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三多島(중국인·돈·자동차) 제주의 명암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 사람도 제주도로 보내야 할 듯싶다. 제주 유입 인구가 급증하면서 부동산 투자 열기가 전국 어느 지역보다 뜨겁기 때문이다. 한 해 동안 제주 땅값이 전국 평균의 5배 이상 오르는가 하면 제주시 도심 아파트값은 서울 마포구 집값과 맞먹을 정도다. 중국 자본이 참여한 개발 프로젝트가 넘쳐나고, 제주 아파트·토지에 ‘묻지마 투자’하는 이들도 수두룩하다. ‘돌, 바람, 여자’가 아닌 ‘중국인, 자동차, 돈’이 많다는 의미에서 ‘신삼다도(新三多島)’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제주 부동산 투자가 과열되면서 부작용도 만만찮다. ‘차이나머니’가 몰려들자 집값, 땅값 거품 논란이 불거졌고 중국 자본의 먹튀, 난개발 우려도 첨예한 이슈로 부상했다. 제주 현지 취재를 통해 제주의 미래 모습과 과제를 진단해본다.
제주도 아파트 가격, 서울 강북 넘본다
땅값도 몇 배씩 폭등…난개발 우려 커져
# “2년 전 3.3㎡당 10만원에 샀던 밭을 지난해 25만원씩 받고 팔았어요. 그때도 값을 두둑이 받았다 생각했는데, 제가 판 그 땅을 얼마 전 3.3㎡당 50만원에 구입한 사람이 나타났다는군요. 앞으로 땅값이 더 오르면 올랐지 내릴 거란 생각은 들지 않네요.” (제주시 연동 주민 A씨)
# “지난해 월정리해변 일대 땅이 3.3㎡당 700만~800만원에 거래됐단 소릴 듣고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어요. 그러던 곳이 지금은 3.3㎡당 1000만원으로 올랐답니다. 정말 땅값이 미쳤어요.” (제주 구좌읍 월정리 주민 B씨)
요즘 전국 부동산 중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제주도다. 서울 강북 아파트값 못지않게 주택 가격이 급증한 데다 상가, 토지 가격도 고공행진하는 중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의 양도소득세는 2776억원으로 2012년보다 무려 375% 늘었다. 양도소득세 증가율로 보면 단연 전국 1위다. 양도소득세가 많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시세차익이 급증했다는 의미다. 인구가 60만명인 제주도 양도소득세는 150만명 넘는 인구를 보유한 광주광역시(2214억원), 대전광역시(2129억원)보다 많다.
실제 제주도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지난 2012년 제주시 노형동에 공급한 ‘노형2차아이파크’ 전용 84㎡ 분양가는 3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가격이 급등하면서 8억5000만원 선에 거래된다. 분양가 대비 3배 이상 매매가가 오른 셈이다.
노형2차아이파크, e편한세상 등 제주시 랜드마크 단지들은 3.3㎡당 매매가가 2000만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3.3㎡당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853만원(9월 기준, 부동산114 자료)인 점을 감안하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노형동 집값이 웬만한 서울 마포 아파트 가격보다 높다”는 것이 제주 현지 공인중개업소에서 전하는 얘기다.
▶제주 월정리 토지가 3.3㎡당 1000만원
중국인 多 연동 바오젠거리 ‘부르는 게 값’
기존 단지 가격이 뛰다 보니 신규 아파트 분양가도 상승세다. 제주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2013년 3.3㎡당 745만원이었지만 지난해 845만원으로 급등했다. 올 들어서는 8월까지 921만원으로 뛰었다. 한화건설이 지난 5월 제주시 월평동에 분양한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꿈에그린’(759가구)은 평균 218 대 1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완판’됐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이번 단지는 서울, 수도권 분양 단지와 달리 현지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소위 대박이 났다. 제주 부동산 투자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여세를 몰아 한진중공업은 11월쯤 제주시 도남동에서 ‘제주해모로리치힐’ 아파트 426가구를 3.3㎡당 1400만원 안팎에 분양할 예정이다.
앞서 5월 분양한 한화 꿈에그린 분양가가 3.3㎡당 869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몇 달 새 평당 분양가가 수백만원 뛴 셈이다.
