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취업 성공한 날, 아이 아프다는 전화… 저 출근할까요” [일함, 돌봄①]
부모들 “아픈 아이도 돌봐주는 곳 있었으면”
“오늘도 잘 버텼다” 워킹맘 이모(36·여)씨가 귀가해 아이 잠옷을 갈아입힐 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다독이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일하는 부모들이 가장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아이가 아플 때다. 출산·육아휴직을 마치고 지난해 회사에 복직한 이씨도 그랬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쉬는 날 없이 아팠다. 병명도 다양했다. 아이가 눈병에 이어 지난달 수족구병에 걸렸을 때가 최대 위기였다. 법정 감염병이라 꼬박 일주일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다. 하루 이틀 만에 낫는 병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땐 아픈 아이를 돌봐줄 곳이 절실했다. 연차휴가 사용이 어려운 이씨 남편은 아이를 하루 돌보기도 힘들었다. 이씨가 대신 연차휴가를 쓰고 집에서 아픈 아이를 돌봤다. 틈틈이 노트북을 켜고 쌓인 업무를 처리했다.
“남편이 미안하다는 거예요. 아이가 아픈데 저만 고생한다고요. 제가 회사에 찍히는 사람은 둘 중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어요. 한 명이라도 제대로 회사에 다녀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그 순간 이 상황에 화가 났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가 아프면 일하는 부모들이 먹는 눈칫밥 그릇 수가 늘어난다. 이씨는 재택근무·단축근무 등을 조건으로 육아휴직 후 조기 복귀했다. 하지만 아이가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돌아온 건 상사의 한숨이었다. 이씨는 “눈병은 안 옮는데 왜 어린이집에 안 보내느냐는 식으로 말하더라”라며 “일은 무조건 회사에서 하라고 할 땐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봄지원사업 중 ‘질병감염 아동 지원 서비스’는 당일 지원이 어렵고 이용자가 많아 사실상 무용지물이란 평가다.
많은 직장인 부모들은 연차휴가를 ‘반차(4시간 단위 휴가)’ ‘반반차(2시간 단위 휴가)’로 쪼개고 또 쪼개 사용한다. 맞벌이 부부에게 연차휴가는 아이가 아플 때를 대비한 총알이다. 총알마저 없으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퇴근해서 아픈 아이에게 돌아갈 때까지 애써 현실을 외면할 때도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은 특히 답이 없다. 출산 후 2년 만에 재취업에 성공한 김모(36·여)씨는 합격 통보를 받은 날, 전화 한 통으로 고민에 빠졌다. 갑자기 아이가 열이 펄펄 나고 토를 한다는 유치원의 다급한 전화였다. 김씨는 “집에서도 내심 출근을 원치 않는 분위기여서 (합격 통보한) 회사에 못 간다고 얘기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어린이집·유치원에 등원하지 못하는 감염병에 걸려도 이를 숨기고 약만 먹여 아이를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픈 아이에 대한 돌봄 걱정은 퇴사로 마침표를 찍는다. 지난해 4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공개한 ‘코로나19 이후 돌봄정책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녀 돌봄 문제로 여성 10명 중 6명(63.2%)이 일을 그만두고 자녀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후 자녀 돌봄 문제로 퇴사하거나 폐업한 여성은 20.5%로 남성(7.1%)에 비해 3배가량 많았다.
돌봄을 위해 경력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박모(38·여)씨는 최근 아이가 아파 이마저도 내려놨다. 박씨는 “아픈 아이를 부모 대신 돌봐줄 곳도 없으니 어떡하나”라며 “애가 아픈데 일이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라고 말했다. 출산·육아휴직 5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간 정모(38·여)씨는 1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코로나19 초기 당시 감염 우려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아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이해한다고 했지만 연차를 계속 쓰는 것이 눈치 보이고, 업무를 함께하는 다른 직원에게 미안했어요.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을 때마다 어린이집을 못 갔어요. 돌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사했지만 자진퇴사로 실업급여도 못 받았고 경력도 끊겼죠. 아픈 아이를 돌봐 주는 곳이 있었다면 퇴사까진 안 했을 거예요.”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기 힘든 환경은 출산율 저하에도 영향을 미친다. 16일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들이 자녀계획을 세울 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경제적 부담(66.3%)에 이어 육아할 수 없는 환경(28.1%)를 꼽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 성모(40·여)씨는 “이미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애는 낳으라면서 아이는 키우기 힘든 환경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고의 저출산 대책 중 하나란 얘기다.
“아이들이 연달아 장염에 걸려 2주 넘게 집에 있을 때, 남편과 번갈아 휴가를 냈어요. 그걸로도 부족해 먼 거리에 사는 부모님은 물론, 미혼인 동생들까지 휴가를 써가며 아픈 아이를 돌봤고요. 회사 직원들에게 부탁하고 수시로 집과 회사로 오갔던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미혼 또는 자녀가 없는 기혼 지인들이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어요. 그들은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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