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가계빚 180조 .. 금리 갈아타기로 해법 찾는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방향을 틀었다. 지금까지 전체 액수 줄이기에 더 힘썼다면 앞으론 갚을 능력이 떨어지는 악성 부채 줄이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뇌관을 먼저 제거해 폭발 위험을 줄이자는 취지다. 은행권과 비은행권의 과도한 대출금리 차이(금리단층)를 좁혀 가계의 상환부담을 덜어주는 데에도 힘을 모을 방침이다.
배경은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다. 최근 연체율이 치솟으며 '부채폭탄'이 곧 터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상경대학장은 "한국경제 최대의 위험요인이 가계부채라는 데 국내외 시각이 일치한다"며 "증가속도 못지않게 구조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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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금융 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0.85%로 치솟았다. 이는 2006년 10월(0.94%) 이후 5년7개월 만에 최고치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도 0.97%를 기록, 지난해 12월 이후 5개월 연속 상승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가계대출 연체율 상승은 부동산값 하락과 경기침체로 집단대출과 신용대출 모두 연체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부업 연체율도 급등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8% 수준이던 연체율은 지난달 말 14%대로 크게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저신용자 대출비중과 연체율이 함께 높아져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주택대출을 갚아야 하는 '하우스푸어'부터 당장 생활자금이 급한 서민에 이르기까지 빚 갚기에 허덕인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가계가 빚을 갚을 여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KB금융연구소는 최근 '가계부채 분석 보고서'에서 "국내 가계가 보유한 빚의 30% 정도인 180조원이 이미 상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거나 앞으로 원금 상환이 시작되면 부실해질 수 있는 '위험부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는 통계청 가계금융조사 원본 데이터를 기초로 가구당 소득과 자산·부채 규모 등을 분석해 이같이 추산했다.
분석결과 전체 대출의 70%가량은 원리금 상환에 전혀 문제가 없는 저위험군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30%가량은 소득과 자산이 빚보다 적거나 부동산값이 떨어지면 빚을 갚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 관계자는 "가계의 실질 소득이 정체돼 중산층과 서민이 빚을 갚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정능력이 부족한 연못에 물이 흘러들지 않으면 수질이 나빠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정책의 초점을 옮긴 것도 그래서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종합대책 등에 힘입어 가계부채의 총량은 크게 늘지 않고 있지만 연체율과 다중채무가 함께 늘어나는 등 질이 나빠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밝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최근 "증가속도가 일단 주춤해진 만큼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의 부채구조 개선은 두 갈래로 추진된다. 다중채무자 등 한계에 몰린 사람을 최대한 구제하고, 고금리 대출을 줄여 가계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다. 권 원장은 최근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부실 가능성이 높은 다중채무를 은행권이 공동으로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은 또 부실 위험이 큰 저신용 대출자들에게 은행들이 함께 원금 분납과 이자 감면을 해주는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을 확대하기로 했다.
저신용자를 위한 10%대 대출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은행에서 외면받은 고객들이 20% 이상의 2금융권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상황을 최대한 줄이자는 얘기다. 권 원장은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들이 많이 하고 있는 100만~200만원 단위의 소액신용대출을 은행이 직접 하도록 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현철.김혜미 기자 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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