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대 금리·우왕좌왕 대책·불안심리에..서울 집값 1년 내내 올랐다
[경향신문]
작년 6월 첫주부터 51주 연속↑
정부 대책 나오면 둔화됐다 반등
전국 주택값 지난해 5.36% 뛰어
1년 전인 지난해 6월 첫째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10주 만에 하락을 멈췄다. 전주 대비 ‘0.00%’로 보합세를 기록한 것을 두고 “급반등은 어렵다” “강보합 예상” 등의 전망이 제기됐다. 2019년 ‘12·16대책’에서 나온 규제 강화 기조에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이 반영된 분석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10주 만의 반등은 이후 1년 내내 이어질 기록적인 집값 상승 랠리의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집값은 말 그대로 ‘숨 가쁘게’ 올랐다. 1일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6월 첫째주(6월1일 기준) 이후 지난 5월 넷째주까지 51주 동안 단 한 주도 내린 적이 없다. 정부가 굵직한 대책을 줄줄이 내놓으면 상승폭이 둔화하거나 제자리걸음을 보였지만 한 달을 채 못 넘겼다. | 관련기사 3면
1년 내내 이어진 상승장에서 서울은 25개 자치구 전역이 들끓었다. KB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지난해 6월 9억2509만원이던 평균 매매가는 지난 4월 11억1123만원으로 집계돼 열 달 사이 2억원 가까이 뛰었다. 서울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2019년 12·16대책 이후 잠잠하던 매수세가 지난해 5월부터 차츰 붙기 시작했다”며 “당시 17억원대에 거래되던 30평대 아파트들은 연말을 기점으로 20억원을 넘어서는 등 매번 ‘고점’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올랐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집값 랠리는 수도권으로 번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5.36% 오르며 2011년(6.14%)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4월까지 누적 상승률은 3.16%로, 같은 기간 5년 평균(0.31%)보다 10배 가까이 올랐다. 주택 매매거래량 역시 지난해 128만건에 달하며 국토교통부가 집계를 시작한 2006년 이래 최대치를 찍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집값 상승 피로감이 쌓였고 하반기 수요자들의 관심이 3기 신도시 등 분양시장으로 이전할 확률이 높아 지난해 대비 주택거래량은 다소 감소할 수 있다”며 “선호 지역 내 똘똘한 한 채 구매나 실수요자가 유입되는 중저가 지역, 교통망 확충지 등을 위주로 거래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금리에 갈 곳 못 찾던 시중 자금, 갭투자 등 대거 몰려
시장은 널뛰는데 정부는 공급·전세 등 뒷북대책 발표만
젊은 세대의 ‘영끌’과 증여 최고치…부동산 양극화 심화
지난 1년간 이례적인 집값 상승은 코로나19 이후 ‘0%’대 금리로 풀린 유동성과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 시장의 불안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뛰는 집값에 ‘막차’를 타려는 추격매수가 이어졌고 30대 이하까지 ‘패닉바잉’에 나서면서 가격 상승을 떠받친 것”이라고 말했다.
■ “집 사자” 열풍에 갭투자 활황
전세시장 불안은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책에 지난해 6~7월 반짝 움츠러들었던 매매가 상승세는 7월 말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가격이 오르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후는 ‘역대급 불장’이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 주간상승률은 지난해 10월 첫째주 0.14%에서 11월 셋째주 0.30%까지 ‘역대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는 실수요와 투기수요가 얽힌 ‘갭투자’ 등 주택 구매 수요를 부추겼다. 지난해 서울 강남, 세종시 등 구매 수요가 높은 지역의 주택매매거래 중 갭투자 비율은 60%를 상회한다. 지방과 수도권 아파트 매매값이 뒤를 이어 주간상승률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수급불균형도 집값을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지난해 상반기 양도소득세 중과유예가 끝나고 다주택자 절세매물이 소진되면서 시장에 회전되는 물량이 줄어든 데다, 신규 입주 물량도 충분하지 않아 공급부족 현상이 가시화됐다”고 설명했다.
집값 상승을 노리는 투기수요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쏟아낸 정부의 대책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서울을 규제하자 수도권이, 수도권을 규제하자 지방 광역시 집값이 뛰었다. 이마저 규제하자 지방 중소도시가 과열되는 ‘풍선효과’가 전국 집값을 달궜다. 수도권에서는 광역급행철도(GTX)가 예정된 지역이나 신도시 개발 유력지역 등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며 시장에서는 ‘수요가 호재를 찾아다닌다’는 말까지 나왔다. 경기 광명, 군포, 김포 등의 지난해 외지인 매수 비중은 절반인 50%에 달한다.
