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 황대식의 월권, 실제 전두환은 더 심각했다

김종성 2026. 9. 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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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26 사태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아래 <메이드 인 코리아2>)는 전두환을 연상시키는 황대식(허정도 분) 국군보안사령관의 오만무도한 월권을 묘사한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인 그는 대통령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일을 마구 벌인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은 같은 해 5월 26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두고 "특히 심하게 과장된 것이 차관회의를 주재했다(는 대목), 그것은 100% 픽션이에요"라고 주장했다.

기밀 해제된 주한미국대사 보고서를 다룬 2019년 10월 27일 자 MBC <뉴스데스크> '10·26 미(美) 비밀전문 공개 전두환이 중정 장악'에 따르면,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국대사는 "한국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의 활동을 장악했고 그곳에 요원들을 배치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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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디즈니플러스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김종성 기자]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예고편 갈무리
ⓒ 디즈니플러스
1979년 10·26 사태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아래 <메이드 인 코리아2>)는 전두환을 연상시키는 황대식(허정도 분) 국군보안사령관의 오만무도한 월권을 묘사한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인 그는 대통령 살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일을 마구 벌인다. 황당하게도 그는 차관회의를 소집해 주재한다.

황대식은 행정부 고위 관료들뿐 아니라 군부 최고위직인 육군참모총장에게도 안하무인으로 대한다. 지난 16일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메이드 인 코리아2> 4회는 참모총장 장무진(차순배 분)이 주재하는 회의장의 빈자리 하나를 보여준다. 그 빈자리를 그대로 둔 채 참모총장이 발언을 시작한다.

바로 그때 출입문을 확 열고 웃음을 터트리며 입장한 것이 황대식이다. 황대식은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그 빈자리를 향해 걸어간다. 이때, 총장이 훈시 중인데도 몇몇 군인이 일어나 황대식에게 거수경례를 한다.

참모총장은 그 장면을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보며 황대식의 월권을 지적한다. "내가 자네한테 차관회의까지 주재하라고 말했던가?"라고 질책한다. 결국 참모총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자네, 뭐야!"라고 고함친다. 그러자 황대식은 참모총장을 빤히 쳐다보다가 "황대식입니다"라며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한다. 동문서답 아닌 동문서답에 참모총장은 어이없어 한다.

"100% 픽션이에요"... 하지만 실제로 있었다

전두환이 차관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은 200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도 등장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은 같은 해 5월 26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두고 "특히 심하게 과장된 것이 차관회의를 주재했다(는 대목), 그것은 100% 픽션이에요"라고 주장했다.

1980년 7월 29일에 국무총리훈령 제157호인 '군인에 대한 의전예우 기준지침'이 마련되기 이전에, 국군보안사령관인 육군 소장은 행정부 2급 공무원에 상당했다. 이것이 훈령 제157호로 인해 준차관급으로 바뀌었다. 10·26 당시에는 육군 소장과 차관급의 격차가 더 컸기 때문에, 아무리 막강한 보안사령관일지라도 차관들을 임의로 소집하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위 드라마 장면이 허구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전두환이 일반 행정기관의 차관들을 소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관급에 해당하는 당국자들을 불러들인 일은 있었다.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의 회고록인 < 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 >는 박정희가 죽은 직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27일 오전 합동수사본부는 정보부 차장, 검찰총장, 치안본부장 등 수사기관의 장들을 불러 첫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전두환 장군은 상좌에 앉았다. 그는 국내의 모든 수사기관을 지휘할 수 있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의 자격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간밤에 각하께서 서거하셨읍니다. 범인은 중앙정보부입니다.'"

전두환은 합동수사본부장에 갓 임명된 27일 오전에 상급자들인 중앙정보부 차장, 검찰총장, 치안본부장을 불렀다. 그러고는 자신이 상석에 앉았다. 이 장면이 자연스럽지 않기에 전직 계엄사령관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두환의 부하들은 보안사 입구에서 중앙정보부 차장 등에 대해 몸수색까지 했다. 일반 행정기관 차관들보다 막강한 검찰총장 등을 불러들여 이렇게 했으니, 차관회의 소집이라는 설정이 허구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청와대 9억 원' 처리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2 예고편 갈무리
ⓒ 디즈니플러스
전두환의 월권은 각 기관 고위직들을 불러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부하들이 다른 기관에 찾아가게 만드는 방식으로도 월권을 범했다.

