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청춘' 불패, 이번에도 통할까? 감성 자극하는 '썸머 블루 아워'
[김성호 평론가]
대만 감성영화는 마치 홍콩 무협영화나 액션영화가 그러하듯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그것도 한국에서 대만 감성영화는 분명하고 확실한 영지를 가졌다. 나름대로 역사가 있는 일이다. 영화계에선 그 시작을 2007년 작 <말할 수 없는 비밀>부터라 보고 있다. 주걸륜이 직접 연출하고 출연까지 한 이 영화는 한국에서만 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무려 두 차례나 재개봉했을 만큼 꾸준한 관심을 받았다. 규모를 생각하면 이례적 성공이었다.
예상치 못한 성공에 가까웠다. 지난 시대 홍콩영화가 한국에서 흥행했을 적, 홍콩영화는 자타공인 세계적 수준이라 할 만한 영역을 굳건히 구축하고 있었다. 반면 대만영화는?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에드워드 양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는 감독이 드물게 배출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이례적 작가에 불과했다. 흥행성을 갖고 영화산업을 지탱할 감독은 없다시피 한 게 현실이었다. 대만인들조차 대만영화를 보지 않는단 푸념이 곳곳에서 나오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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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썸머 블루 아워 스틸컷 |
| ⓒ 누리픽쳐스 |
대만영화의 뜨거운 인기는 리메이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청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모두 한국에서 리메이크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연달아 개봉한 게 그렇다. 관객수 급감으로 영화산업이 위축되고 쓸 만한 시나리오도 돌지 않는 형편을 고려해야겠으나, 대만 감성영화가 한국에서 통하리란 기대와 평가가 작용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썸머 블루 아워>는 또 한 편 흥행을 기대하는 대만산 감성영화다. 대만 감성영화의 공식이라 해도 좋을 특징들을 이 영화 또한 그대로 갖췄다. 주인공이라 할 세 남녀의 고교 학창시절부터 20대 청춘에 이르기까지가 영화의 배경이란 점, 풋풋한 사랑과 연애, 엇갈리는 관계와 이별의 아픔, 순수한 마음으로 역경에 맞서는 모습이 등장한단 점까지가 하나하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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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썸머 블루 아워 스틸컷 |
| ⓒ 누리픽쳐스 |
이런 류의 영화가 흔히 그러하듯 <썸머 블루 아워>는 매력적인 남자가 평범한 여자에게 진지한 관심을 보내고, 둘은 나름대로 관계를 형성하지만, 서로가 어찌할 수 없는 역경 탓으로 마음고생을 한다는 줄거리를 밟는다. 여기선 살 가능성이 얼마 없는 질병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병을 감춘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헤어지자는 옌리야오와 그런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 쑤밍이, 그로부터 수 년 간이나 그녀 곁을 지키는 옌리야오의 친구 청옌(임자굉 분)의 삼각관계 아닌 삼각관계가 <썸머 블루 아워>의 얼개를 이룬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오르내리며 영화는 풋풋한 십대와 이제는 뭘 좀 알지만 그 청춘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한 20대 청춘시절을 애틋하게 그린다. 서로를 진지하게 애정하는 순수한 관계가 그대로 대만 감성영화의 승부수임을 확인케 한다.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남자와 그 배려 때문에 이별의 이유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여자, 또 친구의 마음을 알기에 제 마음을 감추는 남자의 이야기가 지지고 볶는 10년 세월의 엇갈림을 낳는다. 만약 십 수 년 전 한국에서 제작됐다면 신파적이고 촌스럽다고만 여겨졌을 감성을 대만 감성영화로부터 낯설게 접한단 게 새롭다. 순수는 그만큼 우리에게 낯설고 먼 것이 되어버렸는가를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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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썸머 블루 아워 스틸컷 |
| ⓒ 누리픽쳐스 |
이를테면 영화가 수차례에 걸쳐 주요하게 내보이는 기찻길 촬영신을 떠올려본다. 쑤밍이와 옌리야오는 기찻길 양편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다 이별한다. 쑤밍이가 돌아서 옌리야오를 바라보고, 그에게 무어라 외칠 때쯤 둘 사이에 기차가 들어온다. 기차가 지나간 뒤엔 옌리야오는 자리에 없다. 이 장면과 저 유명한 애니메이션 < 초속 5cm > 속 명장면이 얼마나 닮았는지, 그 유사한 편집 이전에도 풍경을 보자마자 떠오를 정도다. 등교하다 교사에게 복장을 지적받는다거나, 비 오는 날 우산을 빌려준다거나, 양호실 옆 침대에 우연히 눕게 된다거나, 실은 죽을 병을 앓고 있었다는 등의 숱한 설정이야 말해 무엇할까. 하나하나가 <썸머 블루 아워>만의 독자적 특징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썸머 블루 아워>는 오늘 한국에서 여전히 대만 감성영화가 가진 경쟁력 또한 돌아보게 한다. 한국 멜로며 청춘영화가 차마 택할 수 없는, 한국에선 이미 실종된 지 오래처럼 보이는 순수함들을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영화라면 '에이 요즘 저런 사람이 어딨어'라고 할 밖에 없는 풋풋한 대사며 행동들은 대만영화 가운데선 아무렇지 않게 등장한다. 재고 따지며 비교하고 평가하는 대신 서로를 위해 더 나은 것을 고민하는 마음들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내보일 수 있단 게 새삼스럽다. 대만 감성영화에 대하여 어느 일방이 희생하는 모습이 지나치다거나 또 어리석게 보인다는 비판이 나오곤 한다는 점을 뒤집어보면, 그 사랑과 연애의 방식이 한국에선 이미 너무 희귀해졌단 걸 깨달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희귀함을 찾으려는 욕구가 대만영화의 잇따른 성공의 이유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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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썸머 블루 아워 포스터 |
| ⓒ 누리픽쳐스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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