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백영훈 "세종시엔 '경부고속도로 정신'이 없어요..표 의식한 계산 뿐.."

2010. 7. 4.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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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경부고속도로 40주년 의미는해외서 '문전박대' 당하며 돈 빌려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도로 만들자"

"세종시엔'경부고속도로 정신'이 없어요. 국가와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결연한 의지와 절박함이 없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미래에 사활을 건 국가사업이었어요. 세종시엔 표를 얻겠다는 정치적 계산만 있지 않았습니까. "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원장(80)은 세종시를 경부고속도로와 비교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세종시는 사심(私心)이 가득한 분열적 사업이고 경부고속도로는 공심(公心)에 기반한 통합적 사업이라는 지적이었다. 오는 7일 경부고속도로 건설 40주년을 앞두고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 역할을 하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입안 과정에 처음부터 참여했던 그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눈물을 비쳤고,오늘날을 생각하면서 장탄식을 쏟아냈다. 노(老)학자가 들려주는 경부고속도로 얘기는 세종시와 달리 짜증보다 흥미를 자아냈다.

▼곧 경부고속도로 건설 40주년입니다. 당시 고속도로 건설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아는데 어느 정도였나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 경부고속도로도 이젠 중년이네요. 엊그제 같은데….경부고속도로 얘기하면 참 할 말이 많아요. 자동차가 당시엔 사치품이었으니 도로를 서울부터 부산까지 깐다는 게 쉬웠겠습니까. 먹을 것도 제대로 없는 나라가 말이죠.왜 유람다니는 '부자들을 위한 도로'를 만드느냐고 야당이 일제히 들고 있어났어요.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역사적 소명의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일자리도 만들고 수출길도 열고요. 지금은 경부고속도로가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을 견인했다는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으니 반대가 심했다고 해도 요즘 세종시 수정안 반대만큼 시끄럽지는 않았겠죠.

"포항제철(현재 포스코) 건설사업을 예로 들죠.당시 야당 정치인은 물론,국내외 언론 모두 반대했습니다. 신문도 사설 등을 통해 경쟁하듯이 반대논리를 쏟아냈죠.먹고 살기도 힘든데 엄청난 돈을 들여 당장 써먹을 데도 없는 제철소를 왜 만드느냐는 거죠.제철소를 지어 철판을 만들더라도 자동차 같은 수요처가 없으니 소용없다는 거였어요. 차라리 국민들에게 밥 한끼 더 주자는 호소가 배고픈 국민에게 더 설득력이 있었죠.고속도로도 마찬가지죠.반대는 1970년 개통 초기에도 잦아들지 않았어요. 수백억원을 들여 만든 도로에 차량이 연간 300만대밖에 안 다녔어요. 교통량이 적었었죠. 요즘 같으면 수요예측을 잘못했다고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을 거예요. "

▼당시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추진됐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못 한다고 생각하세요.

"지금 공무원이나 정치인,국민 모두가 '이게 아니면 안된다'는 절박함이나 역사적 소명의식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경부고속도로 40주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강한 의지, 진지함,절박함,이런 것이 없어요. 세종시에는 경부고속도로 정신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요즘 세종시 추진과정을 보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한 고민이 부족합니다. 표에만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나라가 결정한 일에 여당과 종교계,노동계,시민단체가 거리로 나서고,여론이 불리해지면 정부가 놀라고 빼는 모습이 그래요. 경부고속도로 사업은 달랐지요. 눈물을 머금고,해외에서 돈을 빌려가면서 사활을 걸고 추진한 사업입니다. "

▼당시 다른 나라의 원조로 근근이 연명하던 국가가 건설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웠겠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재원이 독일(서독)이 빌려준 상업차관이란 건 아시죠.3년상환 조건으로 3000만달러를 빌려준다는데,돈을 공짜로 빌려줍니까.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2000만달러 정도였죠.지급보증을 세워야 하는데 원조 국가에 누가 보증을 서줍니까. 5 · 16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궁지에 몰렸죠.앞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지만 군사정권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죠.그래서 서독 지급보증 아이디어로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수출'한 겁니다. 이들의 봉급을 담보로 돈을 빌려온 셈이죠."

▼교역이 전혀 없었던 서독이 선뜻 차관을 제공한 또 다른 배경이 있나요.

"배경이라기보다 일화가 있어요. 1964년 12월8일 한국과 서독 정상회담을 마치고 박 전 대통령이 에르하르트 총리와 함께 한국인 광부를 만나러 갔죠.서독에서 일하던 한국인 광부는 땅밑 1000m에서 40도가 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습니다. 터키인 등 외국 광부들은 못 참고 떠난 자리를 가난한 한국의 엘리트들이 채웠죠.대학 출신자들이 학력을 위조해 독일 광부를 지원했죠.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눈만 깜박이는 500명의 광부들은 대통령을 보자 '대한민국 만세'를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연설도 잊은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에르하르트 총리도 감동을 받았나봐요. 저와 500명의 광부 역시 펑펑 울었습니다. 총리가 이런 장면을 보고 도와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무척 빠른 속도로 진행됐는데요.

"당시 육군본부 조달감실 윤병호 대령에게서 나중에 들은 얘깁니다. 1964년 4월 건설계획을 발표한 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날 갑자기 박 전 대통령이 말죽거리로 가보라고 했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다음 날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일주일 내에 서울~수원 간 도로가 건설될 땅 매입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답니다. 땅값이 오르기 전에 매입을 끝내라고 다그쳤다는군요. 군사작전처럼 속전속결로 이뤄져 추가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하나 더 말하면 1968년 1월에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했는데,그 때 박 전 대통령은 '전쟁만 나지 않으면 공사를 계속하라'고 지시했다고 하더군요. "

▼독일에 1호 유학생으로 가셨다면서요.

"6 · 25전쟁 후 이승만 정부가 처음 한 게 '국비장학생' 시험이었어요. 그 때 경쟁률이 21 대 1 정도였죠.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공부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독일(서독)을 택했죠.당시 '라인강의 기적'에 관한 내용이 신문에 크게 소개된 것을 봤죠.'라인강의 기적'을 찾아 국비장학생 1호로 독일로 간 겁니다. 쾰른 대학 교수들이 정부부처에 들어가 있어서 나중에 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도움이 된 거 같아요. 독일과 전 인연이 많습니다. "

▼작년에 출간한 책(대한민국,그 위대한 힘) 마지막장에서 '미래는 오늘에 있다'고 하셨는데,한국은 지금의 갈등을 극복해 더 뻗어나갈 수 있을까요.

"2차대전 후 독립국가로 탄생한 곳이 140곳이 넘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어요. 그 배경은 자식 교육시켜야 한다,먹고 살아야 한다였어요.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성실성,열정이 오늘을 만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열이 심하고 향락과 금전만능주의가 넘쳐나서 걱정될 정도입니다. 지금은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데카의 저서 '대중의 반역'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16세기에서 18세기를 주름잡은 스페인은 열정이 식고 국가적 테마가 사라진 자리에 향락과 사치가 대신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어요. "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 통일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독일 쾰러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왔을 때 만났습니다. 쾰러 대통령이 독일은 분단 이후 30년에 걸쳐 통일기금을 적립했는데도 경제 안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했어요. 한국은 통일준비에 소홀하다는 지적이었어요. 통일기금 마련 캠페인을 통해 평화통일의 미래를 그려보려 합니다. 정치인이 배제된 순수한 민간의 힘으로 통일기금을 모아서 판문점 일대에 세계적 평화도시를 만들고,그 일대를 세계적 중심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

김동민 기자 gmkd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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