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2천만원 인상 집주인님, 고맙습니다?
[오마이뉴스 안호덕 기자]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 편집자말 >
▲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
ⓒ 선대식 |
"2000만 원이라도 올려 주고 살아야지 어떡하겠어. 몇 군데 돌아 다녀봤지만, 전세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어. 그렇다고 매달 몇십 만 원 내는 월세로 갈수도 없고... 애들 전학시키고, 이사 비용 생각하면 지금 같은 전세난에 2000만 원만 올리는 게 고맙지."
오랜만에 만난 동네 형님은 다시 전세 계약을 연장하기로 했단다. 벌써 6년을 같은 집에서 전세로 살아왔는데, 집주인이 전세금 3000만 원 인상을 통보했다. 이사 할 요량으로 휴가 내내 서울 곳곳을 돌았지만 전셋집 찾기가 힘들었다. 오래 산 안면으로 집주인에게 사정해서 2000만 원 인상으로 합의해 그냥 눌러 앉기로 했단다.
관련기사 : 목돈 안드는 전세? 까딱하면 전세금 날린다
해마다 반복되는 전세대란, 답은 없을까?
또다시 찾아온 전세대란. 서민들은 우울하다. 삼복 더위에 전셋집을 찾아다니는 '전세난민'의 사연은 연일 온라인 지면을 달구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의 부동산중개소에도 주말이면 전셋집 구하는 사람들 발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구하는 사람만 많을 뿐 물량이 없어 거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평소 알고 지내는 중개인의 하소연이다.
전세대란은 해마다 반복돼 서민의 삶을 어렵게 하지만, 제대로 된 처방은 찾을 수 없다. '주택 거래 활성화'가 답이라는 보수 진영과 많은 경제신문은 집값 띄우기에만 열심이다. 서민을 위한 해법은 없고 투기족과 건설 자본을 위한 마케팅만 있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마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심각한 건 대출 알선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이다. 대출을 용이하게 해 싼 이자로 서민에게 은행 문턱을 낮추는 것도 중앙은행과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대출 제도의 확대만을 해결책으로 삼는 정책은 숱한 부작용을 낳는다. 이명박 정권이 내놓은 학자금 대출 제도는 청년들을 신용불량자로 내몰았다. 대출 받아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은 '하우스 푸어'를 양산했다. 임금인상과 물가안정 요구를 무마하기 위한 각종 대출 제도의 남발은 서민들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가 이달 23일부터 시행된다. 집주인이 금융기관에서 전세보증금을 대출받고 세입자가 대출 이자를 갚는 방식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 전부터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금처럼 세입자가 줄 서 있는 상황에서 어떤 집주인이 세입자를 대신해 대출을 받겠느냐는 것이다. 또 오히려 전세보증금만 더 올릴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보증금 1억2000만 원 전세의 경우 월 40만 원(4% 이자로 계산) 이자를 세입자가 은행에 매달 납부해야 한다. 세입자는 월 40만 원 월세에 사는 것과 같다.
"전·월세 가격을 제한하면 임차인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시장 반응을 살펴보면 공급이 줄어 오히려 임차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지난 7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한 발언이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요구해 온 전·월세 상한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전·월세 가격 제한이 공급을 줄이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예단은 별 근거가 없다. 월세의 인상률 상한제나 계약의 자동 갱신권은 많은 나라에서 이미 시행하는 제도다. 전·월세 가격에 어떤 통제도 없이 대출 제도를 넓혀 주택시장을 활성화해 전세난을 해결하겠다는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주장은 궤변에 가깝다.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가 답이라니
4.1 부동산 대책 이후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신규 보금자리지구지정 중단. 공공분양 인허가 물량 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후속 대책을 내놨다. 떨어지는 집값을 공급을 줄여 막겠다는 것이다. 집값 하락을 막기 위해 서민들이 구매하거나 임대하는 주택의 공급 물량을 줄이겠다는 국토교통부의 발상. 참 놀랍다.
뉴타운 같은 투기성 개발을 부채질하던 이명박 정부. 집값 안정을 위해 서민 주택의 공급을 줄이겠다는 현직 장관과 전·월세 상한제는 임차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부총리. 집 없는 서민들을 집값 떠받치 지렛대로 삼고자 하는 의도는 모두 똑같다.
'2018년까지 임대주택 120만 호 건설.' 2012년 3월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내걸었던 공약이다. '행복주택 20만호 건설.' 19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선 후보가 5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집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며 내놓은 공약이다. 총선과 대선 공약대로라면 140만 호 임대주택이 박근혜 정부의 임기 내에 건설돼야 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 마련이 아니라, 지난 총·대선에서 공약한 임대주택 건설의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이행에 박차를 가하는 일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급박한 전세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
"이번 정기 국회에서 인상률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는 법 제정을 촉구할 것입니다. 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고 2회 걸쳐 갱신청구권을 부여하며, 기존 계약은 물론 신규 계약도 인상률 상한제를 적용해 3년 동안 10% 내에서만 인상할 수 있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합니다. 또, 전세보증금을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전국세입자협회를 준비하고 있는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의 주장이다. 현행법에서 집주인과 세입자의 권리는 갑을 관계의 전형이다. 현재의 전세 제도 아래에서 세입자는 2년에 한 번 이삿짐을 꾸려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또 집주인의 파산은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성을 제거하고, 세입자가 한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다.
정부와 여당은 총선, 대선 공약 이행해야
최근의 전세난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이자 수입을 얻기 힘든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경향도 뚜렷하다. 또 뉴타운 등 이명박 정권의 개발 투기에 파괴된 서민들 보금자리가 폐허처럼 방치된 곳도 많다.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구매 여력에 있는 사람들이 집 사기를 꺼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책임은 집값이 오르면 경제가 살아난다고 강변하며 부동산 버블을 키운 정권들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동산 버블 정책을 수정하고 집값을 연착륙시켜야 한다. 집 없는 서민들에게 돈 빌려줄 테니 집사라는 정책을 접어야 한다.
10여 년을 전세로 떠돌던 후배 부부가 작년에 장기전세 주택에 입주했다. 로또를 맞은 것 같다고 자랑하던 후배, 2년마다 재계약하고 이삿짐 꾸리는 고통에서 해방되어 20년 동안 내 집처럼 살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했다.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동시에 집 없는 서민이, 내 집처럼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전·월세 상한제와 총·대선 공약이었던 임대주택 140만호 건설. 전세대란 반복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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