기밀 해제된 주한미국대사 보고서를 다룬 2019년 10월 27일 자 MBC <뉴스데스크> '10·26 미(美) 비밀전문 공개 … 전두환이 중정 장악'에 따르면,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국대사는 "한국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의 활동을 장악했고 그곳에 요원들을 배치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비롯한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혐의점을 규명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경쟁 기관인 중앙정보부를 장악하고자 그곳에 보안사 요원들을 위한 자리까지 만들었다. 이런 일이 10·26사태 다음날에 벌어졌다. 그의 월권이 얼마나 빨리 시작됐는지 알 수 있다.

전두환 정권이 비공개로 편찬한 <제5공화국 전사(前史)>를 다룬 2018년 12월 5일자 <경향신문> '5공 전사(4)'는 전두환이 합수부 내에 실무대책협의회를 설치했다면서 "이 대책협의회의 실무 구성 요원들은 합수의 정보국장, 중정 기획국장, 치안본부 3부장, 검찰국장, 경제기획원 기획국장, 문공부 공보국장, 문교부 학술진흥국장 등이었다"고 기술한다.

수사기관인 합수부 대책협의회에 경제기획원·문공부·문교부 국장 등이 배치됐다. 문교부에서는 다른 국장도 아니고 학술진흥국장이 파견됐다. 이런 국장들은 합수부 내에서 경기회복 대책이나 운동권 진압 문제, 정치인 복권 문제 등을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했다. 대통령이 비서관들에게 지시할 만한 일들을 전두환이 중앙부서 국장들에게 지시했던 것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에 묘사된 황대식의 월권은 여기에 비견될 만한 것이 아니다. 드라마보다 실제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전두환이 아무런 개념 없이 월권을 행사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청와대 9억 원'의 처리 방식이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위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합수본부에서 어느날 '김계원 비서실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을 수사하다가 아무 데도 기록되지 않은 돈이 9억 원이 나왔읍니다. 그냥 압수하여 가져오려다가 박 대통령이 가족을 위해 남겨놓은 재산이 없는 것 같아 그 가족이 앞으로 생계가 어려울 것이 염려되므로 그 돈 9억 원 가운데 6억 원은 박근혜 양에게 주고 1억 원은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비로 쓰도록 빼놓고 2억 원은 여기 가져왔읍니다'라고 보고해왔다."

국가데이터처의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올해 8월의 물가지수를 1.000으로 놓았을 때 1979년 11월의 물가지수는 0.143이다. 이를 단순 비교하면 현재의 물가는 당시보다 약 6.99배 높다는 의미다. 물가 변동만을 고려해 환산하면, 전두환이 청와대에서 발견한 9억 원은 현재 기준으로 약 63억 원에 해당하는 규모로 추산된다.

그런 돈을 청와대에 그냥 두거나 압수 목록에 넣지 않고 여기저기 선심을 썼다. 6억 원은 박정희 딸에게 주고, 1억 원은 보안사에 남겨두고, 2억 원은 계엄사령관에게 보냈다. 그가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고 아무 데나 손을 내밀었다는 점이 이런 데서도 드러난다.

10·26사태 이후에 가장 주목 받아야 할 대상은 죽은 박정희와 죽인 김재규였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전두환이 주목을 끌었다. 그것은 그가 수사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부여되지 않은 엉뚱한 업무에까지 월권적으로 개입한 것이 그의 존재를 부각시킨 한 가지 요인이다.

10·26사태는 한국이 어떤 형태로든 민주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았다. 군부정치가 종식되든 안 되든 박정희 때와는 다른 시대가 전개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 때문에 '1980년 봄'이라는 낙관적인 정국도 조성됐다.

그러나 10·26 이후에 찾아온 첫 번째 봄은 조금도 따뜻하지 않았다. 역사는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10·26과 함께 월권을 마구 행사한 전두환이 역사 전개의 키를 쥐고 있었던 데 따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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