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이후의 전세… 더이상 ‘사인간 계약’이어선 안된다”[아듀 2023 송년 기획-경제 릴레이 인터뷰 ②]

심윤지 기자 2023. 12. 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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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20년 이상 전세 제도를 연구해 온 ‘전세 전문가’다. 최근에는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 외부 심의위원으로 특별법 지원 대상을 심의·결정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올해 1월부터는 신도시, 공공임대주택, 전월세 제도 등 주택 정책 분야를 두루 다루는 한국주택학회 25대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23년은 ‘전세사기·깡통전세 대란’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전세 보증금 미반환 피해 사례가 쏟아진 한 해였다. 피해는 사회초년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비아파트 소형주택(연립·다세대·오피스텔)에 집중됐다.

김진유 한국주택학회장(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이 20일 서울 중구 신문로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한국주택학회장)은 내년에도 이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은행은 부실화되면 안된다는 이유로 LTV(주택담보인정비율) 규제를 도입하면서 세입자는 돈을 떼여도 ‘전세는 개인간 계약이니 관여할 수 없다’는 정부 태도는 문제가 있다”며 “강력한 전세 제도 개편이 없다면 올해와 같은 전세사기 대란은 또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으로는 ‘전세가율 상한제’와 ‘전세권 등기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세대출’이 바꾼 소형주택 시장 판도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올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원인이 무엇인가.

“전세가가 유례없이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유동성이 증가하며 부동산 시장에 돈이 몰렸다. 그전까지는 매매가가 10억원인 주택에 전세가가 6억원 정도면 ‘적정 가격’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매매가가 15억원으로 오른 후에는 6억원이 더이상 적정 가격일 수 없다. 게다가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을 이유로 저리 전세대출까지 확대하면서 전세가가 매매가를 따라잡을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비아파트에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집중된 이유는 무엇인가.

“원래 비아파트 소형주택은 월세나 보증부 월세가 대부분인 시장이었다. 그런데 전세대출이 일반화되면서 소형주택 시장이 월세 중심에서 전세 중심으로 재편됐다. 예전이라면 월세를 갔을 청년들이 저리 대출을 받아 전세를 갈수 있게 되자 전세가가 급속도로 상승했다. 반면 비아파트는 매매가 상승폭이 제한적이다. 향후 아파트 청약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데다, 시세차익을 노리기도 어려우니 매수 유인이 크지 않다. 이 두가지 요인이 서로 맞물리며 전세가율 상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세가 사인간 계약이라는 인식 바꿔야”

-정부는 공인중개사의 임대인 세금체납 고지 의무화,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등 제도 개선책을 마련했다. 재발을 막을 만큼 충분한 수준이이라고 보나.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나온 정부의 전세사기 대책은 피해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반면 피해 예방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흡하다. 개인적으로는 전세가율 상한제와 전세권 등기 설정 법제화같은 제도 개선을 제안한다.

전세가율 상한제는 전세계약시 보증금을 매매가의 약 70% 이하로 규제하되, 나머지 금액은 월세로 전환해 계약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주인도 자기자본을 최소 30%는 투자해야 하니 ‘무자본 갭투자’가 불가능해진다.

전세권 등기 의무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보다 행정 시스템이 훨씬 덜 발전한 볼리비아에서도 전세계약을 맺으면 등기부에 의무적으로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다가구 주택에서 선순위 임차인들의 확정일자를 알지 못해 전세사기를 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고 본다.

김진유 한국주택학회장(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이 20일 서울 중구 신문로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전세 계약에서 정부 개입이 커질수록 집주인들의 반발도 거세질텐데.

“갭투자는 쉽게 말해 은행에서 받을 대출을 세입자에게 빌리는 것이다. 은행은 부실을 막아야 한다면서 LTV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도입하지 않았나. 그런데 전세계약을 맺은 세입자는 돈을 떼여도 ‘전세는 사인간 계약이니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전세를 ‘사인간 계약’으로 보는 개념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과거 주택담보대출이 없었던 시절에야 전세가 ‘사금융’ 역할을 했다지만, 지금은 제도나 금융시스템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나. 그만큼 전세 제도도 섬세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불균형을 해소하고 임대차 시장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관여해야 할 부분은 더욱 강력하게 관여해야 한다.”

-전세대출이나 보증한도가 축소되면 세입자들의 주거비용이 늘어나지 않겠나.

“청년들 입장에서는 당장 주거비가 적으니 좋은거 아니냐고 생각할수 있다. 하지만 전세대출은 기본적으로 청년들의 빚을 늘리게 하는 정책이다. 집주인의 상환능력에 문제가 생겼을때 그 빚을 떠안게 되는 것도 결국 청년들이다. 아동수당도 국가장학금도 모두 현금으로 지원하는데, 청년 주거 안정 대책은 왜 꼭 전세대출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궁극적으로 소형주택 시장은 월세 중심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 사회 초년생일땐 자기 소득으로 월세를 살다가, 어느정도 목돈이 쌓이면 비싸지만 안전한 아파트로 넘어가도록 ‘주거 사다리’를 복원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전세사기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파트는 전세대출을 지원하되,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나 오피스텔은 월세 보조를 늘리는 ‘투트랙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5월1일 서울 종로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정부와 국회의 실효성 있는 피해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비아파트 규제완화의 ‘전제조건’

-내년도 전세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나.

“최근 전세가격 반등은 비아파트(연립·다세대·오피스텔)과 평수는 비슷하면서 전세사기 위험은 적은 소형 아파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평형, 모든 유형의 주택의 전세가가 상승했던 2년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공급 축소’도 변수다. 아파트와 비아파트 인허가가 모두 줄어든 상황이라 전세가격은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이미 전세가율이 높게 형성된 비아파트의 경우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월세화 흐름’이 가속될 것이다.

-위축된 비아파트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 완화’ 중 오피스텔 주택수 완화는 갭투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전세가율 상한제와 전세권 등기 의무화같은 조치와 같이 가야한다. 갭투자를 하더라도 적어도 보증금의 30% 정도는 자기 책임으로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번에 문제가 된 무분별한 무자본 갭투자는 불가능하고, 임대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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