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미래의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을 나에게
수학자들은 이상한 사람들이다. 숫자를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조합해 보는 게 그들의 일이다. 그러다가 어떤 규칙을 발견하면 ‘아무개의 추측’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다. 그러면 전 세계 수학자들이 그 문제를 풀려고 달려든다.
1937년 독일 수학자 로타르 콜라츠가 제시한 ‘콜라츠 추측’은 아직도 증명되지 않았다. 그가 발견한 규칙은 간단하다. 어떤 수(x)가 홀수면 ‘3x+1′에 대입하고 짝수면 반으로 나눈다. 그러면 어떤 숫자든 결국 ‘4→2→1′의 순환 고리에 갇힐 것이라는 추측이다. 3을 생각해 보자. 3은 홀수이므로 3x+1에 대입하면 10, 짝수가 나왔으므로 반으로 나누면 5, 다시 수식에 대입하면 16→8→4→2→1이 된다. 1을 3x+1에 대입하면 4로 되돌아간다.
수학자들은 이 규칙에 2의 68승까지 일일이 대입해봤으나 오류를 찾지 못했다. 2의 68승은 295,147,905,179,352,825,826이며 ‘2해9514경7905조1793억5282만5826′이라고 읽는다. 콜라츠 추측이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많은 수를 대입해 보고도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했다. 85년간 풀지 못한 콜라츠 추측은 수학계에서 ‘절대 풀려고 시도하지 말아야 할 문제’라고 한다. 심지어 “미국의 과학 발전을 막기 위해 소련이 개발한 문제”라는 음모론도 있다.
허준이 교수도 콜라츠 추측을 풀지 못했(않았)다. 그가 필즈상을 받은 업적은 또 다른 난제인 ‘리드 추측’을 비롯해 11가지 추측을 푼 것이다. 수학자 대부분이 평생 한 문제도 풀지 못하는 추측을 마흔 살도 되기 전에 그만큼 해결했다. 리드 추측은 “채색 다항식 계수의 절댓값은 증가하다가 감소할 수는 있지만 감소하다가 증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조차 알 수 없다.
우리는 허 교수의 수상이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우리 대부분은 필즈상의 존재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리드 추측을 풀었다는 것은 물로 가는 자동차를 만들었다거나 노화를 막는 약을 개발했다는 말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서울대 김영훈 교수가 허 교수의 업적을 설명한 영상을 봐도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말 외에는 죄 모를 소리다. 그는 리드 추측에 대해 “대수기하학을 1년 이상 공부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나는 기쁜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그러다가 허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읽었다. 빛나는 글이었다. 허례와 허식이 없고 군더더기도 없다. 머뭇거리거나 에두르지 않으면서 겸손했다. 게으른 덕담은 한마디도 없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 것인지 이야기했다. 비로소 허준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 같았다. 2200자가량 되는 그 글은, 비슷한 분량의 글을 주기적으로 써야 하는 처지도 되돌아보게 했다.
그가 경계한 일곱 가지, 무례·혐오·경쟁·분열·비교·나태·허무는 실로 달콤해서 길들여지기 쉽다. 나는 불편한 결정을 하거나 쓴맛을 겪어야 할 때마다 무례나 혐오 또는 나태와 허무 같은 당의(糖衣)를 입혀 꿀꺽 삼키곤 했다. 나는 나 자신이 세속과 타협하도록 모질게 굴었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았으므로 쉽게 허물어졌다. 연설문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피타고라스가 모루에 망치질 하는 소리를 듣고 음정을 숫자로, 화음을 비율로 계산해 서양 음악학의 시조가 된 것처럼 허준이의 학문은 일상의 깊은 사색에서 비롯됐다. 타인을 미래의 자신으로, 현재의 자신을 잠시 함께하는 타인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에서는 철학자나 시인의 고독을 느꼈다.
그를 수학의 세계로 이끈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책 ‘학문의 즐거움’에서 “고독(loneness)과 외로움(loneliness)은 비슷한 것 같지만 대립하는 뜻이며, 고독감이 확고한 사람은 결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수학 난제를 푸는 것을 “현세의 번뇌를 해소하고 부처의 차원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사제(師弟)의 글을 읽다 보면 수학은 명상을 거쳐 해탈에 이르는 학문인 것 같다.
허 교수의 글을 읽고 “미래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낯선 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는 병원 1인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낯선 곳에서 낯선 모습이 되어 있으면 한다.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며 살아온 나를 기다리고 있어주길 바란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축하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감사의 말도 전하고 싶다. 허 교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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