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건설 경기, ‘중동 르네상스’로 풀 수 있을까[황재성의 황금알]
2: 50년 전 6월 6일에 중동 건설 신화 시작
3: 2005년 이후 18년 간 100억 달러 이상 수주
4: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이어 수출액 4위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
매주 수십 건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이 되는 정보를 찾아내는 옥석 가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매주 알짜 부동산 정보를 찾아내 그 의미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당시 삼환기업(현 SM삼환기업)은 3전 4기의 정신으로 도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카이바~알울라 고속도로 7공구 건설공사 입찰에서 유럽의 유명 업체 6개 사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합니다. 사업비는 2427만 달러로, 현재 기준으로 보면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해 우리나라 수출액(16억2400만 달러)의 1.5%에 달하는 큰 규모였습니다.
이 사업은 국내업체가 사우디에서 따낸 첫 사업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는 2012년 6월 국내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이 50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10대 해외건설 사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삼환기업은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250만 달러 적자를 낼 정도로 많은 고생을 합니다. 첫 사업으로서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공기 지연에다 4차 중동전(1973년 10월)으로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자잿값과 인건비 등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이 사업을 인연으로 이듬해인 1974년 9월 사우디에서 두 번째 공사인 지다 시 미화공사(수주액·2427만 달러)를 따냅니다. 지다는 사우디 남서쪽 홍해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이슬람 성지 메카의 외항이자 사우디 제1의 상업도시입니다. 이 사업은 중동지역, 특히 사우디가 국내건설업계의 텃밭이 되는 데 결정적인 단초가 됩니다.
당시 사우디 정부는 삼환에 지다 공항에서 메카 쪽으로 향하는 2km 길이의 도로 확장 공사를 40일 이내에 끝낼 것을 주문합니다. 이에 삼환은 ‘8시간 3교대 24시간 작업’을 벌입니다. 이 과정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현장에서 야간작업을 위해 매일 수백 개의 횃불을 동원했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 늘어선 횃불은 불꽃 군무를 방불케 하는 장관을 이뤘습니다.
우연히 이를 목격하고 큰 감명을 받은 사우디 국왕은 한국 업체에 추가 공사를 주도록 명령합니다. 이를 계기로 중동지역에 ‘꼬리(코리아의 현지 발음)’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국내업체들이 앞다퉈 사우디를 중심으로 중동지역에 뛰어들게 됩니다.
50년 전 일을 다시 떠올린 것은 최근 ‘목표 달성에 빨간불’이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올해 해외건설 수주실적이 매우 부진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경기 침체의 돌파구로 해외건설 활성화를 삼았습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국토교통부 장관을 단장으로 ‘제2의 중동 붐을 견인할 해외건설 수주지원단’을 출범시키는 등 적잖은 공을 들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 UAE를 방문해 ‘제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수주 활동 지원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언론 보도의 요지입니다. 하지만 성급한 분석이라는 반론도 나옵니다. 해외건설공사 계약 특성상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어떤 말이 맞는 것인지 그 속내를 들여다보겠습니다.
● 빨간불 들어온 해외건설시장
기간을 2007년까지 확장해보면 조금 더 실망스럽습니다. 5월까지 수주액이 100억 달러를 밑돈 것도 연간 수주액이 223억 달러로 가장 적었던 2019년(89억 달러)을 포함해 이번까지 2번에 불과합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연간 목표 달성은커녕 2020년 이후 지난해까지 이어졌던 300억 달러 연속 수주 기록을 유지하기도 힘겨워 보입니다.
실적 부진에는 최근 진행된 대형 공사 입찰에서 국내업체들이 수주에 실패한 게 직격탄이 됐습니다. 현대건설은 3월에 있은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건설공사’ 입찰에서 프랑스·레바논·그리스 컨소시엄에 밀렸습니다. 사업비만 1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알제리 프로판탈수소/폴리프로필렌(PDH/PP) 수주전에서 영국과 중국 업체 컨소시엄에 밀려 고배를 마셨습니다. 이 프로젝트도 사업비가 15억 달러 규모에 달하며 삼성엔지니어링의 2분기 주요 수주 사업 목록에 올려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 둔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기가 침체하면 공사비 부담이 커져 발주처가 신규 사업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공사입찰 일정을 늦추는 사례가 적잖습니다.
