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 관련 비즈니스가 뜬다, 명상체험센터·웰빙파크..'돈 냄새 맡다'
◆비움의 미학◆
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 입구로 들어가다 보면 아무런 카피도 없는 흰 바탕의 광고판이 시선을 끈다. 한쪽 구석에 현대카드 이미지와 CI만 조그맣게 보인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선보인 이른바 '백지 광고'다. 이 광고의 콘셉트는 이른바 '비움의 미학'. 민운식 현대카드 팀장은 "보통 광고는 허용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메시지를 채우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보고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편견을 벗고 회사 로고, 카드 전면 등 꼭 필요한 이미지만 보여주면서 오히려 고객 주목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요즘 '비움 비즈니스'에 한창이다. 바쁜 일상에 찌들어 있는 현대인들 마음을 파고들기 위해선 광고, 마케팅에서도 복잡함을 비우고 편한 느낌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비움 관련 제품, 전시회는 물론이고 비움 인테리어 컨설팅, 비움을 체험할 수 있는 명상웰빙타운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현대카드의 '비움 비즈니스'는 사실 카드 전면에 여실히 담겨 있다. 보통 신용카드 전면을 보면 각종 메시지, 꽃무늬, 심지어 사진까지 들어 있는 경우가 있지만 현대카드는 한 가지 색깔에 M, S, V 등 알파벳만 크게 적혀 있다. 또 매달 배달되는 카드 명세서를 봐도 첫 번째 페이지에 '지난달 카드 사용금액' '포인트 적립액' 등 꼭 필요한 내용만 넣고 광고 메시지를 최소화했다. 구체적인 카드 사용내역 등은 모두 뒷페이지로 뺀 게 특징이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해선 카드 명세서 앞부분에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만 담아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라고 민운식 팀장은 전한다.
공간을 중시하는 건설사들도 비움과 비즈니스를 접목시키는 작업에 한창이다. 지난해 세계 3개 디자인어워드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 '레드닷디자인어워드(Red dot design award)' 수상작 중 비움 철학을 담은 제품이 있었다. 바로 서울역 주변에 위치한 동부건설 센트레빌 주택 전시관이다.
기본 설계를 짜는 데만 10개월이 걸린 센트레빌 주택 전시관 외관은 백색의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 벽면에서 나오는 발광다이오드(LED) 불빛은 별을 상징한다. '한없이 비어 있는 넓디넓은 우주 공간'을 형상화한 이 같은 디자인이 레드닷디자인어워드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장준 동부건설 상무는 "미적인 요소와 기능적인 요소를 함께 갖춰야 디자인 철학을 완성할 수 있는데 센트레빌이 강조하는 미적인 부분은 '비움의 철학'이다. 꽉 채운 서양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비울 줄 아는 동양적인 여백의 미를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고 밝혔다.
스마트폰 대표 주자 아이폰도 '여백미' 강조
스마트폰의 대표 주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폰도 '비움의 미학'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폰을 사고 첫 화면을 보면 공백이 대부분이다. 이 빈자리에 소비자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하나 둘씩 다운로드해 채운다. 의도적인 공백을 두면서 성공한 디지털 제품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위터 역시 140자를 올릴 수 있는 단순한 웹사이트지만 팔로어(Follower)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다양한 콘텐츠로 채워져 언제 어디서나 유용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탈바꿈했다.
LG하우시스의 친환경 강화목재 '우젠' 역시 비움의 미학이 담겨 있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나무를 대체하는 상품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대표적인 나무 대용제품으로 친환경 강화목재가 꼽힌다. 자투리목, 간벌목 등에서 만들어진 목분과 친환경 올레핀수지로 구성된 친환경 강화목재 우젠은 일단 속이 텅 비어 있다. 이 때문에 원재료 사용량이 줄면서 무게도 가벼워져 작업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또한 환경에 유해한 중금속 등이 없고 나무 질감을 살리면서 수축 및 뒤틀림, 부식 등이 없어 오랜 기간 사용이 가능하다. 멀리 보면 천연 원목을 무분별하게 벌채하면서 나타나는 나무 고갈 문제를 해소하고 지구온난화를 방지하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산책로, 계단, 교량 등 조경용과 주거용·상업용 건물 등에 주로 사용돼왔던 친환경 강화목재는 흡음성까지 좋아 방음벽, 건축 외장재로까지 사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LG하우시스는 한발 더 나아가 공간 인테리어 컨설팅에도 한창이다. 2007년 '디스퀘어(DSQUARE)'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상담부터 디자인 제안, 애프터서비스(A/S)까지 다양한 인테리어 컨설팅을 선보이고 있다.
인테리어 컨설팅의 핵심은 같은 공간을 보다 넓고 안락하게 보이게 하는 것. 면적, 구조가 똑같은 공간이라도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범승규 LG하우시스 디자이너는 "경기가 나빠지면서 제한된 공간을 얼마나 실용적이고 넓게 꾸미느냐가 중요한 인테리어의 화두다. 개성 있고 고급스러운 공간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지자체들은 비움 미학을 담은 명상타운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경북도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경시 문경읍 고요리 일대에 '명상웰빙타운'을 조성 중이다. 17만여㎡의 부지에 정부 예산 119억원과 민자 555억원 등 674억원을 들일 계획이다.
이곳엔 웰빙과 명상 문화를 연계하기 위해 명상과 수련을 할 수 있는 명상체험센터, 웰빙클리닉, 웰빙파크 등 민간시설을 건립하고 있다. 또 민속공예품 제작실, 국악교실, 다도실, 농장 등을 통해 전통문화를 체험하도록 하는 등 '명상문화의 메카'로 육성할 계획이다.
경북 문경시, 비움 문화 체험하는 명상타운 조성
기업, 지자체들뿐 아니라 각종 미술 전시회에서도 비움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미술가 6명의 종이작업들로 이뤄진 'Work on Paper'전이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리씨갤러리에서 개막됐다. 이 전시회에서는 종이 위에 물감, 연필, 파스텔, 마커 등으로 그린 다양한 드로잉들이 선보였다. 종이 드로잉은 캔버스에 그린 회화보다 즉흥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표현이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오수환, 오원배, 서용선, 윤해남, 에이지 오쿠보, 아키야마 이즈미 등 20~60대 다양한 성향의 작가들이 개성 있는 표현양식을 보여준다.
지난 4월 25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비움'전은 '여백의 미'를 주제로 한 동서양 현대 회화 기획전이다. 이우환의 작품 '대화'를 비롯해 중국 신세대 작가 인치, 프랑스의 베르나르 프리츠, 폴란드 개념주의 작가 로만 오팔카 등 국내외 작가 6명의 작품 20여점이 걸렸다.
미국 뉴욕을 무대로 이국적 느낌의 동양적 감성 표현을 선보이는 황란의 개인전 'Illusion & Reality'도 눈여겨볼 만하다. 학고재갤러리 본관에서 6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황 작가는 새와 부처, 달항아리, 매화 등 매혹적인 이미지에 현대인의 일상성, 비어 있지만 차 있는 '비움'의 상태 등 동양의 정신성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66호(10.07.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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