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도 세입자도 패닉..대출규제로 전입도 이사계획도 꼬였다

조성신 2021. 10. 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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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실수요자 피해 고민 확산
전세대출 안나오면 월세로 전락
금융위 이달 가계부채 대책 발표
정책금융 보증 비율 축소 DSR 전세대출 포함 등 거론
서울시내 점포의 대출창구 모습 [매경DB]
#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무주택자다. 올해 연말 전세자금대출 만기를 앞두고 전세대출 한도가 축소될 수 있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전세보증금 갱신에 따른 증액만큼 대출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은행으로부터 들었지만, 대출규제에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전세를 옮기고 싶어도 전세매물이 없고 2년 동안 전세보증금은 감당이 어려울 만큼 뛴 현재 상황 때문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생활하고 있다.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실수요자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따라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줄인 데 이어 전세대출까지 옥죄기 시작하면서 보금자리 마련을 준비하던 이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셋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 세입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최근 몇 년동안 전셋값이 급등한 상황에 대출 한도가 쪼그라들면서 보증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상환 능력을 넘는 과도한 대출을 막겠다는 취지지만, 애먼 무주택 서민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권과 전세대출 실수요자 등에 따르면 매매가는 물론 전월세 가격까지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은행들은 정부가 제시한 전년도 가계대출 잔액 대비 증가율(6% 이내)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대출총량을 줄이며 실수요자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현재 농협은행은 전세자금대출을 전면 중단했고, KB국민은행은 전세계약 갱신 시 증액범위 내로 대출한도를 축소했다. 하나은행도 이를 검토하고 있다. 전세자금 대출제한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월세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 주요 은행 중 가계대출 여력이 가장 많이 남은 신한은행도 총액 한도가 없던 대출 모집인을 통한 전세대출을 이달부터 5000억원으로 제한한다.

금융당국이 이달중 발표하는 가계부채 대책에서 실수요자가 많지만 갭투자에 활용돼온 전세자금 대출에 대해 어떤 내용을 담을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정책금융기관의 은행 보증 비율 조정이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등의 방안 등이 거론된다. 다만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고민이 깊어 예상보다 규제 강도가 낮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융권에선 전세대출 규제와 관련해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의 은행 전세대출 보증 비율 조정안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금융공사·SGI서울보증·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들은 현재 금융사의 전세대출에 대해 80~100%의 비율로 보증을 서주고 있는데 이를 50~80%까지 낮춘다는 것이다. 보증 비율이 이렇게 줄어들면 은행권은 전세대출 회수에 부담을 느껴 차주를 선별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DSR 규제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DSR은 차주의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연 소득으로 나눠 산출하는데, 현재 은행권 차주별 DSR 산정 시에는 전세대출은 제외돼 있다. 다만 이 방안이 실행되면 전세대출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집값이 오른건데 전세대출을 막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무주택자와 유주택자 간 보증 비율을 차등 적용하거나 보증 비율 외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만 DSR 범위 내에 포함하는 식의 대책이 담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계약 갱신 시 보증금이 오른 만큼만 대출해주는 조치를 적용한 국민은행의 사례를 전 은행권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국민은행에선 이전에 보증금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를 경우 다른 대출이 없다면 전셋값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증액분인 2억원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과도한 대출을 막으려는 조치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획일적인 규제만을 기다리지 않고 은행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차주별 DSR 규제가 은행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2금융권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2금융권에 적용되는 차주별 DSR은 60%로 은행권(40%)에 비해 높다. 차주별 DSR 규제 대상에 카드론을 포함하는 시기를 내년 7월에서 앞당길 가능성도 크다.

이 외에도 전세대출을 받을 때도 주택담보대출 처럼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는 방안도 나올 수 있다. 전세대출 실행 차주에게 기존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상환하게 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임차보증금 반환용 주담대도 거절 속출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창구에서 고객이 상담을 하고있다. [매경DB]
또 다른 실수요 대출인 임차보증금 반환용 주택담보대출(전세 퇴거 대출)이 거절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내집 마련을 위해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하거나, 자금 문제로 소유주택을 전세로 주고 본인도 전세를 사는 1주택자들이 전세 퇴거 대출의 주 수요자들이다.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집주인이 받는 전세금 반환 대출, 전세 퇴거 자금 대출도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로 막히고 있다. 전세금 반환 대출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빌려주는 일종의 주택담보대출이다.

세입자 퇴거을 위한 대출이라 그동안 비교적 문턱이 높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은행들이 대출 총량 관리에 나서면서 전세금 반환 목적의 대출도 받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산 집주인들은 대출이 안 나와 보증금 마련에 문제가 생길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특히 세입자를 내보내고 실입주하려던 집주인은 더욱 곤란한 상황이고, 대출이 막혀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돌아갈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세금 반환 대출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하거나, 자금 문제로 소유주택을 전세로 주고 본인도 전세를 사는 1주택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주택가격의 일정부분과 전세보증금 중 더 적은 금액으로 받을 수 있다. 1주택자를 기준으로 서울 등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는 대출이 주택가격의 40%까지만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전세금 반환 대출을 이용해서 '갭투자'에 나서는 것부터가 문제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금융당국은 2019년 12월부터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의 시가 15억원 초과 주택에 한해 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을 금지했다. 시세 9억원을 넘는 주택도 소유자가 3개월 이내에 해당 주택에 직접 전입하는 조건으로만 취급이 가능하다. 올해 7월부터는 규제지역의 시세 6억원을 넘는 주택 보유자는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추가로 적용받아 돈을 빌리기가 더 어려워졌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전세를 살던 집주인과 보증금을 받아서 나가야 하는 세입자가 이사 시기를 서로 맞추지 못해 대출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면서 "집주인이 실입주를 위해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우고 나가느라 임대인의 복비를 부담하거나 세입자에게 '대출이 안 나오니 당장 보증금을 못 준다'며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이르면 10월 초부터 전세 계약을 갱신하는 세입자에 대해 현재 전체 보증금의 80%까지 받을 수 있는 전세대출 한도를 보증금 상승분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이 이날부터 시행한 조치와 같은 내용이다. 전셋값이 4억원에서 계약 갱신 후 5억원으로 올랐다면 이제까지는 5억원의 80%인 4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보증금 상승분인 1억원까지만 가능하다.

주택 업계에선 진짜 문제는 내년부터라고 설명한다.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나는 내년 8월 이후 '이중 전셋값'이 나타날 정도로 벌어진 가격차를 기존 세입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때부터 중저가 주택의 매매가와 전셋값이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학회장은 "전세대출로 인한 문제는 내년이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2년전 가격과 지금의 전셋값은 천지차이"라며 "대출이 막히게 되면 이들이 전셋값을 감당할 수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서 학회장은 "내년에 계약갱신이 끝나면서 새롭게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이들의 경우 전세 대출 한도가 줄면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결국 중저가 지역에서 매수로 돌아서거나 전세로 들어 갈텐데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다"면서 "대출 규제가 가계 대출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실수요자들에겐 전세 대출을 열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자 이사를 앞둔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이번 조치에 대한 불만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젠 월세 살라는 거냐", "서울에서 나가라는 말"이라는 등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 올라와 있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는 부동산 시장 및 금융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을 것이나 서민들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세부 보완책들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보증 기관의 일괄적인 보증 한도 축소보다 임대인의 보유 자산과 부채 현황을 고려한 차등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한 주택업계 관계자는 "주택 공급 부족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등의 정책 실패,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주택 가격 급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가계대출 시장에 대한 규제만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을 통제한다면 무주택자들의 피해가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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