지역별 수주 규모를 봐도 큰 기대를 모았던 중동지역이 15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7억 달러)을 밑돕니다. 사우디의 경우에는 3억8000만 달러 수준으로, 지난해(11억 달러)의 35% 수준입니다.
최근 국내업체들의 주력 시장으로 부상한 아시아도 34억 달러로 지난해(65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머지 태평양·북미나 아프리카, 중남미에서는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수주액 규모가 미미합니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해외건설 시장에서는 프로젝트 한 건이 수억~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경우가 적잖다”며 “현시점에서 실망하기엔 이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하반기에 사우디 등지에서 굵직굵직한 공사입찰이 준비돼 있어 이같은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해외건설협회도 지난달 9일 발행한 보고서 ‘2023년 세계 건설시장 규모 수정 전망’에서 “시장 규모를 전년 대비 4.7% 늘어난 14조 1019억 달러로 추정한다”며 “이는 올해 1월 전망치(2.8% 성장) 대비 1.9%포인트 상향 조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지역별로는 낙후 인프라에 대한 투자 수요가 높은 중남미(8.2%)와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발주환경이 개선된 중동(8.0%)의 성장률이 평균을 웃돌 것”으로 기대했다.
건설업체의 수주 상황에 민감한 증권가도 낙관적입니다. 한화투자증권은 최근 발행한 투자보고서에서 “70달러대 이상의 고유가가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고, 2021년 이후 중동지역 발주 금액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건설사 수주 파이프라인 감안 시 올해 중순 이후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기대되고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 1965년 첫 진출 이후 비약적 성공
국토부와 해외건설협회는 올해 3월 해외시장 진출을 꿈꾸는 중견 중소건설업체와 건설업계의 새내기들을 위해 ‘해외건설 완전정복 개정판’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 1965년 11월 현대건설이 태국에서 540만 달러짜리 도로공사를 따내며 시작된 국내 해외건설의 역사가 잘 요약돼 있습니다.
책은 해외건설 역사를 크게 6단계로 나눠 소개합니다. 개척기(1965~1975년)-확장기(1975~1983년)-침체기(1984~1992년)-도약기(1993~1997년)-조정기(1998~2003년)-재도약기(2004~현재) 등입니다.
개척기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미군 사업이나 차관 사업 관련 공사를 중심으로 수주가 이뤄졌습니다. 또 대부분 저비용 단순 시공인력을 투입하는 도로와 건축 공사 중심이었습니다. 다만 당시 벌어들인 외화 수입이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자금원으로 쓰이면서, 해외건설이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마련됐습니다. 그해에 삼환기업이 사우디에서 진출하면서 중동지역의 문도 열렸습니다.
확장기는 해외건설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시기입니다. 1973년과 1978년에 발생한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한국 경제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투수로서 톡톡한 역할을 해냅니다. 당시 해외건설 수주액은 매년 2, 3배씩 성장을 거듭했고, 1981년에는 100억 달러 수주라는 금자탑도 쌓아올렸습니다.
이후 1983년까지 3년 연속 100억 달러 수주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미국에 이어 해외건설 2대 강국에 올라섰습니다. 당시 수주액의 92%를 중동지역에서 올리면서 ‘중동 붐’이라는 말이 회자됩니다.
하지만 유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중동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일감이 줄자 중동에 집중됐던 국내 업체의 해외건설 취약점은 고스란히 문제로 부각됩니다. 그 결과 1984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해외건설은 긴 침체기를 걷습니다. 100억 달러가 넘던 연간 수주액도 1987년에는 17억 달러 수준까지 쪼그라들었습니다. 1990년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 2단계(46억 달러)를 따내며 그해 수주액이 67억 달러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1993년까지 수주액은 50억 달러를 밑돌았습니다.
