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그레나디어를 드디어 만났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대한민국 공식수입사 차봇모터스가 개최한 시승행사를 통해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적인 다국적화학기업, 이네오스 그룹의 자동차 사업부로 시작한, 신생 제조사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를 직접 시승하며 그 매력을 찬찬히 살펴보고자 한다. VAT 포함 차량 기본 가격은 1억 990만원.
이네오스 그레나디어의 외관은 마치 21세기에 재탄생한 20세기의 랜드로버 디펜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물론 전반적인 인상만 그러할 뿐, 실제로는 전혀 다른 디자인이다. 오히려 모티브가 된 디펜더에 비해서 더욱 군 기동차량과 같은 느낌을 준다. 차명인 그레나디어는 '척탄병(擲彈兵)'을 의미하는데, 이는 창업주인 제임스 레트클리프 본인이 차량의 구상을 위해 동료들과 의논했던 펍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전면부는 수직으로 서 있는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을 비롯해 도드라지게 돌출된 보닛이 특징이다. V자형으로 이루어진 라디에이터 그릴 양쪽으로는 대형의 원형 안개등이 자리한다. 또한 도드라지게 돌출된 범퍼를 지니고 있으며, 하단의 강철제 스키드 플레이트는 이 차가 대단히 '진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측면에서는 직선 그 자체인 실루엣을 보여준다. 그리고 측면에서는 정통 오프로더 다운 실용적인 면모들이 나타난다. 특히 상단에는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빗물받이까지 설치되어 있으며, 빗물받이 위쪽으로는 다용도 랙이 설치된다. 그리고 도어 및 쿼터패널에는 유틸리티 벨트가 마련되는데, 여기에는 캠핑 등, 다양한 아웃도어 활동에 사용되는 소품 및 장비들을 체결해 사용할 수 있다.
뒷모습은 심플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정통 오프로더로서의 요소들과 더불어 실용적인 측면들이 강조된 디테일들이 나타난다. 테일게이트에는 풀사이즈 스페어타이어가 설치되어 있으며 테일게이트는 3:7 비율로 열 수 있는 캐비닛 도어 형태로 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인테리어 역시 현대적인 SUV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레나디어의 인테리어에서 그나마 현대적인 요소를 찾는다면 대시보드 상단에 배치된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차내 기능들은 대부분이 물리 스위치와 다이얼 등으로 조작할 수 있으며, 그 배치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운전중에도 조작이 편하고 직관적이다. 전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서로 앞다투어 물리 버튼과 다이얼을 없애고 터치스크린에 구겨 넣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작금의 세태에서 그레나디어의 실내 구성은 역으로 반갑기까지 한 부분이다. 이 외에도 상단에 오버헤드 콘솔이 마련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조작 빈도가 낮은 기능들이 배치되어 있다.
레카로에서 생산하는 그레나디어의 앞좌석은 부드러우면서도 속이 단단한 느낌을 주는 착좌감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충분한 크기를 가져, 신체를 편안하게 지지해준다. 앞좌석의 조절은 모두 수동으로 하며, 양쪽에 열선기능만 제공한다. 이는 차내의 방수처리를 위해서라고 한다. 바닥재를 들어내면 바닥 물청소가 가능하다고 한다.
뒷좌석 역시 레카로에서 생산한다. 그레나디어의 뒷좌석 공간은 차량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넉넉하지는 않다. 헤드룸은 독특한 지붕의 형상 덕분에 의외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레그룸 자체는 약간 타이트한 편이다. 여기에 등받이의 각도가 상당히 서 있는 편인데다 리클라이닝 기능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뒷좌석 자체의 거주성은 아주 좋지는 않은 편이다.
짐공간은 매우 넉넉하다. 기본 적재용량만 1,152리터에 달하며,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무려 2,035리터에 달한다. 테일게이트는 최대 102도까지 열리며 너비는 1,255mm이다. 심지어 트렁크 내에는 고중량의 레저장비도 결속할 수 있는 앵커포인트까지 마련되어 있다.
국내 시장에 판매되는 그레나디어의 파워트레인은 BMW의 B58 직렬6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과 ZF의 8단 자동변속기, 그리고 기계식 저속 트랜스퍼케이스를 갖춘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한다. 엔진은 그레나디어를 위해 전용의 튜닝을 거친 유닛으로, 286마력/4,750rpm의 최고출력과 45.9kgf.m/1,750~4,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그레나디어의 시승행사는 오프로드 코스와 온로드 코스, 그리고 인제 한석산을 오르는 임도 주행코스로 이루어졌다.
먼저 인제 스피디움 내에 마련된 오프로드 파쿠르(Offroad Parcours)에 들어섰다. 오프로드 파쿠르는 차봇모터스와 인제스피디움 간의 협력을 통해 세워진 상설 오프로드 코스다. 본 코스는 오프로드 주행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악조건을 구현해 놓았다. 철길, 등판, 도강, 모굴 등의 다양한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 해당 조건에서 차량을 다루는 적절한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이 오프로드 코스는 상설 코스임에도 강도가 대단히 높다. 특히 각각의 코스마다 접근각과 이탈각은 기본적으로 높아야 할 뿐만 아니라, *램프각까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전반적으로 섀시에 가해지는 부담이 상당한 수준이다. 그레나디어는 접근각 35.5도, 이탈각은 36.1도, 램프각은 28.2도다.
