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사건 ‘과부하’… 피해자가 직접 증거 수집도
수사관 1인당 사건 50건 이상 맡아
법왜곡죄 시행 고소·고발 부담까지
피해자는 수사 지연·불송치에 ‘분통’

지난해 2월 서울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A씨는 고소 뒤 가해자의 검찰 송치 결정을 받기까지 13개월을 꼬박 기다려야 했다. 그는 직접 수집한 증거 자료를 경찰에 제출해 가까스로 가해자를 송치할 수 있었다.
경찰의 민생 범죄 수사가 지체되면서 피해자들이 직접 증거를 찾아다니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고(故) 김창민 감독 폭행 사건에서도 유족들은 직접 CCTV 영상을 확보하고 목격자 진술까지 받았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수사 초기 피의자 1명만 입건한 뒤 불구속 송치했는데,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와 유족 항의가 이뤄진 뒤 추가 조사를 거쳐 1명을 추가로 송치했다.
이 같은 혼선의 배경에는 한정된 인력과 역량으로 과도한 사건을 떠안아야 하는 경찰 수사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일선 경찰관은 3일 “바쁜 경찰서는 1인당 50건 넘는 사건을 맡고 있다”며 “수사관들이 버티지 못하고 다른 부서로 가거나 지구대·파출소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수사관 한 명이 맡아야 하는 사건이 수십건인 상황이어서 중요 사건을 놓치는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고소·고발인이나 피해자로서는 경찰의 수사 의지 부족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는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일선 경찰 인력까지 차출하니 민생 수사는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근 관심도 높은 사건을 수사하는 태스크포스(TF)가 잇따라 생기면서 민생 수사 속도는 더 느려지는 것 같다는 불만도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와 불친절하게 작성된 불송치 결정서를 받아든 피해자들은 좌절한다. 경기도 안산에서는 지난해 12월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점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한 19세 여성이 억울함을 토로하며 지난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의 무혐의 결정 사흘 만이었다. ‘청소년 아르바이트생 성폭력 부실 수사로 인한 사망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당시 경찰이 가해자가 임의 편집한 CCTV 영상과 ‘합의에 따른 성관계였다’는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피해자 조사는 신고 당일 한 차례에 그쳤다며 전면 재수사를 요구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명백한 증거 없이 진술만 있는 사건에선 사실상 고소인들이 물증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 수사가 지연되는 일이 다반사”라면서 “피해자는 답답하고 되레 피의자는 여유로운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수사관 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수사의 질이 확연히 차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이면서 범죄 피해자를 돕는 작가 김진주(필명)씨는 “피해자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가장 힘들어한다”며 “사건 접수 단계에서 피해자에게 범죄 일람표를 직접 정리해오라고 요구받지만 정작 수사 단계에선 진행 상황을 확인할 권한조차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에 대해 경찰 내에서는 “고소·고발인이나 피해자 측의 모든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지난 3월부터 법왜곡죄까지 시행되면서 경찰 수사관들은 고소·고발 부담까지 안게 돼 수사 현장의 어려움만 가중되고 있다는 호소도 있다.
이정헌 조민아 임송수 김다연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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