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준 위로...걸출한 작가와의 작은 인연과 사적 소회
[조창완 기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전 때처럼 가능성을 전혀 예측조차 못한, 즉 그녀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할 생각조차 않았던 한국 언론들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노벨문학상은 당대 문제에 관심을 둔 참여 경향의 작가들을 선호했다. 물론 예술적 성취는 기본 전제였다. 그런 가능성 때문에 국내 작가에서는 고은 시인이나 황석영 작가가 자주 이야기됐다. 하지만 황 작가는 장편 중심의 스토리 전개, 고은 시인은 성추문에 휩싸였다는 등 점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 노벨상 홈페이지에 게시된 2024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
ⓒ 노벨상홈페이지 갈무리 |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80년 서울 수유동으로 이사하면서 광주를 떠났다. 하지만 그해 광주 민주화운동이 발생했고, 그 시절을 살았던 아이들은 그 무게를 머리나 어깨에 얹을 수밖에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샘터>사 기자로 일하다가, 시와 소설로 등단하면서 작가의 세계에 들어섰다. 작가는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했다.
내가 작가 한강을 인지한 것은 비교적 빨랐다. 나는 대학 졸업(1996년 2월) 논문을 '한국 페미니즘 연구'로 썼는데, 당시 활동하던 작가 22명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것이었다. 나는 나랑 동년배인 한강의 작품 '여수의 사랑'을 그 리스트에 넣고, 작품을 소개한 후 이렇게 평했다.
"한강은 최근에 문학과 지성에서 창작집을 발간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가이다. 그녀의 소설이 주목을 받는 가장 큰 동기 중 하나는 독특한 분위기가 주된 요인이 될 것이다. 신세대 작가 답지 않게 그녀는 70년대 최승자가 보여주는 듯한 삶의 어두운 구석에 대한 몰입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기에다 [작고 가벼운 우울]에 김우정과의 이런 의식은 문단에서 긍정과 부정적인 평판이 어느 정도 수렴된 뒤에 이제는 문명 사회의 어두운 의식에 관심이 보이면서 긍정적인 평가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한강 또한 신진 작가 이기 때문에 작가론적인 고찰은 어렵다. ..."
▲ 우리 집 책장에서 찾은 한강 책 대충 찾으니, 4권의 책이 보였다. <소년이 온다>는 초판본. |
ⓒ 조창완 |
"작가 한강은 그 백일홍의 냄새가 난다. 자신의 목을 베어버린 장수에 대한 용의 복수의 향기, 사랑하는 남자를 그리다가 그가 돌아오지 않자 목숨을 던지는 여인의 향기,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나게 하는(이 전설이 시기적으로 먼저리라) 오해의 향기. 그런 냄새들이 난다. 그녀의 소설은 읽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순간을 지나가며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만나면 내 정신은 산만해진다. 첫 단편집 '여수의 사랑'을 읽을 때도 중반정도를 읽다가 덮어버린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간간이 계간지를 통해 접하는 그녀는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묘하게 뒤집어가면서 흩어내는 기운들은 독자들을 안타깝게 하며 책을 끌어간다.
(...) 이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그 상처의 진원은 대부분 가족의 구조 속으로 축소된다. 아내의 가출, 언니의 실종, 동생의 방황과 가출 등, 다양하지만 사람들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상처받은 자들의 전형같은 소설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상처로 얼룩져 있고, 그들은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인다.
(...) 그녀의 소설은 소설 시장의 주된 타겟인 20대 직장여성들에게 소구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곳을 기점으로 교보, 종로, 영풍등에서 베스트셀러로 성장하고 국가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란다. 한강의 소설은 양귀자의 소설보다 좀 더 미묘한 선을 탄다. 한강의 소설은 팔리기 어려운 틀들을 가지고 있다. 이상한 생각이지만, 그녀의 소설이 얼마나 팔릴지 궁금하다. 20대 여성 독자층의 독서수준을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물론 극히 개인적으로."
