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빚내서 산 집에서 빚내서 사는 세입자
[머니투데이 송학주 기자] [['빚 내서 집사라' 등 떠민 부동산대책] <3> 전세자금대출 45조원 시대]
가계부채 주범으로 찍힌 주택담보대출과 집단대출 못지않게 전세자금 대출규모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정부가 치솟는 전셋값에 대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한도를 늘려주고 이자율을 낮춘 결과다.
박근혜정부 들어 13번의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전·월세 상황은 악화 일로다. 알맹이 없는 대책으로 생색만 내고 전월세난에 대한 책임은 오히려 시장에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일 금융위원회와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45조2000억원에 이른다. 5월말 44조1000억원에 비해 한달 새 1조1000억원이 늘었다.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말 28조원 수준이었으니 3년새 17조원 가량 증가한 것이다.
전세자금대출 상승폭은 지난해 말(41조원)과 비교하면 10.2%나 올라 같은 기간 집단대출 증가폭(10.5%)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집단대출 못지않게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서민부담을 낮춰주겠다며 내놓은 전세 안정화 대책이 '대출 한도는 높이고 금리는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세입자들의 대출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세시장이 안정화되기는 커녕 오히려 가격이 더 오르며 서민 부담만 키우는 상황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2013년의 '12·3 후속조치'다. 당시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목돈 안드는 전세' 제도가 실적이 없자 '전세금 안심대출'이란 상품을 꺼내 들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금반환보증 상품과 연계해 전세금반환채권을 은행에 위탁판매하고 은행은 저리로 전세자금을 빌려주는 구조다. 세입자도 전세금을 보장받을 수 있다보니 인기를 끌어 전세대출 증가에 한몫했다.
이처럼 정부의 전세가격 안정화 정책이 실패하면서 대출규모가 증가했고 가계부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8·25 가계부채대책'에서도 공급조절과 보증심사강화, 집단대출 규제 등을 제시했지만 전세대출 규제는 찾아볼 수 없다.
정재호 목원대 금융보험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전세대책은 대출한도 증가와 저금리에 따른 대출금리 인하에 치중하며 '급한 불 끄기'에 급급했다"며 "대출 한도가 올라가면서 임대가격 상승으로 이어졌고 부담을 느낀 전세수요의 탈서울을 부추겼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서민경제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주거안정 강화와 관련된 정책 입안이 중요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가 되면서 야당이 주장해온 전월세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에 대한 논의가 다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들 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더라도 실제 관련법 개정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집주인이 계약시점에 미리 가격을 올려 받아 단기간에 임대료가 폭등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계약갱신청구권 역시 추가 재계약을 염두에 둔 집주인이 미리 임대료를 올리면 전셋값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이에 대한 보완방안이 마련된 이후에나 제도 도입 논의가 다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어려워진 살림살이에 시름하고 있는 서민들 표심이 지난 4월 총선에 반영됐다"며 "서민과 중산층 등 타깃을 세분화하고 이들이 체감할 수 있는 주거안정 정책을 내놓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학주 기자 hakju@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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