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동산 부양책 발표' 각본 짜놓았나?

2010. 6. 16.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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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광수경제연구소 기자]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힐스테이트' 아파트 견본주택(모델하우스)에서 방문객들이 도우미에게 아파트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선대식

어제(15일) 오전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 주택시장 점검회의 > 에 다녀왔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약 두 시간 동안 개최된 이 회의에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 주재로 10여명의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했습니다. 오늘 글에서는 이날 회의에서 거론된 내용과 이와 관련한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회의에 참석하게 된 과정을 소개하면 14일 오후 늦게 금융위원회가 우리 연구소로 연락해서 회의 참석 여부를 물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저희가 한가한 사람들도 아니고 다음날 아침 회의 참석 여부를 그 전날 저녁에 묻는 것이니 이건 정말 참석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전화를 직접 받은 직원에게 물어보니 "회의가 갑자기 결정돼 늦게 연락드리게 됐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식이든 결코 매너 있는 방식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참석해봐야 관료들의 정책 결정 과정에 들러리를 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처음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제 트위터 폴로어들에게 의견을 여쭤봤더니 그래도 참석해서 회의 분위기를 전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저로서도 최근 주택 시장 부양책을 정부가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터라 분위기 파악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석하게 된 회의. 이미 논의 내용이나 회의 분위기는 짐작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논의 내용은 이미 참석자 면면에서 대체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석한 분들은 대한건설협회 부설 연구소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건설 분야 민간 연구소 한 곳, 증권회사 및 시중은행의 부동산 관련 연구소의 관계자나 연구자들, 그리고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등과 시중은행 세 곳의 주택금융 관련 실무 책임자들이었습니다. 또 저를 포함해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금융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저는 사전에 듣지 못했지만, 이후 금융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그 기관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라고는 합니다.

이미 짜인 각본대로 회의? 부양책 바라는 참석자 상당수

참석자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 기관들 가운데는 부동산문제에 관해 상당한 직간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건설협회 부설 연구소인 건산연을 비롯해 건설업체들의 용역을 하는 기관이나 건설주에 투자하고 있거나 부동산 펀드 등을 운영하는 증권사 소속 연구소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중은행의 주택 금융 담당자들 또한 정부의 부양책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입장일 가능성이 높고요.

사실 어떤 회의의 결론은 이미 회의 참석자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웬만큼 결정이 됩니다. 저도 짧게나마 공직 생활을 했을 당시의 경험을 통해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행정기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발언을 해줄 사람들을 골라 다수를 구성하고 그 외에 구색 맞추기식으로 몇 명을 끼워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는 각계 전문가를 모아 의견 청취를 했다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공청회나 전문가 의견 청취 등을 통해 여론 수렴을 했다는 것이지요. 이번 회의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물론 금융위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부동산시장 상황에 대해 골고루 의견을 들어보려는 취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제대로 구성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최근 부동산 문제에 관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대세하락' 등을 경고한 연구소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구소들의 연구자들은 초청 대상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택 문제나 이와 관련된 부동산 금융 문제를 서민가계 입장에서 연구하는 학자들도 계시지만, 역시 초청 대상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구성으로 얼마나 균형감 있는 부동산 시장 상황 진단을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해관계가 있는 참석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그런 자장 안에서 움직일 개연성은 상당히 큽니다. 대표적인 분들이 시중은행의 실무 책임자들입니다. 이들 실무자들 세 분은 모두 DTI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들이 현장에서 부동산중개업소들을 만나보면 지난해 DTI규제 강화 이후 주택 거래가 끊어지고 집값이 하락한다고 아우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정부가 추가적인 하락을 방치하지 않겠다, 지나친 주택 가격 하락을 막아 연착륙시키겠다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지난해 DTI규제를 적용하기 이전에 거래량 증가가 크게 둔화되는 등 이미 부동산 시장의 반등 여력이 거의 소진돼 가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DTI규제 재강화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이들 은행 실무자들은 현장의 몇몇 이야기만 듣고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동산 거품기 때처럼 은행의 외형적 성장을 위해 가계 대출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늘어놓았습니다. 사실 이들은 금융위원회 관료들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와 같은 존재들이어서 뭔가 그럴듯한 건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못 말해 찍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회의에서도 금융위 관계자들의 눈치를 상당히 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것은 역시 대한건설협회 부설 연구소인 건산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날 참석자의 상당수는 이미 2008년 말 경제위기 때 이뤄졌어야 할 건설업계 구조조정이 지연된 것이 지금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도 약간은 의외였으나 건설업계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건산연 참석자는 "건설업체들의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한 현실은 부인하지 못하면서도 '속도 조절'이라는 용어를 통해 정부의 부양책을 요구한 것입니다. 특히 토론회 말미에는 "지금의 환매조건부 미분양 매입 대책은 정부가 돈을 빌려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절반 가격에라도 사주는 게 좋다"는 식으로 주장했습니다. 노골적으로 자신에게 월급 주는 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제가 회의가 끝난 뒤 그 연구자를 뒤따라가면서 "미분양을 시장에서 반값에 그냥 팔면 되는데, 왜 그걸 굳이 국민 세금으로 사주라고 하느냐"고 몇 차례 물었으나 대답을 않더군요.

