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마련 탈출구와 투기 사이..누가 갭투자를 키웠나?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는 3가지 방법. 첫째, 목돈 (다) 주고 산다. 둘째, 은행 대출을 받아 산다. 셋째, 전세를 끼고 산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채무 근저당 설정 하나 없이 내 돈 다 내고 살 수 있는 현금 부자라면 좋겠지만, 자기자본만으로는 집값 전부를 감당할 수 없는 게 현실. 결국 대부분은 많든 적든 금융권 대출을 받거나 세입자(보증금)를 두고 집을 장만하게 된다. 수중의 목돈만으로는 집을 사기가 어렵다 보니 ‘우리나라 아파트 주인은 은행’이고 ‘세입자가 집주인’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젠 너스레 섞인 이런 말들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겠다. 겉잡을 수없이 빠른 속도로 올라버린 집값과는 반대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더 쪼그라들어 현금 없이는 집 장만이 어려워졌고, 임대 보증금을 승계해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도 이제 정부 규제 아래 놓이게 됐으니, 당장 들어가 살 집이 아니라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기도 예전만큼 녹록지 않게 됐다.
⃟갭투자, 어디부터 적폐일까
문재인 정부의 22번째 부동산 대책이 집값 폭등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한 갭투자는 시장을 흔드는 불온한 투기며 부동산 안정을 해치는 적폐일까?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고 모두 갭투자로 볼 수 없어서다. 하지만 정부는 ‘푼돈’으로 여러 채를 사들여 시세차익을 노린 문제의 투기성 갭투자뿐 아니라,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모두를 갭투자로 간주한다. 갭투자가 아니라는 것도 주택 구매자가 입증해야 한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가 지난 17일 발표한 6·17 부동산 대책의 배경 설명에서 갭투자를 최근 집값 상승을 부추긴 요인으로 든 것을 보면, 전세 낀 매매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는 것이 확인된다.
정부는 집값이 많이 오른 서울과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 임대 보증금을 승계해 주택을 매수한 비중이 높았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이들 지역이 투기과열지구 중에서도 주택 수요가 가장 많은 데다, 담보대출 규제가 상대적으로 센 고가주택이 많이 몰린 곳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투기 수요 외에 한도가 낮은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보다 목돈 부담을 덜 수 있는 전세 낀 매매를 택한 실수요나 임대사업자의 거래도 상당 수준 포함됐을 수 있다. 투기 의도가 없다면, 전세를 끼고 집을 샀다고 모두 불온한 거래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황종규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를 낀 주택 구매는 민간 자금을 활용한 우리나라 주택 마련 방법의 하나로 봐야 한다"며 "이런 형태를 모두 투기성 갭투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무주택 갭투자를 위한 ‘변명’…"누가 갭투자를 키웠나"
한발 다가서면 두 걸음 달아나는 집값 상승세는 무주택자를 다급하게 만든다. 집값의 60% 정도는 손에 쥐고 있어야 은행 대출이라도 더해 집 장만을 할 수 있는 게 현실. 어지간한 전용 85㎡짜리 서울 아파트도 10억원을 넘나드니 6억원 이상은 쥐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리 만만한 조건은 아니다.
"오늘 집값이 가장 낮다"는 심리도 확고해지고 있다. 목돈은 부족하고, 높아진 담보대출 문턱 앞에 내 집 마련이 다급해진 무주택자들은 급한 마음에 담보대출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는다. 바로 전세 낀 주택 매매, 갭투자다. 전세가율(매매가에서 전세 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아파트를 골라 그 차익만큼만 부담할 수 있으면 집주인이 되는거다.
예컨대 전세가율이 70%인 10억원짜리 집을 당장 전세를 끼고 산다면 집값의 30%인 3억원 있어도 살 수 있다. 같은 집을 은행 담보대출 3억8000만원(9억원x40% + 1억원x20%)을 받아 매입할 경우 6억2000만원이 필요한데, 절반도 안 되는 목돈으로도 집 장만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KB부동산 리브온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5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세가율은 54.8%에 이른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보다 목돈 부담을 덜 수 있으니, 대출 한도가 넉넉지 못해 조급해진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의 탈출구로 택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양영준 제주대 부동산관리학과 교수는 "정부가 주택시장에 개입할 때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이란 취지에 맞아야 당위성을 갖는데, 특정 지역의 가격을 통제하려는 것이라면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며 "정부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갭투자를 줄이려면 임대료가 내려가 집값과 전셋값의 차이가 벌어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도록 길을 터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담보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경우가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런 부분은 정부가 높인 주택담보대출의 문턱을 상당 부분 허물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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