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로 가뜩이나 힘든데” 피해자 두번 울리는 ‘전세 사기’... 구제 범위·폭 사회적 합의無

이미호 기자 2023. 4.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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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성·인과관계 성립 여부가 핵심
사인간 거래에 따른 민사적 조치도 생각해야

인천 미추홀과 경기 동탄에 이어 전국적으로 전세사기 의심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는 가운데, ‘깡통전세’와 ‘전세 사기’에 대한 피해자 구제 방안의 범위와 폭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예방적 성격의 임차인 보호 대책은 절실하지만, 피해자도 만약 집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위법 소지가 없고 단순히 시장 가격 변동에 따른 피해를 입었다면 사인간 거래에 따른 민사적 조치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탄 오피스텔 전세 사기 의심 사례 피해자들이 신고한 공인중개사무소의 모습. /뉴스1

◇무자본 갭투자, 고의성 입증돼야 ‘확정적 사기’

24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동탄 오피스텔 사태’는 전세가가 매매가 보다 높은 ‘역전세 시기’에 대량의 갭투자가 이뤄지면서 촉발됐다. 세입자 보증금을 떠안아도 오히려 전세-매매가 차이만큼 임대인이 돈을 더 받는 구조가 됐는데, ‘무자본 갭투자’ 고의성 여부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확정적 사기’로 볼 수 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250채를 사들인 A씨 부부는 현재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부산과 경기 구리, 대전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보증금 미반환 사태’ 역시, 보증금이 매매가에 육박하는 깡통주택을 갭투자 혹은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인 뒤 세입자들의 요구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기망행위(고의성) 여부, 피해자의 착오와 처분행위 여부,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손해를 발생케 하는 데(임차인들이 돈을 돌려받지 못한데 대한) 인과관계 성립 여부 등을 따져봐야 한다. 즉 갭투자 행위 자체가 사기 성격을 지닌 범죄가 아니라는 점에서 임대인이 주택가격 하락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고의성을 놓고 다툴 수 있는 상황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주택가격 급락은 업계에서도 예상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법조계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전세사기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임차인은 최악의 상황에서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자신의 보증금이 제대로 회수될 수 있도록 ‘선순위 저당권’ 등을 확인한다. 그런데 확인할 당시에는 임대인이 저당권 설정을 하지 않고 있다가,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추려 하기 직전에 임대인이 근저당을 설정하는 것은 고의성이 다분하다고 봐야 한다.

같은 물건을 여러 명에게 임차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결국 이사를 오면 알려지게 된다는 점에서 범죄 행위가 한꺼번에 다 드러나게 된다.

또 다른 유형은 감정평가액을 부풀려 보다 높은 금액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경우다. 앞서 발생한 ‘화곡동 빌라 사태’가 이에 해당된다. 빌라왕과 짜고 친 브로커가 임차인에게 접근, 공시지가의 최대 150%까지 안심전세대출이 가능한 점을 악용해 매매와 전세가를 모두 높여 불렀다. 빌라왕은 이렇게 마련한 임차인 보증금을 브로커와 공인중개사에게는 수수료로 지급하고, 자신은 이름을 빌려준 대가로 명의 임대료를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시장 가격 변화에 따라 자금 지불 여력이 없어져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하게 된 것인지 처음부터 속일 의사가 있었는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급하다 보니 튀어 나오는 ‘초법적’ 대책들

보증금을 반환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속출하다보니 정부는 급하게 ‘경매 유예(중단)’ 대책을 내놨다가 철회하기도 했다.사실 경매 진행은 채권자가 채권 회수를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임차인에게 채권 회수 행위를 임의로 유예 또는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향후 경매시장에서 채권자에 대한 제약조건이 강화될 수 밖에 없다. 금융기관의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고, 금리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서민들의 자금 조달에 대한 제약조건이 광범위하게 발생하게 된다.

최황수 건국대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경매 시장에서 채권자-채무자 등 당사자가 아닌 임차인에게 채권 회수 행위를 임의로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주려면 민사집행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특정 이슈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다수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차인 우선매수권·저리대출 방안’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행법상 다른 사람이 경매에서 해당 주택을 낙찰 받으면 임차인은 (자신이 원하는 금액이 아닌) 해당 금액으로 낙찰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저리로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전세 대출을 떠안고 있는 피해자 입장에선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필요한 조치긴 하지만 이를 활용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셈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21일 민사집행법과 민간임대주택법 등을 각각 개정하지 않고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피해 임차인에게 경매로 넘어간 주택의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임차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LH 등 공공이 대신 우선매수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우선매수권 행사 의지가 있는 피해자에겐 장기 저리로 경락 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관련 세금을 감면해주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업계의 한 전문가는 “금융기관 내에서 절차 유예 사유가 있으면 유예가 가능하다고 해서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을 전부 다 찾아봤는데 없더라. 재판부가 경매 기일을 연기할 수는 있을텐데 (처음에) 그것을 두고 말했을 것”이라며 “피해가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정부가 움직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초법적인 것들을 무리하게 하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경기 침체로 지쳤는데 전세 사기까지...”

이번 사태의 반향이 큰 이유는 전세 보증금의 특성 때문이다. 전세 보증금은 고액이며 절대 떼일 수 없는 안정적인 돈이다. 전세 보증금은 액수가 크고 목돈이라는 점에서 임차인 입장에서는 안전하게 돌려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아파트는 등기로 보호 받지만, 연립·다주택은 시세 산정이 어렵기 때문에 피해 사례가 몰리는 구조다. 이에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주택임대차 보호법’이다.

이 법에 따르면 보증금은 우선 변제권을 갖고 있다. 소액임차인 이더라도 확정일자 등 대항력을 갖췄다면 보증금 중 일부를 우선 변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예외 규정까지 두면서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 보증보험 제도까지 도입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하자 ‘전세 사기’로 속단해버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자체가 원래 기폭제가 있는 이슈다. 게다가 최근 피해자들이 잇따라 사망했고 피해 범위가 지방까지 번지면서 폭발력이 커졌다”면서도 “하지만 법상 자꾸만 예외를 두는 것은 시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도 이렇다 할 답이 없으니 일단 특별법으로 ‘어떻게든 책임지겠다’는 메시지부터 날리고 어떻게든 그 안에 욱여넣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돌려받지 못한 돈을 회수할 수 있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도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세 계약은 사인간의 계약이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피해금 전체를 물어주기는 어렵다. 동시에 사기 피해자로 확정된 사람들에 대해 정부가 외면해서도 안 되는 문제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사회적 재앙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결국 필요한 것은 재원인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누구를 얼마나 구제해줘야 적법한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역전세는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반면 전세 사기는 타인 재판을 편취하려 의도적으로 행해지므로 구분돼야 한다”면서 “피해복구 가능성이 높은 피해자를 중심으로 대책을 마련하되 전세보증보험 미가입 등 제도권 밖에 있는 분들에게는 해당 주택 거주기간 연장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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