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부동산]③ 분양권 불법 천국.."야(夜)시장에서 떴다방이 시세 정해"

이진혁 기자 2016. 10. 2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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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수도권에서 청약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 가운데 하나였던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신도시에는 업자들이 모여 분양권을 사고파는 ‘야(夜)시장’이 여러 차례 열렸다. 보통 분양권 야시장은 청약당첨자가 발표된 날 자정녘에 열리는데, 야시장이 열렸는지와 여기서 결정된 ‘초피(계약금을 내기 전 분양권에 붙는 웃돈)’가 얼마인지에 따라 향후 분양권 프리미엄(웃돈)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견본주택 앞에는 이동식 부동산중개업소인 ‘떴다방’이 들어섰고 초피가 얼마인지 묻거나 분양권 매매를 문의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야심한 시각에 시작된 이런 풍경은 새벽녘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일대 중개업소와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초피가 얼마였다더라”와 같은 글이 언급됐고, 실제 이 가격에 분양권을 팔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 ‘야시장’까지 등장한 분양권시장…실수요자만 피해

올해 분양권 시장은 거대한 투기판을 넘어 말 그대로 ‘불법 거래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투기꾼들은 대놓고 전매제한 기간을 무시하며 분양권을 매매했고, 이 과정에서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다운계약서까지 써가며 정부를 농락했다. 시장이 격하게 요동치자 애꿎은 실수요자만 피해를 봤고, 결국 정부가 칼을 뽑기에 이르렀다.

올해 분양권 시장이 얼마나 혼탁했는지는 경기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신규 택지지구에 아파트 공급이 잇따르면서 투자 수요가 대거 몰리며 전매가 가장 활발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관석 의원이 경기도와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분양권 전매 거래 자료를 살펴보면, 2010년에서 2012년까지 3년 동안 분양권 전매 거래량은 1만7000건, 금액은 7조5000억원가량이었지만, 2013년에서 2015년 3년 동안의 거래량은 3만5000건, 거래금액은 13조원으로 각각 2배가량 증가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경기도 분양권 거래량도 4만7743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7배 증가했다.

경기도에서 올해 분양한 일부 단지에는 분양권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별도의 야시장까지 생겼다. 청약 당첨자 발표를 앞두고 떴다방 업자들이 견본주택 앞에 모여 분양권을 은밀히 거래하며 시세를 띄우는 일이 빈번했다. 결국 신규 단지에 ‘거품’이 잔뜩 끼면서 전매제한 기간이 끝나고 분양권을 매매하려는 실수요자만 골탕을 먹을 가능성이 커졌다.

◆ 토지시장도 투기판…청약만 하면 수백대 1

토지 시장도 투기판으로 들끓고 있다. 특히 1층 상가를 임대하고, 2~4층에 집을 꾸릴 수 있는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는 투기꾼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물건이다. 부산 명지와 인천 영종, 광주 효천, 파주 운정, 부천 옥길 등에서 공급된 점포 겸용 단독주택용지의 경우 평균 청약 경쟁률은 수백대 1, 최고경쟁률은 수천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여기에도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가수요가 많았다. 국회 국토위 소속 최인호 의원실이 계약일로부터 6개월 안에 전매하는 공공택지를 살펴본 결과 2013년은 전체의 51% 수준이었으나, 2016년에는 99%로 급증했다. 최 의원은 “공공택지는 택지개발촉진법에 따라 전매 때 최초 공급가격 이하로 전매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면 계약을 통해 웃돈이 붙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계약 후 6개월 안에 이뤄진 전매 거래의 경우 불법 토지거래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 칼 빼 든 정부…비웃는 투기수요

보다 못한 정부도 칼을 뽑아 들었다. 5월 세종시를 시작으로 수도권 신도시, 서울 일부 지역 등에서 일어나는 분양권 불법 전매와 다운계약서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효과도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불법전매 단속 후 거래량이 이전과 비교해 반 토막 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 대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매수자가 매도자의 양도세를 대신 내주는 형태로 불법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

계약 후 1년 미만의 분양권을 거래하면 매도자가 양도차익의 55%를, 1년 이상~2년 미만인 경우 44%를 양도세로 내야 하는데 이를 프리미엄(웃돈)에 얹어 매수자가 부담하는 것이다. 실제로 개포동 한 재건축 단지의 경우 웃돈이 1억원 이상 붙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매도자의 양도세까지 포함된 금액이다.

◆ “정부 의지 갖고 시장 점검…처벌 강화해야”

불법전매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시장을 점검하지 않으면 뿌리를 뽑기 어렵다. 당사자끼리 거래가 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내용 하나하나 지자체가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불법전매는 다운계약서 작성을 통해 이뤄진다. 실거래가 자료를 주변 시세와 비교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거래됐을 경우 이런 불법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양도세를 매수자에게 전가하는 방식 등을 통해 서류상으로 얼마든지 문제가 없게 만들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불법전매를 상시 관리·감독하고, 처벌도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불법전매를 하면 매수자와 매도자, 공인중개업자 모두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불법전매 적발 때 향후 주택청약 권리를 없애는 등의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양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불법전매 단속을 강화한다고 밝힌 뒤로 확실히 시장 분위기가 식은 건 사실”이라며 “이런 식이라도 시장에 투기 억제 신호를 주고 단속을 꾸준히 하다 보면 불법 행위가 그나마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원론적으로 불법전매를 줄이려면 분양권 전매 제한 제도를 강화해 입주 때까지 분양권을 사고팔지 못하게 하거나, 호가를 올리는 행위 등을 차단하면 된다”며 “다만 전체 부동산 매매에서 분양권 매매가 1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정책적으로 이 카드를 사용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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