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Golden)’으로 글로벌 차트를 달군 작곡가 겸 가수 이재(김은재·34)가 최근 서울 용산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뜻밖의 인물을 언급했다. 이재는 “할아버지께 끼를 물려받았다. 할아버지는 연기도, 노래도 결국 몰입이 중요하다고 하셨다”며 “어릴 때부터 노래도 연기니까 가사에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제가 열심히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할아버지가 정말 열심히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가 언급한 할아버지는 바로 원로배우 신영균. 서울대를 나와 잘나가던 의사를 그만두고 배우로 입문한 그에 대해 여러분이 궁금해할 사실 몇 가지를 소개한다.
서울대 출신 치과의사에서 배우로


1928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신영균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올라와 성장했다. 교회 성극에 단역으로 참여하면서 연극의 매력에 빠졌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청춘극장 무대에서 주연을 맡을 정도로 연기에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그는 배우의 꿈을 접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진학했다.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 개원한 치과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나 진료실을 찾은 연극 동료들이 “무대에 서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건네자, 그의 마음은 다시 흔들렸다. 결국 30대 초반이던 그는 아내의 만류를 뒤로하고 배우로 복귀했다. 32세, 다소 늦은 나이에 영화 <과부>로 데뷔한 그는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충무로의 중심 배우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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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편의 필모,
청룡 남우주연상 3회 수상

1960~70년대는 그야말로 신영균의 시대였다. 영화 <빨간 마후라>의 카리스마 넘치는 공군 조종사, <연산군>과 <대원군>의 강렬한 인물, <미워도 다시한번> 시리즈의 비극적 남성상까지. 선이 굵고 지적인 이미지로 당대의 ‘국민 배우’로 자리 잡았다. 그는 약 300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하며,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세 차례나 수상했다.

사생활에 있어서는 드물게 스캔들이 없던 배우로도 유명했다. 연기자로 전향할 당시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줬다는 일화는 여전히 회자된다. 늦게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기에 몰입했던 그의 태도는 훗날 손녀 이재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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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서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1970년대 말, 신영균은 연예계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사업가로 변신했다. 1977년 명동의 명보극장을 인수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키웠고, 1991년에는 한국맥도날드 법인인 ‘신맥’을 설립해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한때 그의 개인 재산은 현금 자산만 500억 원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정치권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시작으로 예총 회장 등을 역임한 이후 한나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두 차례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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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는 것보다 나누는 게 더 중요

신영균의 행보는 사회 환원으로도 이어졌다. 2010년 그는 명보극장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을 통째로 영화계에 기증했고, 서울대에도 발전기금으로 100억 원 상당의 토지를 내놓았다. 2023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부지로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4천 평 부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는 “버는 것보다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며 “배우로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국민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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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 논란

한편 최근에는 이름값만큼의 논란도 있었다. 딸이 운영하는 식당 이름이 도로 표지판에 과도하게 표기돼 도로교통법 위반 논란이 일었고, 이승만 기념관 부지 기증 역시 그린벨트 지역이라는 이유로 찬반 여론이 갈렸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