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탈서울 뒤 더 멀어진 사람들 [이슈&탐사]
박모(39)씨 가족은 경기도 과천시 27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전세보증금은 5억3000만원이다. 박씨는 과천의 신축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고 청약을 계속 넣었지만 탈락했다. 무주택자 가점을 높이려고 아파트 매입 시점도 늦춘 것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박씨는 “과천 청약 물량이 많아서 될 줄 알고 계속 시도했는데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박씨가 5년 전 청약 신청을 했을 때만 해도 매입할 수 있었던 아파트는 지금 가격이 배로 뛰었다. 박씨는 “과천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서 매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제는 안양 같은 다른 지역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도 서울과 더 멀어지게 된 사례는 박씨 말고도 많았다. 이런 현상은 최근 4년간 서울에 이어 경기 지역 집값까지 들썩이면서 가속화된 것이다. 급등한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울 내부에서 외곽으로 밀려나고, 그다음 경기도로 이주한 뒤 경기도에서도 다시 더 멀리 이사하는 인구 이동 흐름이 나타났다.
경기도로 ‘탈서울’ 한 사람들은 2017~2020년 44만4647명이었다. 이는 서울로 들어간 전입 인구와 서울을 빠져나간 전출 인구를 분석한 결과다. 이 기간 서울과 경기도 간 ‘전입-전출’ 인원이 -44만4647명(순유출 인구)이라는 뜻이다. 2017년 10만7985명, 2018년 13만5216명, 2019년 9만1954명, 2020년 10만9492명이 서울에서 경기도로 빠져나갔다. 경기도로 순유출된 인원은 집값이 잠시 안정되는 듯했던 2019년 줄어들었지만, 2020년 집값 급등기에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하남시와 김포시에 이어 고양시(5만4207명), 남양주시(4만7660명), 용인시(3만2079명) 순으로 탈서울 인원이 많았다.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데다 3기 신도시 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주한 사람들은 다시 서울에서 더 떨어진 경기권으로 이주하는 흐름을 보였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하남시 순유출 상위 3곳은 화성시(244명), 세종시(132명), 평택시(73명)로 집계됐다. 김포시 사람들은 같은 기간 화성시(631명), 평택시(239명), 하남시(206명) 등으로 빠져나갔다.
서울 인근 경기 지역에서도 이전 주거지보다 더 집값이 낮은 곳으로 이사하는 하향 이동 현상이 일어난 탓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주한 사람들의 경우, 자산 급증이 일어나지 않고는 서울로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기도 지역에서도 집값이 더 낮은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고양시 순유출 상위 3곳은 파주시(1만1776명), 김포시(4980명), 화성시(2541명)였다. 남양주시의 경우 의정부시(1655명), 하남시(1649명), 화성시(1458명) 순으로 순유출 인원이 많았다.
용인시 순유출 상위 3곳은 화성시(1만9450명), 하남시(1699명), 평택시(1339명)로 집계됐다. 의정부시는 양주시(3813명), 화성시(942명), 평택시(821명) 등으로 이주하는 흐름을 보였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27일 “집값에 밀려 자꾸 후진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인구 흐름이 상당히 약한 곳은 성남·구리·부천시였다. 성남시의 순유출 상위 3곳은 광주시(3만155명), 용인시(1만9007명), 하남시(5115명)였다. 구리시에선 남양주시(9078명), 하남시(1177명), 화성시(423명) 순으로 많이 빠져나갔다.
부천시는 시흥시(1만5097명), 김포시(8128명), 인천 서구(4492) 순이었다. 성남·구리·부천시의 순유출 상위 10곳 중 서울은 한 곳도 없었다.
경기도뿐 아니라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한동안 집값과의 전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에서 ‘버티던’ 사람들도 치솟는 집값을 더는 감당하지 못해 탈서울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18년 11월 서울 광진구에 신혼집을 구한 최모(34)씨가 바로 그런 사례다.
최씨 신혼집은 전세 보증금 2억2000만원에 방 2개짜리 빌라였다. 그런데 지난해 전세 계약을 연장하면서 보증금이 1000만원 올랐다. 임대료 증액을 제한한 ‘5%룰’ 덕분이었다. 다만 최씨가 계약을 연장한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씨는 “집 주변 빌라들은 같은 기간 전세금이 5000만원 이상 올랐다”며 “오른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어 이사를 갈 수도 없었다. 계약 연장이라는 선택 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최씨는 “경기도 아파트를 분양 받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박모(44)씨는 ‘서울 스테이’를 포기했다. 박씨는 최근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서울 아파트 분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서울 강서구의 한 빌라에 전세로 살면서 청약 가점을 높이기 위해 10년 이상 무주택 기간을 버텨냈지만 부양가족 가점 등이 부족했다. 박씨는 “전세보증금 2억원에다 대출금을 끌어 모아 분양을 받는 것”이라며 “출퇴근 거리는 멀어졌지만 주거환경이 더 나은 신축 아파트에서 신혼집을 꾸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음 달 서울 관악구 원룸을 벗어나 9평짜리 영등포구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하는 이모(34)씨는 “전세금의 30%인 4500만원을 잔금 지급일까지 보내줘야 하는데 수중에는 3000만원 뿐”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1500만원을 신용대출 받으려고 보니 이자율이 5~6%나 돼서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빌라에 사는 김모(38)씨는 “나보다 일찍 결혼해 서울에 자가를 보유하고 있는 친구들과 자산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다”며 “집값이 잡힐 것이라고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불안정에서 비롯된 인구 이동 흐름이 한동안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 인구는 줄고 있지만 1, 2인 가구 증가 등 영향으로 주택 수요는 감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원 구자창 문동성 김경택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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