내가 <미디어오늘>에서 기자로 일하던 1998년 어느날 나는 한 IT사업가(이희준 사장)의 요청으로 당시에 없던 문학웹진을 만든다. '문예평론'이라는 이름의 우리나라 초반기 웹진 중 하나였다. 편집장을 맡은 나는 하이텔 서평 공간의 권위(?)를 바탕으로 작가를 섭외해 인터뷰를 했다. 나희덕, 장철문, 김인숙 등 묘하게 연세대 출신 문인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한강 작가였다.
▲ 한강 작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들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다. 시민들이 추가로 진열된 소설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구입하고 있다. |
ⓒ 이정민 |
"69년생에 영광 태생인 내가 70년생 광주 태생인 그녀를 인터뷰 하고 난 뒤 묘한 샤머니즘의 기운을 느꼈다. 인터뷰에서 이야기 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작가에게 느껴지는 기운의 상당 부분은 80년 광주에서 연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비슷한 세대인 우리는 십대의 시작점에서 광주를 겪었고, 광주 청문회가 있었던 때 대학생이 된 나이였다.
어떻든 그런 심연을 뚫고 한강은 <소년이 온다>라는 걸출한 소설을 통해 80년 광주를 그녀의 방식으로 재현했다. <소년이 온다>를 만나기 전에는 임철우의 <봄날>이 가장 강한 인상을 주었다면 <소년이 온다> 속 '동호'는 또 다른 이미지로 광주를 각인시켰다."
나도 초판을 갖고 있는 2014년 5월 19일 출간작 <소년이 온다>는 작가가 당대 역사를 안겠다는 의지가 확실한 소설이다. 개인적 기억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1988년부터 진행된 5·18광주항쟁 청문회는 어쩔 수 없는 기억의 재생 시간이었다. 작가로서 가질 수밖에 없을 숙명이었다.
그것은 그때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잠시 시골집에 내려왔던 내 둘째누나(1963년생)나 풍문으로만 공포를 느꼈던 내 나이대들이 가진 깊은 절망이었다. 작가는 그것을 작품을 통해 풀어가야 하는 숙명이었다.
▲ 한강 작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들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다. 시민들이 책들을 구입하고 있다. |
ⓒ 이정민 |
다만 이후 <흰> 등을 발표하지만 작가로서는 부지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단 교수의 길에 들어선 게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한강 작가가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가 되면서 창작의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데보라 스미스의 탁월한 번역을 통해 한강의 작품이 해외에 소개되면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다행이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한강은 오십 중반에 접어들었다. 작가는 수상 소식을 들은 후 언론에 술을 먹지 못하는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자축하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우리 나이에 이제 찾을 수 있는 행복은 명예나 돈 보다는 가족끼리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나 역시 SNS를 통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아들'이야기로 대부분 채우는 것도 이런 이유다.
중년이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이들이 제주 4·3이나 80년 광주 같은 일들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가 본 사람들은 누구보다 그 비극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아이들이 낳을 애들은 어떨 것인가.
▲ 한강 작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들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다. 시민들이 책들을 구입하고 있다. |
ⓒ 이정민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강 노벨상에 숟가락 얹는 보수, 그들에게 필요한 염치
- 곳곳이 '한강' 바람..."감격스러운 일""블랙리스트 없어져야"
- 대통령님, 안동대에서 한 말 기억하시죠?
- [단독] 이화영 항소심 재판부, 이례적으로 24일 '변론종결' 예고
- 윤 대통령 '한강 노벨상 축전', 챗GPT로 썼다? AI 검사기 돌려보니
- [오마이포토2024] 박지향 "현재 한국 국민, 1940년대 영국 시민보다 못해" 발언 뭇매
- 여섯 살 첫째가 종이 접기로 알려준 육아 비법
- 북 "한국이 평양에 무인기 침투시켜 삐라 살포…중대한 군사적 도발"
- 김동연 "윤석열, '김건희' 대처 못 하면 국민 어퍼컷 맞을 것"
- 노벨 평화상에 일본 원폭 피해자 단체 니혼 히단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