"주택 가격 하락은 새로운 시장 균형 찾아가는 현상"

건설사들의 분양가격 인하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진은 최근 주변 시세보다 20% 할인해 분양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 힐스테이트' 아파트 공사 현장이다.

ⓒ 선대식

물론 경청할만한 좋은 의견을 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금융연구원의 참석자는 "부동산 폭등기 때는 DTI규제를 도입해도 6개월 정도 밖에는 효과가 없었고, 이후 다시 다른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며 "지금의 하락세를 DTI규제만으로 해석해서 섣불리 DTI규제를 다시 완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국내에서 DTI규제를 불필요한 규제라고 하는 주장이 일부 나오는데, 다른 선진외국에서는 정부에서 굳이 규제하지 않아도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DTI 비율을 40% 아래로 맞추고 있다"며 "오히려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들은 국내 DTI규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하며 DTI규제에 손대지 말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의 참석자는 현재 주택시장 상황에 대해 "그 동안 금융(유동성) 공급을 통해 인위적으로 시장을 키워왔지만, 더 이상 제대로 된 수요는 없는데 공급 과잉이 심해진 상황"이라며 "지금의 주택 가격 하락은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 균형을 찾아가는 현상인데 건설사들의 주택 공급 가격은 여전히 너무 높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이어 "현재 상황으로는 대규모 금융 위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며 "이 정도로는 건설업계 전체가 안 무너지니 건설사들이 단기적인 고통을 감내하도록 하고 분양가 하락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일부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DTI규제 때문에 주택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금 DTI규제를 다시 풀게 된다면 그것은 주택가격 지탱 외에는 다른 (정책) 목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건설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것 외에 다른 지원책은 필요 없다"고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상당히 동의하는 발언이었습니다.

건국대 교수는 "미국의 저축대부조합(S & L)사태나 일본 주택시장의 장기화도 결국 구조조정을 제때 하지 않고 계속 미루다가 일이 커진 것"이라며 "시장 청소가 안 된 상황이므로 과단성 있는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제가 인용한 이런 의견들은 사실 제 생각과 크게 다를 바는 없습니다.

건설업체 구조조정 추진하고, 금융 규제 유지해야

제 생각은 평소 자주 말씀 드렸기에 길게 적지 않겠습니다. 우선, 현재 주택시장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현재 주택시장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고 말하면, 제 의도와는 달리 정부가 부양책을 쓸 빌미를 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날 자리에서 국민은행 부동산연구소 참석자는 부동산중개업소들의 호가 위주로 작성되는 국민은행가격지수를 바탕으로 현재 부동산시장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던데, 그 분들을 그냥 꿈 속에서 헤매게 놔두는 것이 낫겠다 싶더군요.

어쨌든 제 의견을 요약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지금의 주택 가격 하락은 수도권 주택 가격이 너무 높기 때문에 수요가 고갈된 때문으로 집값이 자산시장의 가격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자연스레 조정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주택 가격은 일정한 수준까지는 시장에 맡겨 하락 조정되도록 해야 하며, 그렇게 주택 가격이 시장에서 일정한 바닥을 찾을 수 있어야 거래도 가장 빨리 활성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가 집값 거품을 빼야 할 때이지 건설업계 부양책을 써야 할 시기가 아니며 집값 거품이 정상적으로 빠지도록 정부가 당분간은 자산시장의 가격조절 메커니즘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가라앉는 시장에서 재정력과 행정력을 동원해 무리하게 시장을 떠받치려 해봐야 약발이 오래 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시장의 자기 조절을 지연시켜 주택시장 침체를 장기화시키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건설업계를 떠받치고 주택 가격의 급변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DTI규제를 다시 푼다든지 해서 가계부채를 계속 늘리도록 유도하면서 가계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의를 갑자기 마련한 것을 보니 상부 지시 때문에 이 회의를 마련한 것 같은데, 지금 집값 거품을 일정하게 빼놓지 않으면 다음 대선 때인 2012년에 정말 위험해질 수 있으니 상부에 그렇게 전하라고도 했습니다.

