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15번 찔리고 한쪽 눈 잃었다…'또다른 칼'로 응답한 루슈디
최근 몇년 간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온 인도 출신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77)가 산문집 『나이프』로 돌아왔다. 신간은 그가 2022년 미국 뉴욕주의 한 강연장에서 극단주의 무슬림 청년에게 테러를 당한 뒤 쓴 회고록이다.
당시 24살이었던 하디 마타르는 75세의 루슈디를 칼로 15번 찔렀고 칼은 루슈디의 목과 눈, 가슴과 허벅지를 난도했다. 『악마의 시』(1988)에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수십년 간 살해 위협에 시달려온 루슈디에게 처음 발생한 피습 사건이었다.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된 루슈디는 수십 번의 수술을 거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오른쪽 눈을 잃었다. 책에는 '살인 미수 후의 명상'(Meditations After an Attempted Murder)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나이프』 한국판 출간을 앞두고 서면으로 루슈디와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나이프』는 소설 『악마의 시』 때문에 만들어진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두 책이 독자에게 어떤 의미로 가 닿길 바라나.
A : 나를 공격한 자가 읽지도 않은 책, 『악마의 시』가 나는 자랑스럽다. 독자들이 그 책을 위협의 그림자 속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하나의 문학으로 즐겨주기를 바란다. 『나이프』는 내게 일어난 '그 일'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자, 폭력에 대한 예술의 응답이다.
Q : 전세계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가치일까.
A :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자유도 함께 사라진다. 수많은 작가가 안전하지 못한 상황을 감수하면서, 때로는 목숨을 바쳐 표현의 자유를 지켰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는 우파, 좌파의 구분도 있을 수 없다.
Q :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오랜 치료 끝에 다시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무엇이 가장 큰 동력이 됐나.
A : 사랑이다. 혐오의 대척점에 서서 혐오를 이기는 사랑. 아내 일라이자와 가족들, 동료 작가들과 독자들이 보내준 지지를 딛고 회복할 수 있었다. 『나이프』는 사랑의 힘에 관한 책이다.
Q : 『나이프』의 6장에는 테러범과 상상 속에서 나눈 대화가 등장한다. 그가 이 책을 읽기를 바라나.
A : 그가 이 책을 읽을 것 같지 않다. 성찰과 반성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6장을 쓴 이유는 그에 관해 쓰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루슈디는 책에 "피습 사건을 해결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이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사건을 책임지고 내 것으로 만들어 단순한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고 썼다.)
Q : 피습 경험을 다룬 책이지만 시종일관 진지하지는 않다. 고통스러운 재활 과정도 위트 있게 다뤘다.
A : 유머가 없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책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이 책은 2022년 일어난 범죄에 대한 진술서가 아니다. 문학 작품으로 즐길 수 있는 풍부하고 다층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Q : 테러범은 『악마의 시』를 단 두 페이지 읽었다고 진술했다. 당신을 혐오하면서도 당신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A : 누구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지만 우리는 오히려 더 무지해졌다. 이런 상황을 단번에 바꿀 마법의 지팡이 같은 건 내게 없다. 그저 내 일을 할 뿐이다.
Q : 책에 "그 사건이 어떤 식으로도 글 쓰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미쳐서도 안 되며, 앞으로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집필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았나.
A : 모든 글쓰기는 어렵다. 각각의 책에는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나이프』는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쓸수록 쉬워졌다. 이 책을 완성함으로써 나는 이 서사에 대한 '소유권'을 되찾았다.
Q : 자신을 '인도 밖에서 글을 쓰는 인도 작가'라고 정의했다.
A : 내가 인도 출신이라는 점은 내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쓰는 모든 작품에 정체성 이슈를 담지는 않는다. 『나이프』도 마찬가지. 이 책은 폭력과 생존,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와 그 의미를 다룬 책이다.
Q : 영상의 시대에 문학을 계속 읽어야 하는 이유는.
A : 이 논의에서 나는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글쓰기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니까. 시각 미디어는 대체로 덧없고 순간을 위해 만들어지는 반면, 좋은 책은 오래가도록 만들어진다.
Q : 책에는 시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A : 시는 가장 고귀한 형식이자, 가장 근본적인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시를 하나만 추천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나이프』에서 E. E. 커밍스의 시를 인용했고, 그의 작품을 모두에게 추천한다.
Q :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등 세계는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문학의 역할은?
A : 문학은 인류에게 인류의 이야기를 전하는 메신저다. 문학은 우리의 유산이며 초상이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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