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학교 입학 앞둔 아이... 대학 입시보다 더 궁금한 것
[김보민 기자]
지난 6월,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사는 미국 동부에서는 초등학교가 K(킨더)부터 5학년까지 6년이며, 이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4년을 거쳐 대학으로 이어진다. 미국살이 3년 차 되니, 9월에 새 학년이 시작해 6월에 끝나는 미국 학제에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중학교부터는 아이들이 교과목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다. 양육자와 담임 선생님의 정기적인 상담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양육자로서 약간 긴장되는 건 당연하다. 미국에서 학교에 다닌 경험이 없는 나는, 아이가 겪는 모든 과정에 대해 믿음직한 조언을 해주기 어려운 양육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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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은 평소 학생들이 점심을 먹던 카페테리아에서 열렸다. 교감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차례로 단상에 올라 교장 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았다. |
| ⓒ 김보민 |
지난해 미국 동부 버몬트주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친구 아이가 여름 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 대학 생활과 학비, 생활비, 기숙사비 이야기를 나누다가 총지출액이 연간 약 6만 5천 달러(한화 약 9000만 원)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고액 연봉자의 연봉과 맞먹는 큰돈이었다. 친구는 대학 졸업까지 총 3억 6천만 원이 든다고 덧붙였다.
내가 사는 매사추세츠에는 하버드, MIT, 보스턴 대학 같은 명문들이 즐비하다. 학비를 검색해 보니 4년간 학비와 생활비를 포함해 약 5억 원에 달했다.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두고 대학 학비를 걱정하는 것이 너무 이른 일 같기도 했지만, 이것이 현실임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한 학기 학비가 150만 원이었던 국립대를 졸업했다. 한 달에 과외 두세 개만 하면 생활비와 학비를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가고 싶었지만, IMF 직후 대학에 입학했던 터라 부모님께 대책 없이 서울에 보내 달라고 조를 수가 없었다. 동생들도 공부를 해야 했기에 나만 생각할 수 없었다. 남편은 시아버지가 장기 근속 중인 회사에서 자녀 학자금을 지원받았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에 대해 크게 걱정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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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철 하버드대학교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붉은 벽돌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괜히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 ⓒ 김보민 |
내가 미국에 오며 그렸던 그림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심란해진다. 한국에 있었더라도 대학 학비 마련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던데 미국 대학 등록금은 한국보다 평균 15~20배 이상 비싸다. 그렇다고 한국보다 15~20배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니, 고구마가 목구멍에 콱 막힌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왜 이 먼 미국까지 와서 살고 있을까? 이 질문은 가끔 밤늦게, 불 꺼진 부엌에서 설거지하며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가자며 남편을 설득하던 그때, 막연히 한국을 떠나고 싶던 오래전 감정들이 떠오른다.
어릴 때 나는 내 고향에서 가장 먼 곳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남녀차별이 흔하고, 답답할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가 싫었다. 서울은 조금 더 나을까 싶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나는 시골에서 온 사람으로 분류되었고, 내 사투리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낯선 도시에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마다 곤궁함이 느껴져서 슬펐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진정 독립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어느새 어릴 때 꿈을 이뤄 한국에서 비행기로 15시간이 걸리는 곳에 살게 되었다. 비행시간이 너무 길어 친정엄마조차 우리 집 방문을 꺼리실 정도니, 너무 크게 성공한 건가 싶다.
모든 것이 새로운 미국의 음식, 사람, 풍경, 문화를 만끽하느라 매일이 새롭다. 내가 경험한 것들과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아가는 여정은 언제나 재밌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도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박진감이 넘친다. 익숙한 게 없으니 지루할 틈도 덩달아 없다.
삶의 자세는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기에 충분하지만, 돈처럼 현실적인 부분에서 급제동에 걸린다. 따지고 보면 가족과 함께 미국까지 오면서 현실적으로 맞닥뜨릴 돈에 대해서 고민을 한 기억이 없다. 지금까지도 어떻게든 버텨왔으니, 미국에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막연한 자신감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수입과 지출, 미래를 위한 저축 등을 세심하게 고려했다면 나는 미국까지 와서 아이들을 키울 생각을 했을까? 회사의 1년 미래는 계획을 세우고, 계획안을 제출하며 살았는데 왜 내 미래 계획서는 이렇게 백지였을까?
IMF 시절, 나는 고3이었다. 수능 연습 문제집을 하루에도 한 권씩 사다 풀던 때였기에 아침마다 엄마에게 만 원씩 달라고 했다. 집 문을 열기 직전 엄마에게 하는 인사가 "엄마, 만 원만"이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구겨진 만 원짜리를 건네주긴 했지만, 엄마는 늘 돈이 없다고 했다.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열두 시에 학교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는 엄마를 만나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 집은 왜 돈이 없어?"
"우리가 왜 돈이 없어? 집도 있고, 밥도 먹고 다 하는데."
"엄마는, 내가 문제집 산다고 돈 만 원 달라고 할 때마다 돈 없다고 하잖아."
"문제집 살 돈은 부족해도, 삼시 세 끼 먹고 살잖아."
이날 기억이 강해서였을까? 내가 자식을 낳으면 삼시 세 끼 먹을 돈도 있고, 문제집 사 줄 돈도 있고, 서울로 대학 보낼 돈도 있는 양육자가 되고 싶었다. 아이 둘을 낳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고단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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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방학이 절반쯤 지나갔다. 매일 아침엔 책을 읽고, 자기 전엔 일기를 쓴다. 둘째가 2학년에 올라가 읽기와 쓰기에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한 달이 지나니 눈에 띄게 나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
| ⓒ 김보민 |
자본주의 끝판왕의 나라, 미국에 와서 마주치는 현실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돈이다. 아이들에게 악기 하나를 가르치는 것도, 스포츠 클럽에 보내는 것도, 방학 때 여행 한 번 더 가는 것도 모두 돈이다.
혹자는 그런 것도 모르고, 미국까지 갔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저지르는 탓에 여기까지 올 수는 있었고, 지금까지 살아낼 수 있었다. 큰 아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고, 4년 장학금까지 받아 가며 대학에 가는 멋진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아이의 4년 학비를 책임질 만큼 능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도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서둘러 걱정하는 것은 내 체질에 맞지 않기에 굳이 나서서 걱정하진 않겠다. 다만 '돈' 앞에서 주눅이 들지 않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양육자 역할을 꿋꿋하게 해 나가고 싶다. 돈이 없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있었지만, 아침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나에게 건넸던 우리 엄마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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