이날 회의를 주관했던 금융정책국장은 회의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논의를 들어보니DTI규제 등 금융적 조치는 (주택시장 침체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주택 가격의 변동폭을 줄이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주택 가격 변동폭이 커질 경우 변동폭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대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최근 국토해양부가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의견청취'를 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만, 아마 연결된 움직임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음달 중 '부동산 거래 활성화 대책'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의 발언에 신경 쓰였던지 담당 국장은 "오늘 회의는 상부 지시 때문은 아니고 최근 주택시장에서 부동산 폭락설 등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니 일상적 주택시장 모니터 차원에서 의견을 청취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의 설명대로 일상적 차원이라면 왜 그렇게 회의를 급하게 마련해 참석자들에게 연락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이 싱가폴에서 "올 하반기에는 집값이 오를 것이니 투자하라"는 식으로 발언한 이후에 말입니다. 여담이지만,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 수준에서 할 만한 발언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하고 있으니 개탄스럽습니다. 이 정부는 말끝마다 '국격이 올라간다'고 헛소리를 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이런 '부동산업자'스러운 발언이야말로 이 나라의 국격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정부, 집값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급급

그리고 정말 한심스러운 것은 정부의 말과 행동이 다른 행태입니다. 얼마 전까지 부동산 버블에 대한 전문연구기관들의 경고가 잇따를 때도 주택정책의 주무 부서인 국토해양부 장관이 직접 나서 "국내에는 부동산 버블이 없다"고 몇 차례나 주장했습니다. 전문 연구기관이 아닌 국토해양부가 보도자료를 내면서까지 엉터리 논리를 펼치며 부동산 버블 경고를 반박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얼마 전까지 정부 차원에서 '버블이 없다'고 열심히 여론전을 펴던 국토해양부가 얼마 전 주택시장 상황 점검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것도 건설업계나 부동산업계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말입니다.

부처는 다르지만 금융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날 회의의 주 논의대상 중 하나가 '부동산 폭락 가능성' 여부였습니다. 이미 국토해양부가 부동산 버블이 없다고 결론내리고 있고, 대통령이 하반기에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인식을 갖고 있다면 부동산 폭락 가능성 여부는 왜 따지는 것일까요. 또한 부동산 버블이 없다면 지금의 주택시장 침체는 정상적인 시장 상황에서 일어난 매우 일시적인 현상이니 시장에 맡기면 될 텐데 지난 번 4.23미분양 해소 대책을 비롯해 틈만 나며 부동산 부양책을 만지작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의 다른지도 모르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거나, 알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집값 폭락 가능성이 없다' '집값이 오른다'는 식으로 심리전을 펴는 한편 실제로는 현 정권의 핵심 정치기반인 부동산 부자들을 위해 집값 거품을 떠받치기 위해 급급한 경우일 것입니다. 어쩌면 두가지 모두 섞여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금융위 관료들의 '상전 행세'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 첫머리에도 썼지만 회의 전날 급하게 연락해서 사람을 오라 가라하는 것은 무슨 경우입니까. 관료들이 부르면 우리가 쪼르르 달려가야 하는 사람들입니까. 지금까지 그런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보니 그렇게 무리하게 일정을 잡으면서도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어제 참석자들에 대해서는 정책 자문비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다 일가견 있다는 사람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참석했는데, 그에 대한 자문비조차 책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 관료들이 얼마나 민간을 우습게 알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깟 자문비 한두 푼이 아쉬워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부는 말끝마다 '지식정보화시대'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자신들이 평소에 제대로 연구, 분석하고 있어야 할 사안을 제대로 하고 있지도 않다가 급하게 외부 전문가들을 불러 아이디어와 견해를 구하면서도 그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부 관료들부터가 지식이나 정보는 공짜라는 인식이 강하고, 지식의 값어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데 무슨 '선진지식경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건산연 같은 곳이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언제든 달려갈지 모르겠지만, 저희 연구소는 다릅니다.제대로 정책이라도 편다면 국리민복을 위해 기꺼이 무료봉사할 생각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는 이럴 때마다 예산 부족 운운할지 모르겠지만, 수십 조원을 강바닥에 콘크리트 쳐바르는 데는 돈을 물 쓰듯 쓰면서 어떻게 외부 전문가의 지식과 정보를 사는 데는 이렇게도 인색한지 모르겠습니다. 관료들의 몸에 밴 '상전 의식'과 지식을 공짜로 여기는 습성을 버리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서민 경제와 선진지식경제를 구현하는 것은 요원하다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날 회의에서 나온 의견들을 보면 건설업체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라, DTI규제는 현행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보입니다. 만약 정부가 추후 DTI규제를 풀거나 건설업계 부양책을 추가로 내놓는다면 '의견 청취'는 자신들이 미리 마련해놓은 정책 각본을 합리화하기 위한 포장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부동산 시장은 정부 부양책 정도로 떠받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정부의 추가 부양책을 반대하는 것은 그러면 그럴수록 막대한 재정적자 등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기회비용이 커지고, 서민들이 부동산 거품 때문에 고통 받는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근시안적인 시야에서 벗어나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부동산 거품을 빼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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