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월 4000만원 상납…"싸가지 있는 놈" 룸살롱 황제 정체

박진석 2024. 9.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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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더중플 -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 검찰청 문턱을 넘나드는 사건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그 중 검찰과 언론이 간택해 생명력을 부여하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조차 수명이 길진 않습니다. 애초에 관심을 받은 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들, 이렇게 묻히고 잊혀도 괜찮은 걸까요. 더중앙플러스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09)에서는 잊히고 묻힌 사건의 이면을 다룹니다. 정치인이 돼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검사들의 옛 모습이 궁금하거나, 그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건의 이면을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여정에 동참하길 권해드립니다.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시리즈의 일부 회차를 전문 무료로 공개합니다.


<룸살롱 황제와 비리 경찰①>

밤의 태양이 낮의 태양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하던 야광은 하늘의 광원을 게걸스레 빨아먹더니 점점 광량을 키워나갔다. 서울은 불야성(不夜城)으로 탈바꿈했다.

인공의 빛이 어둠을 몰아낸 신사역 네거리. 휘황찬란한 ‘로데오 유흥주점’ 간판 아래에 한 사내가 있었다. 172㎝의 중키에 갓 중년이 된 듯 보이던 그는 문밖을 뚫어지라 주시하고 있었다.

서행하며 갓길에 자리 잡는 검은색 렉스턴을 본 순간 그의 눈이 커졌다. 그는 우회 않고 곧장 그 SUV로 달려갔다.


‘똑똑.’
유리창이 내려왔다.

“이경백?”
“네. 맞습니다.”
“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운전대 앞에, 또 다른 한 명은 뒷좌석에 나른하게 몸을 파묻고 있었다. 거만했다.

“전화주신 이성철 형사님이시죠? 아이고 여기까지 행차하시게 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뒷분은?”
“박경수야.”

보일 듯 말 듯 까딱거리는 머리에 대고 이경백은 또 한 번 몸을 굽혔다. 대화는 이성철이 주도했다.

" 장사 잘되냐? 우리 회사 직원들이 너 싸가지 있다고 하더라. 잘한다고 하더라. "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해라.”
“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물장사로 보낸 반생. 그에게는 여러 개의 가면이 있었다. 이날 꺼내 쓴 건 굴복의 가면이었다.

“사실 인터넷 광고 때문에 왔어. 광고를 너무 선정적으로 심하게 한다고 첩보가 내려왔거든. 작작 좀 하지 그랬어?”
“아 그렇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성철이 씩 웃으며 몸을 뒤로 기울였다.
“어떻게 할까요?”

박경수는 웃기만 할 뿐이었다. 이성철이 입을 열었다.

" 1000만원만 준비해라. "
시세의 두 배. 좀 많았다.

그러나 뭐 상관없다. 첫인사 값이라 생각하면 그만.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 형님들. 아,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어디 일 보실 데 없으세요? 볼일 보고 오시면 제가 준비해서 전화드리겠습니다. "
인근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경백의 전화를 받은 두 경찰관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이경백이 쇼핑백을 들고 차에 탔다.

" 형님들 나눠쓰세요. 고맙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앞으로 다달이 찾아뵙겠습니다! "


선진 조국 초입에 ‘룸살롱 황제’가 탄생했다


새천년, 대한민국은 주지육림이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중국 특수에 몸 실어 선진 조국의 초입에 접어든 그 나라에는 돈이 넘치고 있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 눈먼 돈이 무작위로 내리꽂혔다.

눈치 빠른 이들이 약간의 사업 재능과 로비 능력을 발휘해 그걸 받아먹었다. 접대 수요는 폭증했다. 룸살롱으로 대표되는 유흥업소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중 도드라진 이가 이경백이었다.

그는 ‘삐끼’(호객꾼)로 시작했다. 밑바닥에서 10여 년을 보내며 그 바닥 생리를 배우고 익혔다. 그렇게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유흥업소를 하나둘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

2010년께 그는 ‘로데오’를 비롯해 서울 강남과 북창동, 경기도 부천 일대에 20개에 가까운 업소를 운영하며 연간 1000억여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룸살롱 황제’가 돼 있었다.

그는 비상했다. 그 바닥에서는 ‘퍼스트 무버’였다. 첫 작품은 2000년대 초 도입한 ‘양주 1병에 맥주 무제한 공짜’ 기법. 이문은 박했지만, 많이 팔면 그만이었다. 술값에 부담을 느끼던 주당들이 그의 가게에 몰려들었다.

손님만 볼 수 있는 특수 유리를 설치해 손님이 유리 너머의 여종업원을 고르도록 하는 ‘매직미러’, 초저녁에 오면 값을 깎아주는 ‘조조할인’ 등 혁신이 이어졌다. 절정은 당시 기준으로 30여만원에 술자리와 성매매가 모두 가능한 ‘풀살롱’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그의 혁신 경영기법은 ‘경백이법’으로 불렸고, 업소 대부분이 앞다퉈 베꼈다. 먹물 좀 먹은 이는 그에게 ‘유흥업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그리고 경찰을 잘 다뤘다. 경찰은 칼과 같다. 칼날을 잡는 이는 죽는다. 이경백은 훗날 검찰에서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 검사님 생각해보십시오. 내 업소들은 모두 박리다매 형태로 운영합니다. 경찰 단속을 맞으면 당장 그날 영업 손실이 나죠. 영업정지 같은 행정처분까지 맞게 되면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만약 지구대에서 출동해 업소를 휘젓기 시작하면 있던 손님들도 나가 버립니다. 아가씨들도 출근을 안 해 버리죠. 신고를 무마하거나 단속 정보를 미리 알아낼 수 없다면 이런 장사 못 합니다." "

심야 불법 영업을 하던 서초동의 유흥주점 (이 사진은 참고용으로 기사와 무관합니다). 연합뉴스


고객은 단속을 싫어한다. 성매매방지법 위반 혐의로 적발되는 극단적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유흥을 즐기다가 도망치듯 뒷문으로 달려나가는 걸 좋아하는 이는 없다. ‘귀한 손님’을 모신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다시는 그 업소를 찾지 않는다. 유흥업소 입장에선 망하는 지름길이다.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유흥업소 몇 개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칼손잡이를 잡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걸 내 칼처럼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단속 정보를 미리 빼내는 건 기본이고, 단속 자체를 무마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그 칼을 경쟁업체에 휘두를 수도 있었다.

