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오세훈, 월 20만원 지원하면 반지하 탈출할까
'월 20만원 바우처·공공임대 확대' 역부족
재택근무 중인 지난 6월 어느 날, 바깥에서 날카로운 공사 소리가 들렸다. 무슨 상황인지 물어보니 집주인의 신청으로 창문에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반지하 집 창문에 물막이판, 역류방지장치를 설치하면 집중호우 때 침수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달 후인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에도 이 장치 덕분인지 올해는 집 안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았고, 하루종일 벽을 닦아낼 필요가 없었다.
그나마 이 집은 서울시가 시행 중인 '침수 취약가구 돌봄 서비스'를 받은 덕분이었다. 이는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모두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건물주, 혹은 세입자가 직접 구청에 신청하고, 현장조사도 거쳐야 한다.
침수 가능성과 지원책을 집주인과 세입자가 알지 못하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구조다. 이번 호우에 일가족이 사망한 관악구 반지하집에도 이같은 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관악구는 이 사업에 작년 8억원을 투입했지만, 사각지대는 살피지 못했다.
구청은 "과거 침수 이력이 없었고, 본인이 신청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번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야 반지하 주택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16일 '반지하 가구 주거 상향'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 내용도 현실과 동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반지하 집에 거주하는 20만 가구를 대상으로 '주거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반지하 거주자가 지상층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2년간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월 20만원이면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가구 주택의 매물들을 비교해봤다. 반지하 집은 보증금 100만원·월세 29만원에 나와 있다.
그런데 같은 건물의 3층 매물은 반지하 집과 비슷한 크기지만 보증금 1억8000만원에 월세 25만원이다. 해당 매물을 내놓은 부동산에 문의하니 보증금 1000만원 당 월세 5만원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보증금을 최대한 줄여봐도 1억3000만원 가량이 추가로 필요하다.
대표적인 청년 금융 상품 '버팀목 전세자금'의 한도가 7000만원이다. 신용대출 등 다른 금융상품을 통해 보증금을 조달한다고 해도 지금같은 고금리 시대에는 금융비용을 감당하기가 더욱 어렵다. 월 20만원으로는 주거 상향이 불가능해 보인다.
또 다른 대책인 공공임대 이주방안도 아쉽다. 쪽방, 고시원, 반지하 등에서 거주하는 무주택 가구가 지원할 수 있는 '주거 상향 사업'에 당첨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작년 이 사업을 통해 1699가구가 입주했는데, 반지하 거주자는 14.8%(247가구)에 불과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약 20만 가구가 반지하에서 거주하고 있다.
다른 공공임대 주택으로 이주하기도 어렵다. 거주 지역이 바뀌는 데에 따른 불편함이 있고, 임대료도 부담이다. 지난 5월 모집한 '2022년 제1차 국민임대주택'의 경우 중랑구의 전용면적 39㎡ 집이 보증금 약 3000만원에 월 임대료가 23만~25만원 수준이다. 이마저도 까다로운 청약 조건을 갖추고, 평균 14.2대 1의 청약 경쟁률을 뚫어야 얻을 수 있다.
이런 우려는 이미 관련 조사에서 증명된 바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난 2020년 반지하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는 1만8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9.4%가 "지상층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전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임대료 상승과 이사 비용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대책은 12년 전 대책을 답습했다는 점에서 실망감을 안겼다. 서울시는 2010년 집중호우로 많은 반지하 주택이 침수된 것과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반지하 주택 공급 억제'와 '임대주택 공급'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시에도 시장 직을 맡고 있었다. '복·붙(복사 및 붙여넣기)'으로 채워진 이번 대책에는 12년 어치의 고민이 없어 보인다.
"반지하 주택은 사라져야 한다"고 한 오세훈 시장의 발언은 현실판 영화 '기생충'의 비참한 현실을 종식시킬 것이란 기대감과 희망을 주는 듯 하다. 하지만 진짜 현실에선 주거 상향 등 '반지하'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적인 효과와 고민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하은 (le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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