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집값 폭등, 5년차에 사과.. 文·盧 부동산 평행이론
'투기와의 전쟁'서 공급 확대로 정책 전환한 점도 닮은 꼴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며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입니다”라고 했다. 14년 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신년 특별 연설 때 부동산 문제에 대해 “단번에 잡지 못해서,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두 대통령 모두 집권 5년 차 신년 벽두에 집값을 잡지 못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그 계승자를 자처하는 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행보는 14년 시차를 두고 ‘평행 이론’처럼 진행 중이다. 집권 말기에 대(對)국민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장 상황, 부동산 실정(失政)을 타개하는 돌파구로 주택 공급 확대를 꺼내 든 것이 ‘판박이’처럼 닮았다.
◇집권 4년 차에 집값 급등, 해 바뀌자 사과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부동산 문제로 골치를 앓았지만, 4년 차에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전국 아파트 값은 13.75%, 서울은 1년 새 24.11% 급등했다. 문재인 정부도 4년 차인 2020년 전국 아파트 값이 9.65%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집값 급등으로 민심이 들끓으며 지지율이 떨어졌고, 결국 두 대통령 모두 이듬해 신년 메시지를 통해 사과했다.
사과 발표 직전 하반기에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난과 ‘패닉 바잉(공황 매수)’ 현상이 심해진 것도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2006년 8~9월 주택 공급 부족으로 서울을 시작으로 전세난이 불거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서울시는 판교신도시·은평뉴타운에 새로 공급하는 아파트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90%까지 끌어올려 책정했다. 정부의 고분양가 정책에 놀란 무주택자들이 주택 매수에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세에 더 속도가 붙었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담은 개정 주택임대차법을 전격 시행했고, 이는 전셋집 품귀 현상으로 이어져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전세난이 전국으로 확산하며 매매가격까지 밀어올렸고, 전세난에 지친 무주택 실수요자가 집을 사들이는 패닉 바잉 현상이 심해졌다.
◇'투기와 전쟁'서 ‘공급 확대’로 전환
두 대통령의 초기 부동산 정책 기조는 ‘투기와 전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는데 종합부동산세 도입,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투기과열지구 지정 등 대다수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뼈대가 됐다. 문 대통령도 이미 발표한 부동산 대책 24번 상당수가 다주택자를 옥죄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1월만 해도 “부동산 투기와 벌이는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각종 규제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정책 기조 변화 조짐이 나타났다. 투기 억제가 아닌 주택 공급 확대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4년 차인 2006년 ’11·15 대책'을 통해 수도권에 12만5000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줄곧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던 문재인 정부도 작년 ‘8·4 공급 대책’을 통해 수도권에 13만2000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3개월 뒤엔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한 ’11·19 공급 대책'을 추가했고, 문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장관을 교체하며 “획기적 공급안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 모두 임기 말 뒤늦게 공급 확대에 무게를 두는 정책 기조를 밝혔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것도 공통점이다. 임기를 1년여 남긴 노 전 대통령이 “2010년까지 164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자 세제 완화 등으로 기존 주택을 시장에 끌어들이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문 대통령을 향한 부동산 전문가들의 제안도 마찬가지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주택 시장을 빠르게 안정시키려면, 이미 발표한 규제 정책을 되돌리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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