*Ramp Breakover Angle. 차량이 앞/뒷바퀴 각도의 정점이 바퀴 이외에 차량의 어떠한 지점에도 닿지 않고 주행할 수 있는 최대 각도. 최저지상고를 높여야만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이 난이도 높은 코스들을 헛웃음마저 나올 정도로 간단하게 소화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강도 높은 코스를 진행하는 내내 섀시에 부담이 가해진다는 느낌을 단 0.1초도 안겨 주지 않았다. 오프로드 코스 주행을 하면서 이 정도로 섀시가 단단하게 버텨주는 느낌을 주는 차는 손에 꼽을 정도다. 또한 여기에 저속 트랜스퍼케이스에 전후륜 모두에 적용된 차동기어 잠금장치 등의 하드웨어가 충실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접지력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덕분에 급격한 경사로도, 접지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진창에서도, 심지어 바닥에 크고작은 돌들이 깔려 있는 도강 코스에서도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극강의 하드웨어로 모든 것을 간단히 해결해낸다. 심지어 이렇게 강도높은 코스를 지나는 동안에도 탑승자의 신체를 피곤하게 괴롭히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충격흡수능력도 돋보인다.
그렇다면 온로드에서는 어떨까?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온로드에서도 여느 고급 SUV 못지 않은 경험을 선사한다. 물론, 뼛속까지 정통 오프로더인 만큼, 일반도로에서는 몇 가지 블편한 점은 있다. 좌측 끝에서부터 우측 끝까지 3회전 가량 회전하는 스티어링 기어비 때문이다. 일반적인 승용차와는 다른 느낌이기 때문에 처음 운전할 때에는 조작에 신경을 써줘야 할 필요가 있다. 파워트레인 역시 철저하게 저회전 토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승용, 내지는 도심형 SUV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구동저항도 상당히 큰 편에 속하며, 가속페달의 조작감과 스로틀 응답성도 다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적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적응의 시간만 지나고 나면,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여느 최고급 SUV가 부럽지 않은 우수한 승차감과 정숙성을 보여준다. 특히 정숙성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공기역학적인 고려가 덜 돼있는 외관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풍절음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내장재에서 발생하는 잡음도 거의 없다. 또한 정숙성에서 일반 로드 타이어 대비 불리한 AT 타이어를 적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부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상당히 적은 편이다.
승차감 역시 뜻밖에 우수하다. 통상적으로 바디-온-프레임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정통 오프로더 SUV들은 승차감이 상대적으로 나쁘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이 편견을 깨버린다. 이렇게 우수한 승차감의 이면에는 엄청나게 단단한 섀시가 있다. 이렇게 단단한 섀시를 기초로 공들여 설계된 서스펜션이 3톤에 이르는 차체를 든든하게 떠받쳐주며, 노면으로부터 오는 모든 충격을 충실하게 걸러준다. 특히 인제스피디움에서 한석산으로 향하는 온로드 구간에서 그레나디어는 시승 내내 쾌적한 운행환경을 제공했다.
가속성능도 우수하다. 앞서 언급한 파워트레인의 특성과 공차중량만 2.7톤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저회전 토크를 중시하는 엔진과 짧은 기어비를 지닌 변속기 덕분에 다소의 묵직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동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45.9kgf.m의 최대토크가 아주 낮은 1,750rpm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덕분에 일상 운행에서도, 급가속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의외의 순발력을 제공한다.
다만 온로드에서의 코너링 면에서는 도심형 SUV에 비해 확실히 둔중한 모습을 보인다. 엄청난 몸무게와 더불어 정통 오프로더로서의 성격 등으로 인해 도심형 SUV의 감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운전하면 할수록 손목과 허리를 통해 기초부터 탄탄하게 잘 만들어진 자동차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경험했었던 정통파 오프로더들 가운데 가장 단단한 섀시가 만들어 내는 충실한 느낌은 각별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이어지는 한석산의 임도에서도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어느 것 하나 서투르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석산 정상까지 오르는 임도는 길이 좁은데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곳곳이 패여 있었기에 결코 녹록치 않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레나디어의 돌덩이처럼 단단한 섀시와 정교하게 설계된 하체,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모든 하드웨어는 거친 임도를 망설임 없이 치고 올라간다. 디지털 요소를 배제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만재한 그레나디어는 진정한 오프로더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번에 경험하게 된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그레나디어는 신생 제조사의 첫 차임에도 불구하고 그 완성도는 실로 놀라웠다. 정통 오프로더로서의 하드웨어를 충실하게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고전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여느 최신형 SUV 못지 않은, 아니, 그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SUV 전문 제조사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독보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자동차들이 디지털화가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레나디어의 존재는 더더욱 각별하게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실용적 가치에 집중하면서도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자동차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 일상생활에서도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수 있다. 이네오스 그레나디어는 진정한 오프로더를 원하는 이들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