■ 정부 대책은 ‘우왕좌왕’
시장은 널뛰는데 정부는 우왕좌왕이었다. 폭등 초기 규제지역을 확대한 ‘6·17대책’, 다주택자 세제규제를 강화한 ‘7·10대책’을 발표하며 규제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공급은 충분하다”(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던 정부는 집값 상승이 계속되고, ‘공급 부족’ 지적이 나오자 ‘공급 확대’로 정책방향을 급선회했다. 지난해 서울 및 수도권에 13만2000가구를 공급하는 ‘8·4대책’이, 올해 전국 83만가구 공급의 ‘2·4대책’이 나왔다. 불과 6개월 새 100만가구에 달하는 공급대책이 마련된 것은 전례가 없다.
지난해 7월31일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나타난 전세시장 불안에 대해 “일시적”이란 진단을 고수하던 정부는 폭등한 전셋값이 집값을 밀어올리자 지난해 11월 부랴부랴 전세대책을 발표했다.
7·10대책 등으로 꺼내들었던 부동산세제 강화 대책은 제대로 시행도 못해 보고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여당 주도 아래 재산세 감면 기준 상향,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 축소 등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는 최상위 부동산 보유자에게 대부분의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라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 ‘영끌’도 증여도 최다
천정부지로 집값이 뛰면서 양극화는 심화됐다. 주식·가상통화 등 다른 자산들 가격의 급등과 더불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의미하는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KB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올 1월 전국 주택의 5분위 배율(상위 20% 평균값을 하위 20% 평균값으로 나눈 것)은 8.7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양극화 심화는 30대 이하 세대의 ‘영끌’과 부모 세대의 부동산 ‘증여’가 동시에 최고치를 나타내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누군가는 무리하게 대출을 감행해 집을 사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부모로부터 집을 물려받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대출 이자를 감당하며 ‘영끌’을 할 형편 자체가 안 되는 청년 세대도 존재한다.
올 1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 5945건 중 30대 매수자의 비중은 39.6%(2353건)로 집계 이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20대 매수자까지 합한 비중은 44.7%로 이 역시 역대 최고치다. 한국은행 집계 결과 20·30대의 지난해 말 가계대출 규모는 440조원으로 2019년 말 대비 65조2000억원(17.3%) 증가해 작년 4분기 말 가계신용대출 증가율(7.9%)을 두 배 넘게 웃돌았다.
7·10대책 등으로 부동산 보유세가 강화되자 증여가 큰 폭으로 늘었다. 한국부동산원 집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증여 건수는 9만1866건으로 전년(6만4390건) 대비 2만7476건 늘었다. 2006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신기록이다. 직방은 올 1~4월 증여를 받은 전체 ‘수증인’ 중 40대 미만 비율을 47.4%로 추정했다. 20·30대가 절반가량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값이 지나치게 많이 오르면서 2030세대는 증여를 받을 수 있는 부유층, 그나마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살 여력이 있는 대기업·전문직 종사자, 영끌조차 할 여력이 없는 청년층으로 양극화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집값 버블이 붕괴돼야 양극화가 완화되겠지만 이 경우 막대한 가계부채가 또다시 문제가 된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임대차3법·공공자가주택은 ‘긍정 평가’
세입자 주거 안정 강화·공공분양의 유형 넓혀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부동산 가격 폭등과 어수선한 시장 상황 속에서도 ‘임대차3법’의 시행, ‘공공자가주택’ 도입 확정 등 의미 있는 성과가 없진 않았다.
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서울 및 수도권, 세종시와 광역시·도의 시 지역 등지에서 임대차신고제(전·월세신고제)가 시행됐다. 지난해 7월31일부터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등을 포함해 세입자 권익보호를 위한 ‘임대차3법’이 완성된 것이다.
임대차3법으로 세입자들은 한 집에서 적어도 4년간 거주할 수 있게 됐고, 계약 갱신 시 기존 보증금의 5% 내 범위에서 임대료 인상 부담을 지게 됐다. 신고제를 통한 확정일자 부여 등 법적 대항력을 갖추기도 쉬워졌다.
정부의 ‘공급 확대’ 정책에 대해선 비판도 제기되지만, 이 과정에서 토지임대부(토지환매부), 이익공유형, 지분적립형 등 다양한 형태의 공공자가주택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임대차3법은 장기적으로 세입자의 거주 안정은 물론 주택값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간 수분양자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던 공공분양에 여러 유형의 공공자가주택이 도입된 것 역시 의미 있는 변화”라고 밝혔다.
서울 영등포·동자동 일대의 쪽방촌 재개발 사업도 기존 주민들의 거주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공공사업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영등포 쪽방촌의 경우 개발계획이 수립돼 곧 착공을 앞두고 있다. 동자동 사업의 경우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는 집주인들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게 과제로 남아 있다.
김희진·송진식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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