1993년부터 해외건설은 다시 도약기를 맞습니다. 이번에는 신흥 개발도상국이 밀집해 있는 아시아가 중심이 됐고, 1996년에 1983년 이후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다시 넘어섭니다. 또 이듬해인 1997년 140억 달러를 수주할 정도로 성장합니다. 이 시기에는 투자개발사업이 또 다른 주력사업으로 자리 잡습니다.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로 아시아 시장의 공사 물량이 크게 줄어들자 국내업체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받습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체질 개선에 성공합니다. 토목과 건축 중심에서 플랜트와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수주 타깃을 바꾼 것입니다. 이는 이후 커다란 결실을 맺습니다.
2004년 이후 국내 업체들은 ‘제2의 해외건설 중흥기’를 맞고 있습니다. 해외공사 수주액은 2005년부터 매년 1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2010년에는 716억 달러를 수주하며 역대 최고 수주 기록을 세웁니다. 이후에도 2016년(282억 달러)과 2017년(290억 달러) 2019년(223억 달러) 등 3차례를 제외하고는 꾸준하게 300억 달러 이상의 수주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 내년 누적 수주액 1조 달러 달성 가능성
현재도 해외건설은 반도체 자동차 등과 함께 국내 경제의 버팀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는 최근 5년(2018~2022년) 평균 해외건설 수주액만 봐도 드러납니다. 이 기간 반도체(1154억 달러)가 1위를 차지했고, 뒤를 이어 자동차(444억 달러), 석유제품(424억 달러) 해외건설(302억 달러)의 순으로 뒤를 잇습니다.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고용유발계수를 보면 건설업(10.2)과 엔지니어링업(11.0)이 전체 산업 평균(8.0)을 크게 웃돕니다. 고용유발계수는 생산을 10억 원 늘릴 때 신규 노동 인력을 몇 명이나 취업시킬 수 있는가를 수치화한 것입니다.
이같은 성공 신화 비결은 시공 기술과 기자재 조달, 품질관리, 설계기술 등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춘 데 있습니다. 여기에 1970년대 이후 쌓아온 중동과 아시아지역에서의 수주 네트워크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역경에도 정해진 계약기간에 반드시 공사를 끝내는 한국 건설인 특유의 성실성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혀를 내두르는 한국 건설인들의 인내력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입니다. 우리나라 건설인들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오지에서 작업을 하다 현지 반(反)정부 세력이나 테러범 집단에 납치를 당하고, 포탄이 쏟아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지키는 일도 감수했습니다.
때로는 살갗이 타들어 갈 듯 뜨거운 태양과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은 모래바람, 머리통이 깨질 듯 차가운 겨울 추위도 이겨냈습니다. 지하 수십∼수백 m에서 언제 바닷물이 쏟아져 무너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지하터널을 뚫고, 악어나 각종 해충이 들끓는 늪지대를 몇 달씩 배회하며 가스파이프를 연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거 한국 건설업의 성공을 이끌어낸 경쟁력들이 더 이상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빠르게 시장 환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새로운 전략과 역량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손태홍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지난 4월에 발표한 보고서 ‘건설동향브리핑 903호-해외건설 시장의 변화와 수주 전략’에서 “그동안 국내업체들이 치중했던 공사 프로젝트 단위의 수주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양적성장, 투자중심, 기술모방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해외건설 성장기에 효과적이었지만 앞으로는 통하기 어려운 전략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새로운 시장 창출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선 정부 차원의 해외협력사업을 추진하고, 투자개발형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정책금융지원과 민관협력 진출 지원, 미래신산업 지원 등에 주력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해외건설협회도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새로운 수요가 일어나는 분야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사업 분야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중남미나 아프리카와 같은 신흥지역을 넘어 지하나 해저, 우주 진출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해외건설이 한국 경제의 튼튼한 성장 버팀목으로 자리 잡아주길 기대해봅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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