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수건 꺼내 든 남자, 이어진 놀라운 행동

김관식 2024. 10. 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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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안방인 양 눕고, 다리 벌리고... '내 것'이 아닌 지하철 좌석, 배려가 필요하다

[김관식 기자]

"워매, 시방 즈이 뭐 하는 짓이여? 즈그집 안방도 아닌디."
"사람이 나이를 쳐묵으면 똑바로 살 것이지, 등산 가서 술 쳐묵고... 엥간치 하지."

입추가 지나도 여전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9월 6일, 오후 7시가 조금 지날 무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대화행 3호선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었다. 금요일 주말과 퇴근 시간이 겹쳐 지하철 내부는 다소 혼잡했다.

가방을 앞으로 둘러메고 총총걸음으로 안쪽으로 조금씩 스며들어 갔다. 그러자 바로 눈에 띄는 한 사람. 그는 3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에 가로로 누워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잠이 들어버린 듯했다. 그것도 '교통약자석'에서. 신발도 신은 채.

살짝 술 냄새도 피어났다. 차림새를 보니 등산을 다녀온 것으로 보인다. 등산 가서 파전에 막걸리도 한잔 마셨으리라. 다만, 그의 행실 하나에 그 자리는 '침대칸'이 돼버렸다. 이를 본 60대 아주머니 세 분이서 차라리 '그가 들으라고' 주고받는 말 같았다.

하루에도 수백 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다. 그만큼 상대에게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줄 수 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는 게 맞다. 최소한의 에티켓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개의치 않고 행동하는 이가 눈에 자주 띈다.

뉴욕에서는 체포까지... 지하철에서 제발 이러지 마세요
▲ 교통약자석. 주변의 시선이나 누군가의 비매너로 교통약자가 교통약자석을 이용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 한국교통안전공단
그가 드러누워 잠들었던 그 자리는 교통약자석이다. 사회적으로, 상대적으로도 배려를 받아야 하는 이를 위한 좌석이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제2조 제1호를 보면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이나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그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누워있으니 어찌 사람들이 한두 마디씩 거들지 않을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필자가 서울교통공사에 전화해 이 상황에 대해 문의해보니 "이에 관한 처벌조항이나 경범죄 스티커를 발부할 만한 강제성은 없다"면서도 "1577-1234(서울메트로의 경우)에 문자나 전화를 주시면 저희 직원들이 출동한다. 절대 시민분께서 먼저 대응하시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로부터 일주일가량 지났을까. 퇴근이 조금 늦은 저녁 8시 20분경. 서울 방배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향하는 2호선을 기다렸다. 열차가 도착, 스크린도어와 함께 문이 열리자 불편한 광경이 또 눈에 띄었다. 한 남성이 좌우를 비워둔 채 가운데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 두세 명이 서 있었으나 일부러 서서 가는 듯했다. 다음 역에서 한 승객이 그의 옆에 앉아 몇 번이고 그를 쳐다보며 눈치를 줬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휴대폰만 바라봤다.
▲ 가운데에서 다리를 벌려 앉은 한 승객. 3자리씩 끊어 앉을 수 있는 좌석의 가운데 다리를 벌려 앉으면 다음 시민이 앉기 불편하다. 반면, 바로 오른쪽 양복을 입은 이는 다리를 오므리고 있다.
ⓒ 김관식
최근 뉴스를 보니, 쩍벌남의 이유가 중년일 수록 많다는 의학적 이유로 '근육 감소'를 꼽고 있다. 허벅지 내회전 근육이 위축돼 다리를 모으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모든 사람이 자기 편하게 다리를 벌려 앉는 건 아니다. 게다가 주변에 수시로 불편을 주는 것은 물론, 자리를 애매하게 차지하는 바람에 도리어 다른 승객이 서서 가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또, 모두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다르겠지만 그 시간만이라도 주변을 배려하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던 일이다. 한 네티즌은 지하철에 불편하게 앉아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린 블로그 게시물에 이렇게 적었다.

"양쪽에 쩍벌남... 나도 남자인데 다소곳 ㅠㅠ "

기사를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쩍벌남에 대한 거친 반응과 대응이 대부분이다. 바지에 'STOP SPREADING(쩍 벌리지 마세요)'라는 글이 새겨 넣어 캠페인을 펼치는 이도 있다. 2015년 당시에는 뉴욕 경찰이 지하철 좌석에 앉아 심하게 다리를 벌린 남성 2명을 긴급 체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관련 기사 : 미 뉴욕 경찰, 지하철 '쩍벌남' 체포 https://omn.kr/dw0f). 그만큼 '쩍벌'은 사회적으로도 불편함을 넘어 혐오까지 불러온다.

'쩍벌'은 미관상 좋지 않은 것은 물론 필요 이상의 자리를 차지, 사회적 약자에게 불편함을 준다. 어느 심리학자는 이를 두고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고 자신을 높이려는 심리적 공격 행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되길
 서울지하철 3호선에 2015년 설치됐던 ‘하트 위로 발을 모으면 더 행복한 지하철!'이라는 내용이 담긴 하트 스티커
ⓒ 서울시 공식 페이스북
▲ '바르게 타기 캠페인' 스티커. 인천교통공사가 2020년 5월 20일부터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발을 모으면 행복해집니다'라는 문구처럼 쩍벌과 다꼬(다리를 꼬는 행위)를 예방하고자 하는 취지였고,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 인천교통공사
2020년 5월 20일. 인천교통공사는 서로 배려하는 지하철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바르게 타기 캠페인'을 추진했다. '전동차 좌석에 앉을 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옆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을 예방하는 취지'였다. 또, 다리를 꼬고 앉는 승객으로 인해 서서가는 승객에게 불편함을 끼치지 말자는 의도도 담았다.

그런 차원에서 인천교통공사는 발바닥 스티커를 제작해 인천1호선 열차 96개, 2호선 열차 160개 등 총 256개 전동차에 설치했다. 당시 인천교통공사는 "캠페인을 통해 시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하길 바란다"고 밝혔고, 시민들도 "전국 지하철과 버스에 도입해야 한다" "대중교통 불편함으로 디자인이 발전한다" "적어도 눈치는 볼 것"이라며 우호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앞서 먼저 시행했던 서울시와 인천교통공사 모두 현재는 이 캠페인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인천교통공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때는 시범사업이었을 뿐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면서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시간이 지나 스타커가 해지면서 미관상 보기도 좋지 않을 뿐더러, 매번 교체하려면 추가 사업 비용 책정도 필요해 중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끝으로, 지하철 9호선 중앙보훈병원역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시종착역이라 편하게 먼저 앉아 갈 수 있다. 그때 맞은 편에, 나와 동시에 자리에 앉은, 덩치가 좀 있는 남성의 행동에 눈길이 갔다.

그는 가방에서 기다란 타월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그러곤 다리를 오므려 그 위에 타월을 덮고 양 끝을 각각 허벅지 아래로 꾸욱 찔러 넣은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딱 어깨 너비 정도로. 난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런 사람도 있었다니. 아이디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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