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 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뭐라고 할까[기자수첩-산업IT]
'삼성 위기와 변화' 줄곧 강조해온 故 이건희 리더십 새롭게 조명
초일류 기업 도약 위해 조직 전반에 메스 댈 결단 필요
삼성 위기설이 실제 위기로 현실화되는 듯하다. 삼성전자 내 이익 비중이 가장 큰 반도체가 밀리고 휴대폰도 야심차게 내놓은 폴더블폰이 아직까지 주류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가전은 경쟁사 영업이익과 2배 이상 차이가 벌어진 지 꽤됐다.
8일 발표한 삼성전자 3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9조1000억원. 3개월간 9조원을 벌어들이는 기업은 한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이나 '삼성'이기에 시장의 실망은 컸다. 주가는 5만원대로 내려앉았다. 급기야 전영현 DS(반도체)부문장이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통렬한 반성문까지 내놨다.
전직 장관들은 입을 모아 삼성에 조직 문화 혁신, 본질적 경쟁력 확보 등을 주문하고 있다. 본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미래 대비를 위한 먹거리 발굴 소식은 들리지 않고 세를 불린 노조는 회사를 연일 압박하면서 삼성은 말그대로 '사면초가'에 놓여있다. 이제 국민들은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삼성을 보고 있다.
사실 '삼성 위기'라는 말은 최근 들어 오르내린 말이 아니다. 이미 수십 년전부터 지속돼온 말이다. 다만 과거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출발했기에 오늘날 삼성과 많이 다르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위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1993년 푸랑크푸르트 선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2022년 전자계열자 사장단 회의에서 "5년에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 2012년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위대한 내일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 모두 삼성의 위기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한창 잘나가던 삼성을 두고 위기를 논하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이건희 시대의 삼성은 '위기'를 진단하면서 '변화'를 현실에 옮긴 점이 달랐다. 삼성의 핵심부터 강력한 쇄신과 혁신을 요구했으니 변화의 크기와 속도는 어떠했겠는가. 실제 1995년 삼성은 막대한 손실을 각오하고 구미사업장에서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불구덩이에 던진다. '최고의 품질'로 무장하지 않으면 휴대폰 뿐 아니라 TV, 생활가전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은 애니콜, 갤럭시, AI폰이라는 세대 교체 속에서도 출하량 1위 타이틀로 이어졌다.
제품의 질적 향상과 혁신 주문은 주력 사업인 반도체에서도 결실을 맺었다. 신경영 선언 다음 해인 1994년 삼성은 업계 최초로 256Mb D램 개발에 성공한다. 2년 위인 1Gb D램을 개발한 뒤 1998년에는 128Mb 플래시 메모리 수출을 시작한다. 2003년에는 플래시 메모리 시장 점유율 최고 수준을 달성하며 반도체 하면 삼성이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당시 50대였던 이건희 회장의 끈질긴 위기의식과 직원들의 심기일전이 삼성의 비약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거의 삼성은 성장에 배고파하며 도전과 혁신 자체를 즐겼었고 1등 기업이라는 타이틀은 그 '덤'이었다. 수백만명의 근로자들이 국내외에서 삼성 이름을 달고 일하며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것도 이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어떤가. 내부 뿐만이 아니라 외부마저도 삼성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였지만 변화의 바람은 불지 않는다. 무사안일주의, 튀지 말자는 문화가 조직 내 암처럼 번졌고 그러다 보니 어떻게 1등 기업에 오르게 됐는지 조차 잊어버렸다. 경영진 머릿 속에는 '야성' 보다는 '관리'가, 직원들은 '성과' 보다는 '보상'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내부 단합에 균열이 생겼다. 이러다가는 '초격차' '초일류' 타이틀을 반납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국내 1등 기업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끌어올린 이건희 선대회장이 이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30년 전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로의 '리셋'이 필요하다.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고 말했던 신경영 선언처럼 초심을 회복하기 위한 단호한 결단이 요구된다. 선장이 배의 항해를 책임진다면 선원들은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얘기다. 선장과 선원이 갑론을박만 펼치다가는 순식간에 몰락한 한 때 1등 노키아, 모토로라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 임직원 모두 영원한 1등은 없다는 절박함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선장인 이재용 회장도 키를 다잡아야 한다. 등기임원 복귀가 빨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사법리스크를 안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삼성의 위기를 정확히 진단하고 메스를 대기 위해서는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1등 DNA를 전 사업부 뿐 아니라 타 계열사로 전이시키고 반도체에 편중된 이익 구조를 개선하며 새 먹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등 과제가 적지 않다. 10년, 20년을 내다봐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인 동시에 한국 경제를 또 한 번 일으킬만한 중차대한 일이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삼성은 제2의 신경영선언을 할 기회조차 잃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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