등을 하는 세종시 주민생계조합처럼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세종시 주민생계조합은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한 지원을 받아 4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LH는 공공주택 특별법의 관련 규정이 강제사항이 아닌 임의 규정인 만큼 원주민에게 철거공사를 반드시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실적이 없는 업체에 철거공사를 위탁했다가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자격·면허 요건을 갖췄는지, 국가계약법과 수의계약 지침에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LH 관계자는 “대규모 주택사업 시행자로서 사업 속도와 안정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원주민에게 사업을 절대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은 아니며, 세종시 주민생계조합처럼 3기 신도시 원주민도 가능한 위탁사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협의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국토교통위원회는 2021년 12월29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당시 시행 시기만 공포 후 6개월 후로 조정했을 뿐 법 개정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국회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당시 검토보고서에서 “공공주택사업으로 생활 근거를 상실하는 사람들을 위한 직업훈련이나 소득창출 사업을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개정안은 필요하다”면서, 대상 사업을 일정 규모 이상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만 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주택 특별법은 주민 업체에 사업 참가 자격만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며 “시행자로서는 사고 발생을 우려해 수의계약도 자격 등 요건을 맞춘 곳에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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