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북핵만큼 무섭다…"기후, 한국 가장 큰 위협" 1위 [한국 안보, 국민에 묻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 등 갈수록 빈도가 잦아지는 이상기후가 한국인의 안보 위협 인식까지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기후 변화를 최대 위협으로 보는 인식이 북핵 위협 인식과 사실상 동등해졌다. 중앙일보와 동아시아연구원(EAI, 원장 손열)의 공동 기획 여론조사 결과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기후변화를 더 큰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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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북핵만큼 위협적
7일 여론조사(8월 26~28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 대상 웹조사, 최대허용 표집오차 95% 신뢰 수준에 ±3.1%)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복수응답, 1·2순위 종합)는 질문에 응답자의 51.2%가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라고 답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응답은 51.1%였다. 거의 같은 비율이었다. 미·중 전략 경쟁과 갈등(42.5%), 보호무역 확산 및 첨단기술 경쟁(39.7%)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여론조사(2023년 8월25일~9월13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8명 대상 심층 대면 면접조사)에서는 같은 질문에 가장 많은 56.3%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가장 큰 당면 위협으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55.0%가 보호무역 확산 및 첨단기술 경쟁을 꼽았고,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를 위협으로 답한 응답자는 41.0%였다. 1년 사이 순위가 역전된 것이다.
이는 그간 상대적으로 민감성이 덜 한 것으로 인식돼온 보건, 기후 등 이른바 ‘연성 안보’(soft security) 분야의 위협에 대한 국민 인식이 과거 전통적으로 중시돼 온 군사 등 ‘경성 안보’(hard security) 분야의 위험성에 버금갈 정도로 경각심이 커졌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EAI는 분석했다. 특히 이번 조사가 이뤄진 기간을 고려할 때 전국에 평균 기온이 28℃를 웃도는 역대급 폭염이 이어진 것도 영향을 크게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한국인에게 북핵 위협이 상수가 된 측면이 있다는 뜻일 수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심각하게 보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오래 된 위협’으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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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수록 '미래 위협' 중시
세대별로 위협 인식이 다르게 나타난 점도 주목할 만 하다. 고령층일수록 북핵 문제를, 젊은 연령일 수록 기후 문제를 더 심각하게 여기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미래 위협’에 대한 인식 차이로도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60대에서는 가장 많은 56.3%, 70세 이상에서는 71.6%가 북핵을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기후·환경 문제를 택한 비율은 60대에서는 44.8%, 70대에서는 17.7%에 그쳤다. 반면 30대에서는 가장 많은 52.3%(북핵 위협은 43.6%)가, 40대에서는 58.2%(북핵 위협은 43.9%)가 기후변화를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다.
손열 EAI 원장은 “미래 세대가 새롭게 떠오르는 비전통 안보 이슈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 수치로 드러났다”며 “하지만 여전히 전통 안보 이슈만 중시할 뿐 정치권 등에서 이런 우려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고민해볼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기후·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과 별개로 정책을 통해 이에 대응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인식이 드러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기대감 자체가 적다는 뜻일 수 있어서다.
‘정부의 최우선 외교 지향점(목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가장 많은 34.5%가 “안보와 평화 추구”라고 답했다. “경제적 번영 추구”가 29.3%로 뒤를 이었다. 기후 변화를 가장 큰 위협으로 꼽았으면서도 “기후변화‧환경 대응”을 최우선 외교 지향점으로 꼽은 응답자는 13.5%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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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원하지만 고르라면 美
여기에는 기후변화 문제와 같은 글로벌 이슈는 정부가 독자적 정책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과거에는 미·중이 갈등하는 중에도 기후변화 등 연성 안보 분야는 협력이 가능한 의제로 인식했지만, 갈수록 여지가 작아지는 추세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미·중 전략 경쟁과 갈등을 당면 최대 위협으로 꼽는 응답자(42.5%)가 지난해(36.3%)에 비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미국과 중국 사이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경우,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국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41.6%로 “중국을 지지한다”는 응답(2.9%)보다 14배 이상 높았다. 그러면서도 가장 많은 46.8%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응답했다.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는 가운데 신중한 입장을 택한 응답자가 절반이지만, 선택을 한다면 미국을 택한 쪽이 다수인 셈이다.
실제 응답자의 77.8%는 “한·미 동맹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을 넘어, 지역 및 세계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하는 동맹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했다. 이같은 비율은 지난해(81.8%)보다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압도적이란 분석이다. 특히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응답은 지난해 8.3%에서 올해 25.0%로 약 3배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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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공동 대응' 찬성 과반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는 대만해협을 둘러싼 갈등 상황과 관련한 응답도 눈길을 끈다. “대만 해협에서 긴장 고조 시 미국과 공동 대응하는 데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4.1%로 과반이었다.
다만 구체적인 대응 수위와 관련해선 고민도 드러났다.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경우 한국은 최대 어떤 대응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44.2%가 “인도적 지원”이라고 답했다. 공동 대응은 하되 무력 분쟁에 직접적으로 연루되는 것은 꺼리는 여론이 절반 가까이 되는 셈이다.
동시에 탄약·무기 지원(15.6%), 비전투병 파병(12.2%), 전투병 파병(5.9%) 등 응답이 뒤를 이었는데, 이런 군사적 지원을 지지하는 응답도 총 33.7%로 3분의1을 차지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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