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헛돈다]⑨ 빚내서 집 사라 부추긴 정부, 3년 만에 실패 자인

세종=이현승 기자 2016. 11. 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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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일 정부가 발표한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방안'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유지해온 부동산 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시사했다.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LTV·DTI 등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며, 중산층의 소득 증대와 향후 경제여건의 불확실성 해소 등이 더 중요한 과제"라면서 "30대 차주들은 오히려 주택가격 상승 때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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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과 일관성의 결여다. 애당초 이런 결과가 빚어질 것이 뻔히 예상됐는데도 왜 부동산 투기억제책을 줄줄이 푸는 만용을 부렸나."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11·3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 11월 3일 정부가 발표한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방안'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유지해온 부동산 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시사했다. 정부는 투기과열이 우려되는 강남3구, 과천 등 일부 지역에 대해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늘리고 청약 1순위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4·1 대책을 시작으로 후속조치를 포함해 13번의 주택 정책을 내놨다. 상당수가 부동산 규제를 풀고 금융·세제 지원을 더하는 내용이다.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소비가 늘고 경제 활력이 살아난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런 정책 기조는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자하도록 부추겼고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부동산 거래는 늘었지만 가계부채 급증→가계 가처분소득 감소→소비 절벽을 초래했다. 정부가 목표했던 정책 방향과 반대로 간 것이다.

애초에 부동산은 띄우고 가계부채는 줄이겠다는 정책 목표 자체가 허황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시장에 정확한 시그널을 주지 못하면서 일부 지역에 투기 수요가 몰리는 등 오히려 혼란을 키우는 결과를 자초했다.

◆ ‘부동산 경기 부양→소비 증가’ 원했지만 현실은 반대

박근혜 정부는 출범 첫 해인 2013년 4월 1일 공공주택분양 공급 축소, 취득세·양도세 감면을 골자로 한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2014년 8월 부동산 규제의 최후 보루라고 여겨지는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완화했다. 이어 부동산 3법(분양가 상한제 탄력적용,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유예, 재건축 조합원 주택분양 완화) 등의 후속조치를 잇따라 발표했다.

2014년 이후 정부가 발표한 주택 정책 /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1.25%로 낮추며 정부 방침에 발을 맞췄다. 현 정부 들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총 6번 인하했다. 2013년에 1번,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2번, 올해 6월에 1번 내리면서 금리는 2.5%에서 1.25%로 뚝 떨어졌다.

저금리에 갈 곳 없어진 투자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정부는 당초 목적대로 정책 효과를 일부 거뒀다. 전국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3억을 넘었다. 9월 기준 주택거래량은 2006년 9월 이후 10년 만에 가장 많았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났는데도 과거처럼 소비 증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채 상환 능력이 높지 않은 가구들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지만 소득은 제자리 걸음을 하며 소비를 제약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성장률에도 정부가 기대한 만큼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빚을 갚기 어려운 한계가구가 작년 기준 158만3000가구로 3년 전보다 25만8000가구 늘었다. 한계가구란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가처분소득의 40%를 넘는 가구를 말한다. 이들 중 73%는 원리금 상환에 따른 생계 부담으로 소비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응답했다.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LTV·DTI 등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며, 중산층의 소득 증대와 향후 경제여건의 불확실성 해소 등이 더 중요한 과제"라면서 "30대 차주들은 오히려 주택가격 상승 때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 급증으로 인한 성장 동력 약화는 국내 전문가는 물론 국제신용평가사와 해외투자은행(IB)들도 한국 경제의 취약점으로 수차례 지적했지만, 정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답변해왔다. 정권 초기 성장률 끌어올리기에 집착한 나머지 리스크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앞에 내걸린 대출 안내 현수막 / 사진 = 연합뉴스

◆ 내년까지 가계부채 비율 5%P 낮춘다더니…되려 상승

정부는 지난 2014년 2월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건전성 관리 핵심지표로 정하고, 2017년까지 5%포인트 낮춰 160% 수준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가처분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이내에서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같은 해 7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과 동시에 'LTV·DTI 완화'를 공언하면서 공염불이 됐다.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6월 말 기준 173.6%로 치솟아 현 정부 임기 내 160%대로 낮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은행 대출 문턱이 낮아진 이후 부채의 질은 악화됐다. 임상빈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연구소 연구원이 지난 2013년 9월~2014년 10월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188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DTI·LTV 규제 완화 이후 기존에 신용도가 낮아 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2금융권 고객이 1금융권으로 대거 유입됐다. 2금융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우량한 차주가 이탈해 주택담보대출이 위축되자 부실위험이 높은 신용대출을 늘렸다.

이처럼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지난 2월 뒤늦게 대출 문턱을 높이는 내용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시행했지만 저금리, 부동산 시장 활성화 기대감으로 인한 대출 증가세를 잡기는 역부족이었다. 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향하면서 비은행권의 대출이 증가하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11·3 대책도 가계부채 급증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국지적인 부동산 과열을 진정시킬 수는 있겠지만 강남4구를 제외한 서울 지역은 여전히 일정기간이 지나면 분양권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을 하면 여전히 과열을 전면적으로 잠재우긴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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