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대형차 절대강자’ 그랜저…시야 좋고 트렁크 한수 위가 나타났다[도전車대車]

김창우 2026. 5. 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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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車대車16 르노 필랑트 vs 현대 그랜저 HEV


준대형차(準大型車). 대형에 준하는 자동차라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자동차관리법에는 없는 마케팅 용어다. 국내에서 이급의 판매왕은 현대 그랜저다. 1986년 데뷔해 40년 동안 지금의 7세대까지 진화했다. 그랜저 누적 판매는 2020년 200만 대를 돌파했다. 이후에도 연간 10만여 대 판매를 유지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승용차이기도 하다.

현대 그랜저 HEV(왼쪽)와 르노 필랑트.


이번 비교에서 그랜저와 맞붙인 상대는 필랑트. 현재 르노코리아의 기함으로, 세단과 SUV를 결합한 크로스오버다. 체급은 비슷하되 장르가 다른 이종격투기인 셈이다. 해당 브랜드의 최고급 모델을 세단에서 크로스오버로 바꾼 경우는 필랑트 말고도 있다. 토요타다. 70년 전통의 고급 세단 크라운을 2022년 세단과 크로스오버, SUV의 3종 세트로 선보였다.

르노 필랑트(왼쪽)와 현대 그랜저 HEV.


2026년 3월 판매는 그랜저가 7574대, 필랑트가 4920대. 그랜저 하이브리드(이후 HEV)로 범위 좁히면 4345대로 필랑트가 더 많다. 하지만 필랑트를 3월부터 본격 출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전계약 대기물량이 만든 착시효과도 있다. 여러 여건을 고려해도 그랜저가 이급의 절대 강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만큼 동급 모두가 대결을 원한다.

글= 김기범 로드테스트 편집장(ceo@roadtest.kr), 영상= 김규용 로드테스트 기자, 사진= 김주현 로드테스트 기자

르노 필랑트


두 대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필랑트가 훨씬 더 커 보인다. 키가 껑충한 장르의 차이는 이처럼 첫인상부터 좌우한다. 제원을 확인해 보면 필랑트의 키가 1635㎜로 그랜저보다 175㎜ 더 높다. 그런데 차체 길이는 그랜저가 5035㎜로 필랑트보다 120㎜ 더 넉넉하다. 실내 공간 좌우할 휠베이스 역시 75㎜ 더 길다. 필랑트는 존재감, 그랜저는 공간감이 앞선다.

현대 그랜저 HEV


디자인은 서로 뚜렷이 다른 개성을 뽐낸다. 필랑트는 르노코리아의 기존 차종과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입체적인 얼굴과 몸매, 날카롭게 접어 넣은 뒤태처럼 요소요소가 파격으로 가득하다. 어둠이 내리면 로장주(마름모) 로고와 그릴의 조명을 밝혀 한층 화려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몸매는 두툼하지만 근사한 비율로 다듬어 스포티한 감각이 물씬하다.

그랜저의 외모도 둘째가라면 서운할 만큼 독특하다. 그동안 세대별로 확연히 다른 모습을 넘나들었는데, 이번 7세대가 가장 젊은 분위기다. 얼굴과 꽁무니 가로지른 얇은 LED 조명 덕분에 한층 납작하고 정교해 보인다. 긴 역사를 뽐내는 차종답게 과거의 유산도 계승했다. 과거의 그랜저를 오마주한 운전대와 뒷문 옆 오페라글라스, 프레임리스 도어가 좋은 예다.


개방감과 트렁크는 필랑트가 한수 위

필랑트는 좌석 위치가 높아 시야가 뛰어나다. 동급 최대 크기인 1.1m²의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를 씌워 뒷좌석 개방감이 탁월하다. 휠베이스는 그랜저보다 짧지만, 시트 위치가 높아 무릎을 좀 더 세워 앉기 때문에 다리 공간도 충분하다. 르노코리아의 자료에 따르면 뒷좌석 무릎 공간은 320㎜, 머리 공간은 선루프 유무에 따라 874~886㎜에 달한다.

르노 필랑트


그랜저의 실내는 좌석 위치가 낮아 한층 아늑한 분위기다. 소재의 질감과 조합도 훨씬 고급스럽다. 역시 오랜 역사를 거치며 쌓아온 노하우는 무시할 수 없다. 고급 세단에 대한 소비자의 욕망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머리 공간은 필랑트에 못 미치지만 무릎 공간은 확실히 더 넓다. 필랑트의 상석이 앞좌석이라면, 그랜저는 단연 뒷좌석이다.

현대 그랜저 HEV


둘은 장르의 차이만큼 서로 다른 매력으로 빛난다. 그런데 한 가지 항목만큼은 우열이 명백하다. 바로 활용성이다. 짐 공간이 대표적이다. 그랜저의 트렁크 공간은 480L다. 게다가 뒷좌석 접는 기능이 없다. 반면, 필랑트는 2열 좌석 뒤에 천정까지 뻥 뚫린 633L의 짐 공간을 확보했다. 나아가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최대 2050L까지 넓힐 수 있다. 비교 불가다.

두 대 모두 길이 5m 안팎, 너비는 1.9m에 육박하는 덩치를 갖췄지만, 상대적으로 심장은 소박하다. 전기 모터가 지원 사격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엔진의 부담을 줄인 덕분이다. 전기 모터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쪽은 르노의 ‘E-테크 하이브리드’다. 르노코리아는 도심 구간 운행 시 최대 75%까지 전기 모드로 주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르노 필랑트


르노 필랑트는 직렬 4기통 1.5L 가솔린 터보 직분사 150마력 엔진에 최고출력 100㎾의 구동용, 60㎾의 시동용 전기 모터를 각각 한 개씩 짝지었다. 여기에 ‘멀티 오토’ 자동 3단 변속기를 물렸다. 필랑트의 시스템 최고출력은 총 250마력. 그랜저 HEV보다 20마력 더 높다. 뼈대와 심장 모두 르노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중국 지리자동차의 기술이 스몄다.

