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시장 외면에 백기 든 '박근혜 부동산 정책'

박병률 기자 2013. 12. 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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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집주인'도 '행복한 보금자리'도 없었다
대선 공약 이유 무리한 추진.. 원형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정부가 3일 발표한 '4·1, 8·28 부동산 대책 후속조치'는 박근혜 정부의 주택·부동산 정책 출구전략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9월 기자회견에서 '행복주택'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 '지분매각제도'를 대표 주택·부동산 공약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발표 때부터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대선공약'이라며 밀어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은 했지만 시장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고, 결국 폐기 혹은 대폭 수정에 이르렀다.

표정 굳은 국토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정지윤 기자

정부 발표를 보면 행복주택은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됐다. 2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던 행복주택은 애초에 '철도 유휴부지 등 국공유지에 짓는 임대주택'으로 규정됐다. 국공유지는 땅값이 싼 만큼 임대주택 공급 가격이 싸진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부지가 없었다. 철도 유휴부지, 역 근처 공영주차장 및 유수지 등을 모두 긁어모아도 3만8000가구 공급에 그쳤다.

그러자 정부는 행복주택 개념을 아예 바꿔버렸다. 행복주택이란 '직장과 주거지역이 가까운 곳에 젊은층이 사는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재규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일반 사유지를 임대해 재건축한 뒤 젊은층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면 모두 행복주택으로 인정된다. 주거환경 개선 지역, 뉴타운 해제 지역, 산업단지 등이 포함됐다. 그렇게 재수정한 공급 목표가 16만가구다. 그래도 당초 목표보다 4만가구가 줄었다.

행복주택 개념을 대폭 확장하면서 공기업 부채도 늘게 생겼다. 토지주택공사와 철도공사가 보유한 부지를 적극 활용하되 최소 토지사용료를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출시 이후 단 2건만 판매된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I'도 사실상 폐지된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취급하는 틈새상품으로만 명맥을 유지하기로 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1998년 교수 시절 논문으로 제시했던 이 상품은 출시부터 '그렇게 착한 집주인이 있냐'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분매각제도도 조만간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관리공사(캠코)가 담당하는 지분매각제도는 지금까지는 한 건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선순위 채권을 보유한 은행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데다 지분매각보다는 채무조정이 손쉬워 채무자의 호응도 높지 않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연말까지 지켜본 뒤 (폐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하우스푸어의 집을 매입하고 전세로 살게 해주는 희망임대 리츠 사업과 관련, 전용면적 85㎡ 이상 아파트도 9억원 이하면 사주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중대형 아파트까지 구제해주겠다고 나서는 데 대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목돈 안 드는 전세 등은 비현실적인 공약이었던 만큼 지금이라도 포기하는 것은 다행"이라며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거복지 차원에서 전체적인 밑그림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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