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 경매시장.. 3593억원 못 건져
[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올 한해 부동산 경매시장의 키워드는 '인과응보'다. 무리한 투자는 화를 부른다. 실수요자는 꾸준히 존재하나, 돈 줄을 묶으면 투자가 힘들다.
특히 올 한해 경매시장은 우리나라 경기 침체 여파로 각종 사건사고들의 전시장으로 등극했다. 대외적으로는 저축은행 부실대출 사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수도권 집값 추락, 레저시설의 몰락 등과 엮여 갖가지 물건들이 경매시장으로 나왔다. 부동산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과 올 한 해 경매시장을 키워드로 알아봤다.
◇경저부고(京低釜高)=
부산이 시작이었다. 올 한해 지방 아파트 분양·매매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경매시장도 서울과 부산의 온도차가 극명했다. 2009년 이후 서울과 부산의 낙찰가율은 완전히 뒤집혔다. 낙찰가율은 감정가격 대비 낙찰가 비율을 말한다.
서울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의 금융규제 적용을 받는 동안 부산의 아파트 낙찰가는 계속 치솟았다. 올해 부산 부곡동 푸르지오 아파트 경매에 82명이 몰리는 기현상을 나타내면서 시작됐다. 6월에 접어들면서 114.2%의 낙찰가율을 보이는 물건이 나왔다. 투자 열기는 정부가 가계 대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식어가는 추세다.
◇작은 아파트 대세=
부동산 경기 침체기 중소형 아파트는 대세로 자리잡는다. 대형 평형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줄고 실제적으로 살 집을 구하려는 수요만이 남기 때문이다.
경매시장도 마찬가지다. 올해 1월부터 12월(20일까지)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 낙찰률은 42.8%로 85㎡ 초과는 28.3%로 나타났다. 낙찰가율은 중소형 아파트(86.%)가 10%p 더 높았다. 경쟁률(평균응찰자수)도 더 높았다.
◇'암초' DTI의 부활과 8부능선 붕괴=
지난해 9월 DTI규제 한시적 완화로 수도권 아파트 경기가 살아났다. 이후 올해 3.22 대책을 통해 DTI가 아예 폐지될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자들도 나왔다. 하지만 규제는 부활했고 가격은 추락했다.
DTI의 부활을 기점으로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확실한 침체기에 돌입했다.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낙찰가율 80%가 무너졌다. 면적별로는 중대형 아파트가, 지역별로는 인천이 큰 타격을 입었다. 강남3구나 버블세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도권 신도시의 몰락과 뜨는 '평창'=
특히 몰락한 하우스푸어들이 가장 많았던 곳은 수도권 신도시였다. 인천경제자유구역, 경기도 고양, 파주, 용인 등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들이 대거 경매시장에 나왔다. 이들 지역은 분양가상한제에 직면한 건설사들이 밀어내기 분양을 했던 곳들이다.
투자자들은 '돈이 될 것'이라고 투자했지만 경매시장에 나오는 감정가격이 분양가보다 낮다. 심지어 2~3회 유찰된 가격에나 낙찰되고 있다. 아직 기반시설이 부족한 인천경제자유구역 지역인 청라, 영종, 송도 지역의 물건들은 감정가의 반값에도 낙찰됐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파트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이자 감당도 못해 경매에 붙였는데 이마저도 반값에 낙찰돼 구제 길이 막막해졌다는 뜻이다.
반면 평창은 올림픽 호재로 인기를 구가 중이다. 지난 7월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발표하는 순간 강원도의 지가는 뛰어 올랐다. 경매시장에서도 평창군의 경매물건 낙찰률은 전달의 두 배인 54.3%까지 올라갔다. 특히 토지는 낙찰률 55%, 낙찰가율 99%를 기록했다.
◇떼인 돈 3593억원=
이처럼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경매 물건이 낙찰되면서 금융권 등 부동산 투자자들이 돈을 빌려주고 못받은 돈도 커졌다.
올해 금융권에서 수도권 아파트를 담보로 빌려준 돈 가운데 경매를 통해 회수되지 못한 금액은 3593억원으로 집계된다. 2009년 이후 매년 3000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경매청구금액과 낙찰금액을 단순 비교한 수치로 보통 경매에 나오는 물건들이 다중채무를 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실제로 투자자들이 떼인 돈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각사와 부실 대출=
이처럼 자금 회수의 마지노선으로 경매를 택한 금융권이지만 동정심을 얻긴 힘든 상황이다. 올 한해 금융권의 부실 대출 규모가 경매시장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기도 시흥시 군자동에 자리잡은 토지면적 48,459㎡의 종교시설을 겸한 영각사는 부산저축은행과 엮이면서 저축은행 부실대출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부산저축은행이 납골당 사업에 대출해 준 금액은 무려 128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올 2월 21일 처음 경매에 나왔던 이 부동산의 감정가격은 124억6900만원에 불과했다.
이 물건은 등기부 채권 총액이 211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감정가의 64%인 79억8000만원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내년 1월 19일 다시 한 번 주인을 찾는다. 하지만 부산저축은행은 이 부동산에 대한 저당권이나 기타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설정을 해 두지 않았다. 설령 낙찰된다 하더라도 대출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각종 '랜드' 경매 봇물= 경기침체에 따라 관광 수요가 줄어들면서, 유독 대형레저시설이 올해 경매시장에 쏟아졌다.
▲준공허가를 받고도 2년째 문을 열지 못하던 의정부 장암동 아일랜드캐슬을(감정가 365억원) ▲신한사태의 불씨가 되었던 파주시 월롱면 금강산랜드(감정가 429억원) ▲올해 낙찰된 물건 중 가장 감정가가 높았던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영진골프랜드(감정가 713 억원) 등이 주요 물건이다. 이들은 높은 감정가가 무색하게 유치권, 지상권, 임차관계 등 복잡한 권리관계로 인해 오랫동안 경매가 진행되거나 낮은 가격에 낙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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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기자 rephwang@<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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