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의대 졸업, 병원에서 일하다 데뷔했는데 1집 100만 장 팔린 전설의 가수

신신애는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고려대 부속 혜화병원에서 2년간 간호사로 일했다.

안정적인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1977년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도전해 연예계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 예명은 ‘신금매’. 무명 시절에는 간호사 일을 병행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그러다 1990년, 드라마 ‘똠방각하’에서 사팔뜨기 박복녀 역으로 주목받으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세상은 요지경”

1993년 KBS 드라마 ‘희망’에서 이른바 ‘뽕짝네’ 역할로 출연해 트로트를 부르던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를 눈여겨본 음반 기획자 김수희가 제안해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곡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라는 가사와 막춤을 결합해 당대 1020대 중심의 음악 시장에서 이례적으로 사랑받았다.

‘엽기코드’의 원조 격인 스타일로 가요톱10에서 4위까지 올랐고, 정품 음반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하루 행사 34개씩 뛰며 1천만 원 넘게 벌던 시절도 있었다.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하루에 행사수익으로만 1000~1500만 원까지 벌었다”며 “돈 셀 때 침이 마르면 물을 떠놓고 셌다”고 회상했다.

평생 고생한 어머니를 위해 ‘돈방석’을 준비해 앉혀드렸을 만큼, 가족에게도 아낌없이 베풀었다고.

하지만 화려한 성공 뒤엔 쓴맛도 있었다.

음반은 대박…정산은 ‘0원’

신신애의 1집 앨범은 ‘희 레코드’라는 소속사에서 발매됐다.

당시 이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은 가수 김수희. 그녀의 권유를 데뷔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신신애는 정산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밝혔고, 방송에서도 김수희를 향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계약서에 러닝 개런티 조항이 없었던 탓이다. 신인에게는 계약금만 주는 게 당시 관행이었다고는 하지만, 그에겐 깊은 배신감으로 남았다.

이후에도 ‘돈아 돈아 돈돈’, ‘공짜는 없어’, ‘소설 쓰냐?’ 등 풍자적인 가사를 담은 곡들을 발표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서서히 무대를 떠났다.

가수 활동을 접은 후에도 그는 배우로 꾸준히 활동했다. ‘봄날은 간다’, ‘내 마음의 풍금’, ‘내 사랑 내 곁에’, ‘극한직업’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 이후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연기를 이어갔다.

‘극한직업’에서는 3층 아주머니로 출연해 천만 관객 영화 배우 타이틀도 얻게 됐다.

최근에는 예능 ‘슈가맨 3’에 출연해 “세상은 요지경” 무대를 다시 선보이며 추억을 소환했다.

여전히 노래 한 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쾌함을 안긴 ‘요지경 누님’의 모습은 변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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