땅값도 거침없이 오르는 중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제주도 개별공시지가 상승률은 27.77%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상승률(5.08%)의 5배에 달하는 데다 지난해(12.46%)와 비교해도 2배 이상 올랐다. 일례로 한때 한적했던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해변은 4~5년 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명 맛집이나 커피숍, 게스트하우스를 따라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늘면서 당시 3.3㎡당 30만~40만원에 불과했던 이 일대 땅은 500만원 안팎으로 훌쩍 뛰었다. 최근에는 3.3㎡당 기본 1000만원을 부르는 동네가 됐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 따르면 제주도 순유입 인구는 2011년 2343명에서 지난해 1만4257명으로 엄청나게 늘어났다. 제2공항, 혁신도시 등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데다 ‘차이나머니’ 등 해외 자본 투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된 덕분이다. 해마다 인구는 불어나지만 이들 수요를 뒷받침할 만한 주택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인 게 제주도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주된 요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제주 아파트 입주 물량은 연간 2000가구 안팎에 불과하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다 보니 ‘제주의 강남’으로 불리는 노형동 상가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에 따르면 노형동 일반 상업지구 땅값은 3.3㎡당 평균 2718만원에 달했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연동 바오젠거리 땅은 3.3㎡당 1억원 넘게 거래될 정도다.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이다.
하지만 제주도 부동산 열풍 이면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다. 주택, 교통, 환경이 어지러운 이른바 ‘삼난’의 섬이라 불릴 정도다.
2010년 제주도에 첫 도입한 부동산투자이민제도 덕분에 중국 자본 유치에는 성공했지만 한라산 중산간 등 일부 지역에선 난개발, 환경 파괴 논란도 나타났다. 제주도는 부랴부랴 해안변 그린벨트 조성, 계획허가제 도입을 통해 난개발 방지에 나섰다. 해안변에 그린벨트를 설정하는 한편 도시개발 방식을 계획허가제로 전환해 난개발을 차단하기로 한 것.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제주도 청정자연을 위협하는 난개발에 제동을 걸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밝혔지만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도심 계획을 정비해 새로운 주택단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신화역사공원 등 향후 발전 가능성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원주민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거점도시 개발이 필요하다. 주택단지 조성과 더불어 기업 유치 등 일자리 창출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장성수 제주대 관광개발학과 교수 주장은 눈길을 끈다.
주식보다 부동산 “거품 논란 있지만 우상향할 것”
제주 현지 자산가들은 제주 부동산 투자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주요 증권사 제주지점 PB 4명과 인터뷰한 결과 PB들은 “제주 자산가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주식에 대한 관심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부동산만 한 재테크 수단이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금동섭 유안타증권 금융센터제주본부점 PB는 “제주도 부동산 시세가 급등하는 1차 과열 시기는 지났다. 제주 자산가들은 장기적으로 제주도 가치가 꾸준히 상승해 2차, 3차 과열도 올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부상훈 NH투자증권 제주지점 PB도 “대규모 개발 공사가 마무리되는 2020년까지는 부동산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제주에서 땅이든, 아파트든 일단 사두면 언젠가는 오른다’는 게 제주 자산가들의 기본 생각이란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어떤 상품에 투자하고 있을까.
예전엔 토지에 관심이 많았다면 지금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자산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제주시 노형동 신규 아파트 3.3㎡당 가격이 1500만원을 넘어서면서 거품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잠시 조정기를 거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으로 내다보는 자산가가 많다고 PB들은 입을 모은다.
일반 아파트보다는 대규모 단지를 주목하라는 의견도 눈길을 끈다. 제주도는 인구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주택 공급은 타 지역 대비 많이 부족하다. 오승주 한국투자증권 제주지점 PB는 “연동이나 노형동 대단지 아파트는 제주 자산가들이 언제나 관심을 두는 상품이다. 제주도는 다른 지역 대비 대단지 아파트가 많지 않다. 특히 재건축조합 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이도주공 2·3단지를 눈여겨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멀리 보고 여전히 토지를 선호하는 투자자도 일부 있긴 하다. 김용성 대신증권 PB는 “아파트값은 너무 올랐다고 보고 리스크를 대비해 ‘블루칩’에 투자하는 사람이 많다. 애월, 표선면 토지 투자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강승태·정다운·나건웅 기자 / 사진 : 최영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78호 (2016.10.12~10.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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