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피하자니 쓸 카드 없어"..'공급' 돌아선 文 정부 '딜레마'
공급 효과 좋은 재건축, 규제에 막혀 '꽁꽁'
시장 수요 외면한 공공주도 방식 한계 노출
세종은 행정수도發 집값 급등 '아이러니'
정부가 주택가격 안정을 위한 공급 확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당·정·청 및 서울시가 좀처럼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모습이다.
큰 논란을 겪었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보존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태릉 등 국공립 시설 부지 발굴을 주문하면서, 서울 유휴지 미니신도시가 공급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도심 접근성이 높은 핵심지의 주택 시장 과열을 잡기엔, 규모가 한정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주택 공급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했지만, 앞서 22번이나 쌓아놓은 규제를 피해 자신있게 쓸 만한 공급 카드가 마땅치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공급에 따른 실효성이 가장 클 것으로 꼽히는 서울 재건축 사업은, 관련 규제가 6·17 대책에서 한차례 강화되고 이달 말부터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됨에 따라 현 정부에서는 ‘일단 정지’될 것이란 전망이다.
▶서울 청약대기자 600만 명인데, 태릉 미니신도시 고작 2만 가구=청와대가 직접 이름까지 거론한 만큼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82만5000㎡)의 미니신도시는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주택용지로 탈바꿈되면 예상되는 공급규모는 2만 가구 정도다.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1만2000여가구)의 배 가까이 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란 평가다. 서울 지역 청약 통장 가입자수만 60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무주택 기간이 10년 이상인 이들도 160만 명으로 추산된다. 당장 주택 시장 대기 수요의 조급함을 불식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이에 강남권 유휴부지들도 개발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물망에 오르는 대치동 SETEC과 삼성동 서울 의료원, 개포동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옥 등 5~6곳을 모두 합쳐도 2만여 가구에 그친다.
효과는 큰 기대가 없는데, 부작용도 벌써부터 거론된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태릉골프장과 인접해 갈매지구와 별내신도시가 있고, 그리고 현재 그 주변에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임대아파트를 짓고 있다”면서 “교통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은 신도시 개발에 따라 일대 주거환경 악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2022년이면 서울서 재건축 가능한 아파트 30만…규제에 발목잡혀=시장 전문가들은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공급안으론 재건축을 통한 공급을 꼽고 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준공 30년에 진입해 재건축이 가능해지는 아파트는 약 30만 가구에 달한다.
당장 재건축 추진 중인 잠실주공 5단지가 50층으로 재건축 되면 3930세대에서 6401세대로 늘어난다. 올림픽선수 기자촌 아파트의 경우 재건축으로 5540세대가 1만2000세대가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두 아파트 단지에서만 늘어나는 세대수가 8900세대에 달한다. 반포자이(3400여세대), 반포래미안퍼스티지(2400여세대), 래미안대치팰리스(1200여세대), 아크로리버파크(1600여세대) 단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재건축을 엄격하게 규제하겠다는 원칙을 세운 데다가 재건축 활성화 자체가 인근 지역의 집값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꺼내 들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투자 수요가 몰리는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안전진단 강화, 초과이익환수제, 실거주 요건 강화 등을 적용한 바 있다. 도시환경 개선과 신규주택 공급이라는 순기능보다는 시장 안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상황이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재건축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놓고도 이를 풀어주지 못하는 이유는 앞서 재건축이 곧 투기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라며 “결국 스스로 만든 정책을 믿지 못하는 꼴이 됐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부가 재건축과 관련해서 고려하고 있는 것은 공공 재건축이다. 지난 5·6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에서 나왔던 공공 재개발을 재건축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공공기관과 민간이 손을 잡고 정비사업을 추진하면 용적률 상향, 기부채납 완화 등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늘어난 입주물량은 공공이 관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지는 만큼 이를 환영하는 조합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입지가 좋은 곳에서는 이런 방식을 통한 주택 공급이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강남권이나 여의도 등 재건축만 되면 100% 완판이 예정된 사업장은 아파트의 향후 가치를 생각했을 때 공공 재건축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며 “아파트 고급화보다는 빠른 사업 추진에 목적을 둔 외곽 단지들이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세종 집값 상승률 전국에서 가장 높은데, 부동산 잡기 위해 수도 이전 내놓아=공급 카드가 마땅치 않자,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카드로 여당에서 내놓은 것은 행정수도 이전이다. 앞서 헌법 재판소가 위헌 판정을 내렸지만, 재추진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는 세종은 지난 13일 기준 올 들어 전국에서 아파트 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다. KB국민은행 리브온에 따르면 전년 말 대비 세종의 아파트 매매값 상승률은 13.6%, 전셋값 상승률은 6.94%에 달한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세종을 비롯해 인근 대전의 집값 상승이 꾸준히 거론돼왔는데, 관련 통계도 보지 않고 내놓은 카드”라면서 “막대한 행정비용을 들여서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아파트값이 급등한 지역으로 옮긴다고 언급하는 게 비상식적이다”고 꼬집었다.
성연진·양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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