이경백은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그는 룸살롱 황제일 뿐 아니라 ‘관처리’의 황제였다. 업소들은 경찰 등 공공기관에 대한 로비를 ‘관처리’ 또는 ‘관작업’이라고 불렸다. 관처리는 대상의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두루 기름칠을 해둬야 했다.


유흥업소서 매달 4000만원씩 받은 지구대 경찰관들

“형님 오셨어요? 이달 치 여기 있어요.”
장년의 사내가 멋쩍은 듯 쇼핑백을 집어 들었다. 그의 양어깨에는 몇 개의 무궁화 배지가 붙어 있었다.

“고맙네! 이 사장. 잘 쓸게.”
그는 총무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논현지구대 순찰4팀 수금 총무. 물론 공식 직함은 아니다.

그 지구대 소속의 하급 경찰관들은 두 군데서 월급을 받았다. 하나는 나라였고, 하나는 이경백이었다. 이경백은 인근의 30여 개 유흥업소와 함께 돈을 모아 매달 지구대 경찰관들에게 제2의 월급을 줬다. 이 비공식 월급은 ‘월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논현지구대에는 네 개의 외근 순찰팀이 있었고, 팀마다 14~18명의 경찰관이 소속돼 있었다. 월정을 수령하는 게 한 팀당 한 명씩 있는 수금 총무의 역할이었다.

한 팀당 1000만원씩, 매달 4000만원이 논현지구대로 넘어갔다. 수금 총무는 그 돈을 팀별 경조사비나 식비 등으로 사용했고, 남은 돈은 매달 50만~100만원씩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이 공식 수금 루트는 이놈 저놈 아무나 손 벌릴 수 없도록 업소와 지구대 간에 체결한 일종의 신사협정이었다. 물론 거기에도 질서의 파괴자는 있었다.

“여기 사장 누구야?”
소란을 감지한 이경백이 밖으로 나왔다.

“전데요, 누구신지요?”
정복을 입은 늙수그레한 경찰관이 웨이터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는 이경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나 김형철이야. 나 몰라? 내가 논현지구대에 근무한 지 꽤 됐는데, 내 이름을 못 들어봤나 보지? 내가 깐깐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을 텐데. "
‘이건 뭐지?’

산전수전 다 겪은 이경백도 순간 당황했다. 한참을 윽박지르며 압박하던 김형철은 어느 순간부터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 내 자식 나이가 거의 서른인데,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어. 앞으로 이 사장이 잘하면 서로 좋은 거 아니겠어? "
“네 그렇죠. 알겠습니다. 일단 연락처를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를 달래 일단 돌려보낸 이경백은 논현지구대의 한 수금 총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김형철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이 사람 뭐예요?”

" 아이고 그 양반이…매달 월정을 받으면서 독고다이 슈킹까지 하려나 보네. 엄청 빡빡한 사람이야. 말이 안 통하니 네가 이해를 좀 해줘라. "
‘독고다이 슈킹’은 총무를 통하는 공식 루트 이외에 별도로 돈을 받아가는 행위를 부르는 경찰 은어다. 별수 없었다. 매달 100만원씩을 별도로 줬다.

“동생, 3개월 치 미리 좀 주면 안 되나?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

김형철은 얼굴이 두꺼웠다. 맡겨둔 돈인 양 가불까지 했다.

이경백은 300만원을 내줬다. 그러고는 그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자 그달 치 월정은 주지 않는 것으로 소심하게 복수했다.

이경백이 자선사업가일 리는 없었다. 업소들에 대한 단속 정보를 제공해주고, 단속될 경우 사건을 무마해달라는 청탁이 돈과 함께 따라갔다. 경찰관들은 불법 영업 신고가 접수되면 돈을 낸 업소의 업주들에게 미리 단속 정보를 알려줘 대비할 수 있도록 했고, 어쩔 수 없이 단속에 나서더라도 짧게 형식적으로만 단속하면서 불법 영업 자체를 묵인해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경기도 경찰관들이 지자체와 합동으로 유흥시설 단속을 벌이고 있다.(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중앙포토


물론 ‘룸살롱 황제’라는 칭호를 이런 ‘짠내’나는 소시민적 로비만으로 획득한 건 아니었다. 이경백의 시선은 서서히 위로 향하고 있었다. (계속)

■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 룸살롱 황제와 비리 경찰편 목차

「 ① “경찰에 월 4000만원 상납” 2012년 룸살롱 황제의 고백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984

② “경찰 간부들은 계륵이야” 뇌물 풀세트 다섯 곳은 여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9726

③ 조현오가 키운 ‘조국 오른팔’? 황운하 ‘룸살롱 황제’ 처넣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920

④ 경찰 1명이 50억 받아갔다 룸살롱 상납받은 ‘꿀보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4531

■ 비하인드: 서초동 그날 -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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