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1등’ 분당도 재건축 기대감 들썩… 용적률에 가려진 변수는?

심윤지 기자 2023. 2. 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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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사업이 진행돼 온만큼 한 세대도 빠짐없이 반드시 이주를 완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무지개마을 4단지 곳곳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리모델링을 위한 분담금 확정 총회를 마친 뒤 오는 4월30일까지 이주 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 하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1기 신도시 리모델링 추진 단지 중 가장 빠른 속도다.

무지개마을 4단지는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1기 신도시 아파트 중 처음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이주 절차를 진행 중이다. 조합 제공

조합 설립 후 6년만의 성과인데, 주변 단지들의 호응은 크지 않다. 인근 단지들엔 ‘리모델링 준비위원회’ 대신 재건축 준비위원회’가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오는 5월 이주 예정인 느티 3·4단지 조합사무실에는 “재건축을 하면 돈을 덜 내고 할수 있지 않았냐”는 일부 조합원들의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리모델링 정비사업이 가장 활발했던 분당에서 재건축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일 ‘용적률 500% 상향’을 골자로 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노후계획도시특별법)을 발표한 것이 발단이다. 하지만 실제 재건축이 이뤄지기까지는 여러 변수를 거쳐야 하는 만큼, 성급한 재건축 기대감을 품는 것보다 현실화가 빠른 대안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도 나온다.

분당 구미동 인근 단지들엔 ‘리모델링 준비위원회’ 대신 ‘재건축 준비위원회’가 내건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심윤지 기자
‘용적률’에 가려진 변수들

일단 시급한 것은 ‘이주 대책’이다. 중·노년층이나 아이가 없는 부부들은 성남 수정·중원, 용인 수지 등 분당보다 집값이 저렴한 인근 도시로의 이동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분당 자체가 학군지여서 학령기 자녀 둔 부모들은 원거리 이주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한번에 많은 가구가 분당 안에서 이주에 나설 경우 주변 전세값이 출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박기석 무지개마을 4단지 조합장은 “500가구밖에 안되는 우리 단지가 이주하는데도 인근 지역 빌라와 아파트 전·월세 가격이 소폭 올랐다”며 “2개 단지(1000가구)만 움직여도 이주 대책 수립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재건축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블록 단위’의 통합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시행사업자(조합 등)를 1곳만 둘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내놨다. 이에 분당 서현 시범단지와 수내 양지마을은 인접한 4~5개 단지끼리 모여 통합 재건축을 선언한 상태다. 몸집을 불려야 사업성도 커지고, 시공사와의 협상력도 확보할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단지 간 이해관계 충돌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느티3·4단지 조합은 10년 넘게 관리동을 공유해온 인접 단지로, 리모델링 시공사 선정 이후에도 통합 재건축을 목표로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막판 마감재 선정이나 분양가 산정 등에서 조합 간 이견이 불거졌고, 지난 5월부터는 실무적으로도 완전히 분리됐다.

오는 5월 이주 예정인 느티마을 3단지 전경. 심윤지 기자

김명수 느티3단지 조합장은 “지금 분당에서 리모델링 추진 중인 단지는 조합원들이 살고 있는 평수가 비슷해 그나마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편이다”면서 “단지 별로 소형평수와 대형평수 비율이 다른 경우, 어느 단지에서 조합장을 선정할지부터 갈등 요인이 될수 있다”고 했다.

기부채납·공공기여도 고려해야 한다. 재건축 사업성이 높아지려면 용적률을 상향, 즉 정부가 같은 땅에 들어오는 가구수를 늘려 조합원 분담금을 줄여줘야 한다. 문제는 가구수가 늘어나는 만큼 도로·상하수도·학교 확충 등 기반시설 재투자에 드는 비용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후계획도시특별법을 발표하며 “특별정비구역은 용적률 등에서 혜택을 주는 만큼 기반시설 재투자 비용을 기부채납과 공공기여로 청구해 ‘지역간 형평성’을 확보하겠다”고 예고했다.

느티마을 3.4단지 리모델링 후 조감도. 포스코건설
리모델링도 재건축도 모두 ‘장기전’

‘용적률 500%’를 골자로 한 재건축 규제완화는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리모델링 조합장들은 모든 정비사업 자체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성남시에 따르면 분당에서 리모델링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5개 단지는 조합 설립에서 사업계획 승인까지 짧은 곳이 6년 최대 11년의 시간이 걸렸다.

정부가 규제완화를 선언하더라도 실무 단계에서는 안전진단 등을 소홀히 하기 어려워 각종 허가가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원했던 박근혜 정부는 2014년 ‘4·1 부동산대책’을 통해 3개층 수직증축 허용해 리모델링 수익성을 개선해주겠다고 밝혔다. 이후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 사업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늘었지만, 막상 국토부 선정 공인기관들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2차 안전진단 검토를 차일피일 미뤘다는 것이 조합 측 설명이다. 결국 분당의 리모델링 조합들은 수직증축을 포기하고 수평·별동증축으로 선회한 후에야 2021년 사업 승인을 받았다.

무지개마을 4단지 리모델링 이후 조감도. 포스코건설 제공

서은신 느티4단지 조합장은 “2018년 수직증축을 포기하고 조합원들의 동의 얻는 과정에서 풍파가 정말 컸다”며 “정부가 지금 안전진단을 면제해주겠다고 약속을 해도, 막상 사업에 들어가면 안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 조합장은 “리모델링이 활성화된건 박근혜 정부가 가구수를 15% 늘려 사업성을 높여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데, 그 후 10년이 흘렀는데도 아직 착공한 단지가 없다”며 “정부가 특별법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당장 선도지구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 것인지부터 실질적인 허가는 모두 ‘지자체’가 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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