현대 그랜저 HEV


그랜저는 직렬 4기통 1.6L 가솔린 터보 직분사 180마력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 사이에 44.2㎾의 구동용 전기 모터를 엮었다. 시스템 총 출력은 230마력이다. 둘 다 하이브리드 배터리는 리튬이온 방식. 용량은 그랜저가 1.76㎾h로 필랑트보다 0.12㎾h 더 여유 있다. 크로스오버와 세단으로 나뉘지만 둘 다 앞바퀴 굴림 방식 한 가지로만 나온다.


그랜저, 조용하고 편안한데 의외로 빠르네

고급차를 표방하는 만큼 둘 다 정숙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를테면 앞과 옆에 이중 접합 차음 유리(필랑트는 아이코닉 이상 트림)를 끼웠다. 또한, 필랑트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Active Noise Cancellation, ANC)’, 그랜저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로드(ANC-R)’를 적용했다. 스피커로 반대 위상의 음파를 쏴서 소음을 상쇄하는 기술이다. 현대차는 이 기술로 3㏈(데시벨), 이중 접합 차음 유리로 2.5㏈의 소음 저감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르노 필랑트


둘 다 주행 중 앞뒤 좌석 간 대화에 무리 없을 만큼 조용하다. 불필요한 소음이 사라진 공간은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 감상한 여유를 더한다. 굳이 우열을 따지면 필랑트의 소음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진다. 전면 투영 면적이 큰 크로스오버의 특성이다.

현대 그랜저 HEV


둘 다 하체는 편안한 승차감에 초점 맞춰 세팅했다. 주파수 감응형 댐퍼로 자잘한 충격은 너그럽게 삼키고, 지속적인 기울임은 꿋꿋이 버틴다. 그랜저는 블랙잉크 이상 트림에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도 더했다. 전방 카메라와 내비게이션 지도 정보를 활용해 관절의 강약을 지능적으로 조절한다. 설령 이 기능까지 없어도, 승차감은 그랜저가 좀 더 매끈하다.

필랑트는 외모의 분위기가 주행감각으로 이어진다. 스포티하고 공격적인 생김새처럼 가속 페달 밟을 때마다 불끈불끈 뛰쳐나간다. 전기 모터의 개입이 한층 적극적인 만큼 초반 토크가 맹렬히 솟구친다. 자연스럽게 운전의 템포도 빨라진다. 3단뿐인 변속기는 급가속 때 시속 76㎞까지 기어를 바꾸지 않고 밀어붙인다. 따라서 변속으로 인한 단절감이 거의 없다.

르노 필랑트


그랜저도 외모를 따르기는 마찬가지다. 단아한 생김새처럼 주행 감각도 부드럽고 온화하다. 기어를 6단까지 쪼갰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변속 순간도 눈치채기 어렵다. 세단 특유의 낮은 무게중심과 더불어 같은 도로를 달릴 때보다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필랑트는 덩치와 무게 때문에 타이어가 일찍 비명을 지른다. 따라서 비장한 각오로 굽잇길 누비기엔 다소 부담스러웠다.

현대 그랜저 HEV


한편, 같은 구간에서 간이로 계측한 0→시속 100㎞ 가속 테스트에서 반전이 펼쳐졌다. 필랑트가 평균 8.8초인 반면 그랜저는 7.7초를 기록했다. 필랑트는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 바닥까지 밟을 때 변속기가 찰나의 뜸을 들이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타이어 사이즈에 따라 필랑트보다 105~120㎏ 더 가벼운 그랜저의 공차 중량도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소비자가 원하는대로 그랜저, 도전 욕망 부추기는 필랑트

그랜저와 필랑트 각각을 상징할 단어는 전통과 혁신이다. 그랜저는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3박스 세단이다. 필랑트는 유행에 충실한 크로스오버다. 익숙하지만 식상한 모범 답안과 낯설지만 창의적인 해법의 대결이다. 그랜저는 세그먼트를 떠나 승용차 시장 판매 1위의 챔피언이다. 필랑트는 르노코리아의 명운을 짊어진 ‘오로라 프로젝트’의 두 번째 결실이다.

르노 필랑트


그랜저는 세심하고 노련한 상품 기획이 돋보인다. 소비자가 원하는 요소를 황금비율로 섞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울타리 속에 안주하고 싶어진다. 반면 필랑트는 외모부터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다혈질적 주행 감각까지 시종일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하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대 그랜저 HEV


가격은 현재 살 수 있는 트림 기준으로, 필랑트가 4696만~5218만원, 그랜저 HEV가 4354만~5266만원이다. 참고로, 필랑트는 1956년 르노가 미국 보네빌 소금 호수에서 시속 307.4㎞로 기록을 세운 속도 경주차 이름에서 따왔다. 프랑스어로 ‘별똥별’을 뜻한다. 그랜저는 위엄을 뜻하는 영단어다. 어쩌면 이름마저도 이렇게 다를까.

공교롭게도 촬영 마친 직후 현대차가 부분변경 거친 그랜저 디자인을 공개했다. 본의 아니게 막차를 탄 셈이다. 그러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그랜저도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를 더한다. 그래서 경쟁이 한층 흥미진진해질 전망이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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