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의 시시각각] 중국발 ‘드루킹 공작’ 두고만 볼건가

김정하 2024. 10. 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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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논설위원

중국 공산당이 세계 각국을 상대로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s)을 벌인다는 것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상식으로 통한다. 영향력 공작이란 특정 국가가 중국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게끔 여론 환경을 조성하고, 자중지란을 유발해 국력을 소모케 하는 전략적 활동이다.

중국 안보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목에 걸린 가시다. 한국은 중국이 최종 방어선으로 설정한 ‘제1 도련선’ 안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군사력도 만만찮다. 게다가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가 한국에 있다. 경제적으로도 한국과 중국이 대결을 벌이는 산업 분야가 많다. 그러니 중국이 한국을 영향력 공작의 주요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필연이다. 요즘 중국이 한국에 뿌려놓은 공작의 마각(馬脚)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중국인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뉴스 댓글 현황. 자료 김은영 교수


얼마 전 김은영(가톨릭관동대)·홍석훈(창원대)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중국 영향력 공작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중 간 경쟁이 치열한 전기차·배터리·e커머스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댓글부대가 조직적으로 기사 댓글을 달아 한국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지난 1년간 네이버에서 확보한 77개의 중국인 추정 계정을 분석해 보니 이들은 2개 그룹으로 나뉘어 리더의 조율하에 조직적으로 관련 산업 기사에 댓글을 게재했다. 대부분 중국을 치켜세우고 한국을 폄훼하는 내용이다. 이들은 “현대차는 안 되지… 중국 전기차가 최고” “현기차 10년 이내에 망한다에 한 표” “알리 서비스 품질 좋은데 안 좋다고 기사에 뜬 거 이해 안 감” “알리·테무에서 사야 여러분이 살아남을 텐데요 ㅋㅋㅋ”와 같은 댓글을 남겼다.

「 한국 겨냥 영향력 공작 마각 드러나
한국비하, 반미반일, 사회갈등 조장
중 댓글부대 차단할 체계 구축 시급

그뿐 아니라 중국 댓글부대는 한국의 정치·사회·국제 이슈에도 댓글을 달았는데, 한국의 보수 정치권을 비난하거나 사회 갈등과 반미·반일을 부추기는 내용이었다. 가령 “미국의 애완견 한국답다. 동맹이 아니라 노예다, “전쟁광 윤XX 극우로 나가네” “중국·러시아가 그래도 경상도보단 훨씬 낫다”와 같은 댓글이다.

지난해 연말 윤민우 가천대 교수 연구팀도 네이버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인 중국 댓글부대를 확인했다. 이들은 지난해 9~11월에만 최소 3만 개 이상의 댓글을 남겼는데, 역시 중국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한국을 내리깎는 내용이었다. 특히 지역감정(“서울시민 입장에서 전라도나 경상도나 둘 다 한심”)과 남녀갈등(“한국 여자들은 돼지처럼 먹기만 함”)을 조장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국 사회의 뇌관을 의도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윤 교수팀 분석에선 ‘Chen Yang’이란 닉네임이 댓글부대를 이끄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분석 결과가 보도되자 ‘Chen Yang’은 닉네임을 ‘123456789’로 바꿨다고 한다. 이번 김은영 교수팀 연구에서도 이 ‘123456789’가 댓글부대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댓글부대가 군 조직처럼 지휘체계를 갖춰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조사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중국발 ‘드루킹’의 전체 공작 규모는 훨씬 더 방대할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2월 26~28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2중전회)에서 중앙정치국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김 교수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아시아-서태평양에서 서구 세력과 일본을 몰아내고 중화제국 질서를 재현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며 “이런 국가 비전에 따라 한국은 중화문명권에 복속시켜야 할 주요 대상이며, 영향력 공작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분석했다. 섬뜩한 경고다. 김 교수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에 대응하기 위해 댓글부대의 정보를 담은 대용량 데이터베이스와 이들을 식별해 낼 수 있는 프로파일링 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 당국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또 실효성 논란이 있긴 하지만 최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발의한 ‘댓글 국적표기법’도 한번 검토해 볼 만하다. 어쨌든 지금처럼 한국의 사이버 공간을 중국 댓글부대의 놀이터가 되도록 방치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김정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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