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효과 크고 빠른 재건축은 규제, 어렵고 비용 큰 신도시만 고집

정순우 기자 2020. 9. 10.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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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신도시 사전청약 '3대 맹점'

정부가 지난 8일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주택 6만 가구의 사전(事前) 청약 계획을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냉소적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집값 잡기에 급급한 나머지 분양 물량을 ‘당겨막기’하면서, 정부 주요 정책 기조인 ‘후(後)분양 확대’를 뒤집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재건축 등 민간이 움직일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공급 대책은 끝까지 외면한 채 비효율적인 신도시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원활한 공급은 결국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뒤집힌 후분양 로드맵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후분양 확대에 힘을 실었다. 집을 짓기 전에 분양하는 선분양은 부실 시공을 유발해 소비자 피해를 부추긴다는 이유였다. 2017년 경기도 동탄 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2000건 넘는 하자 신고가 접수되자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은 후분양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단계적으로 후분양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답했다.

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사전 청약을 실시할 예정인 경기도 고양시 창릉신도시(왼쪽)와 남양주 왕숙신도시(오른쪽)의 전경. /주완중 기자·성형주 기자

정부는 그 이듬해 6월 공공주택의 후분양 비율을 2022년 70%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로드맵을 공개했다. 3기 신도시가 모두 후분양 방식으로 공급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정책 기조는 올해 들어 180도 바뀌었다. 주택 공급이 부족해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 5월 “3기 신도시 등 공공택지 9000가구를 사전 청약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7월 문재인 대통령이 공급 대책을 주문하자 사전 청약 규모를 3만 가구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치 논리에 따른 단기적인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권의 철학과도 같은 중장기적 정책 기조를 뒤집는 모순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재건축은 규제한 채 비효율적인 신도시만 고집

현 정부 출범 후 많은 시장 전문가들이 집값 안정 대책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확대’를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는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로 재건축을 옥죄었고, 공급 부족 여론이 거세지자 2018년 말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3기 신도시 발표 이후에도 집값이 안 잡히자 정부는 지난달 용적률(토지 면적 대비 건축 면적 총합의 비율)을 완화하는 대신 공기업이 공동 사업자로 참여하고 임대주택을 늘리는 ‘공공재건축’을 해법으로 내놨다. 하지만 서울 강남 등 주요 지역 재건축 단지 중 관심을 보이는 곳은 아직 없다. 재건축 조합들은 “기존 규제가 워낙 강력해 실익이 없는 데다 임대주택을 늘리는 데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이 심하다”고 토로한다.

신도시를 통한 주택 공급은 재건축에 비해 비효율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재건축은 도심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어서 입주 즉시 편리한 생활이 가능한 반면, 신도시는 교통망과 기반시설을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부는 교통 대책을 신속하게 추진해 불편함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지만 재건축에 비하면 여전히 비효율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늘어나는 주택 수요를 충당하려면 신도시와 재건축 활성화가 동시에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며 “재건축 소유주들이 기피하는 임대주택을 고집하기보단 현금 기부채납 등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환수해 서민 주거 복지에 쓰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반발엔 귀 닫아

사전 청약 계획 수립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목소리가 배제됐다는 점도 맹점으로 지적된다. 3기 신도시 토지주(主) 등으로 구성된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 임채관 의장은 9일 “토지주와의 협의 없이 정치적 목표 달성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사전 청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토지개발정보기업 ‘지존’의 신태수 대표는 “토지주가 현장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방식으로 버틴다면 사업 일정은 상당히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 캠프킴 부지와 태릉CC, 서부면허시험장, 과천정부청사 등 알짜 입지의 사전 청약 계획이 이번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로 지목된다. 이곳은 지역 주민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반발이 심한 곳들이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최근 “정부청사 일대 주택 공급계획이 강행되면 일체의 행정절차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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