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노벨문학상’…한강의 강렬한 문장들, 한눈에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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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그는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
산문 장르인 소설임에도 한강의 문장이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특유의 리듬감 때문이다.
한강의 시적인 문장들은 외국어로 번역하기 까다로울 것이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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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그는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
소설가 한강(53)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이유다. 산문 장르인 소설임에도 한강의 문장이 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특유의 리듬감 때문이다. 아무 장이나 펼쳐 한 대목을 툭 끊어 읽어도 운문인 시처럼 읽히는 것이다.
격동의 역사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아프게 표현한 문장들을 역설적으로 시의 한 구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건 작가의 이력과도 관련이 있다. 한강은 1993년 문단 데뷔를 시로 먼저 한 뒤 이듬해 소설로 방향을 틀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주로 소설을 써왔다.
한강의 시적인 문장들은 외국어로 번역하기 까다로울 것이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하지만 한강이 가진 고유의 탁월한 문학성에 재능 있는 번역가들의 질 높은 번역이 더해지면서 이제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한강의 작품에 매료될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 하루가 채 되기도 전인 11일 한강의 작품은 국내 주요 서점(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에서 무려 3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한강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이라면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까. 한강 본인의 대답은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그는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 생각에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한다. 따라서 나의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 책에는 인간의 행동이 일부 직접적으로 연결이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매우 개인적인 작품인 ‘흰’도 추천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꽤 자전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채식주의자’가 있다”고 소개했다. 한강의 소설들과 시집에 담긴 주옥같은 문장들을 살펴보자.
▲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문학동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57쪽)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109쪽)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쪽)
▲ 소년이 온다(2014년·창비)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102~103)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213쪽)
▲ 채식주의자(2007년·창비)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 그 목숨들이 고스란히 그 자리에 걸려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중략) 이 모든 것을 고요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가 어떤 성스러운 것, 사람이라고도, 그렇다고 짐승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식물이며 동물이며 인간, 혹은 그 중간쯤의 낯선 존재처럼 느껴졌다.”(128쪽)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성실했고, 나름대로 성공했으며,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락한 가건물과 웃자란 풀들 앞에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237쪽)
▲ 흰(2016년·난다)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39쪽)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64쪽)
▲ 검은 사슴(1998년·문학동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자랐고, 바로 그 어둠으로 인하여 나는 조금씩 강해졌다. 그 신령한 푸른빛에 익숙해지면서 어린 나는 투정하거나 심심함을 호소하는 대신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321쪽)
“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어떤 종류의 영혼은 외로움이 완성시켜준 것이어서, 그것이 빠져나가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만다.”(431쪽)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년·문학과지성사)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시 ‘서울의 겨울 12’에서)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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