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1위였는데…현 시점 일본에서 가장 씁쓸할 펀쿨섹좌 [일본人사이드]
초반 돌풍에 '신지로 피버' 신조어까지 생겼으나
정치인보다 '유명인사' 존재감 커
'펀쿨섹좌' 오명은 끝까지 발목
일본은 이번 주 새 총리가 선출됐습니다. 지난주 자민당 총재 선거가 열렸고, 의원내각제 일본에서 여당인 자민당 총재는 곧 총리가 되기 때문에 새로 선출된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총재가 지난 1일 자로 총리로 취임했죠.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시바 신임 총리나 전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의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일본 정치인의 인지도를 따지면 역대 최장수 총리이자 우익의 구심점이었던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 그리고 '펀쿨섹좌'로 불리는 고이즈미 신지로씨 가 더 높을 것 같은데요.
이번 일본 총재 선거가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모았던 이유도 아마 '펀쿨섹좌',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약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언론사 여론조사마다 1위를 달리면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차기 총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분석 기사가 일본 안팎으로 줄을 이었죠. 그러나 정작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결선투표조차 오르지 못하고 3위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시점 일본에서 가장 씁쓸한 사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일본 언론에서도 이시바 기사와 더불어 왜 여론조사 1위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패배했는지 원인 분석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많은 곳에서 이시바 관련 기사가 나가고 있으니 저는 이번 주 고배를 마신 고이즈미 신지로씨의 선거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론조사 1위…기대감 받으며 올라섰지만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출마설이 돌 때부터 주목받았던 인물입니다. 총재선거의 경우 초반에 추천인 20명을 확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는 출마에 필요한 추천인 20명도 확보하고 중진들과 연일 회동하며 세를 불려 나갔죠. 이번에 자민당은 아베 전 총리가 이끌던 '아베파' 등 파벌이 문제가 됐습니다만,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특정 계파 소속이 아닌 점이 한몫했습니다. 자민당 내 계파를 넘나들며 골고루 지지를 표명하는 의원들도 40명 이상 확보했다는 내용이 보도돼 순식간에 독보적인 신예로 올라서는 듯했습니다. 특히 자민당 내 특정 계파에 소속되지 않고 총리에 올랐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가 고이즈미 지지를 선언하면서 또 한 번 파란을 일으키죠.
TBS 등 각종 언론 여론조사에서도 이번에 당선된 이시바 신임 총재와 1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판세를 보였습니다. 출마 회견에서도 그는 젊은 피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며 자민당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쇄신의 이미지로 강렬한 인상을 줘서 한층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이런 돌풍을 일컫는 '신지로 피버'라는 말도 생겼죠. 이 때문에 일본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고이즈미가 진짜 총리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라는 기사나 게시글들이 꽤 올라오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제는 너무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 예선에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3위로 밀려났죠. 오히려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이 1위로 올라섰고 그 뒤를 이시바 신임 총재가 잇는 모습이었습니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2명만 결선 투표에 진출하기 때문에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자동 탈락이었죠. 그리고 이시바 신임 총재가 역전에 성공해 당권을 잡게 됩니다.
SNS와 언론이 만든 신지로 피버?
일본에서는 왜 고이즈미 전 환경상의 여론조사 1위 돌풍, '신지로 피버'에도 불구하고 실제 표심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정작 출마 회견 이후 선거운동 중반부터 표심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요.
마이니치신문은 그의 거리 연설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인터뷰하면서 이를 살펴봤습니다. 당시 취재에 응한 12명 중 3명만이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의 지지 의사는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잘 생겼으니 한번 보러 왔다', 'SNS 화제의 스타니까 인증샷 올리려고 보러 왔다'라고 응답했다고 해요.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내세운 정책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하니 대부분이 '잘 모른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정치인의 색깔이 많이 옅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또 아버지의 그림자도 한몫했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들이다 보니, 2세가 이를 다시 이어받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있던 것이죠. 마이니치는 "미국이나 중국 지도자랑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미디어가 사실상 인기를 만든 것이지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시민들의 혹평이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명한 '고이즈미 구문'은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우리나라에 고이즈미 전 환경상을 '펀쿨섹좌'로 알리게 한 것인데요. 환경상을 맡았던 당시 국제연합(UN) 기후변화정상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여해 "기후변화는 펀(Fun)하고 쿨(Cool)하고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모호한 말을 남겼죠. 일본에서도 X(옛 트위터)에 여전히 고이즈미 전 환경상 말투를 따라 하는 계정이 있을 정도로 사실상 거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으로 굳어졌습니다. 민감한 이슈에 제대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중언부언하거나, 애매모호하게 답변하는 태도가 신뢰감 구축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펀쿨섹좌 꼬리표는 2030 젊은 층에 소구하는데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총재 선거 결과를 뜯어보면 이를 알 수 있는데요,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 소속 국회의원과 당비를 납부한 일본 국적자인 당원, 그리고 자민당을 후원하는 정치단체 회원 당우 세 파트로 나눠 투표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투표의 경우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전체 3위를 기록했지만, 당원과 당원 투표수로 따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득표수가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이나 이시바 신임 총리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데다가 젊은 인구가 많은 도쿄 도심, 지바현, 사이타마현에서는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에게 거의 더블스코어로 지는 모습을 보이죠. 한마디로 일본 젊은이들의 표심에도 다가서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번 선거기간 토론회에서도 '대학에 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등의 발언으로 정치인 2세로 곱게 자란 당신이 무엇을 아느냐 등의 논란이 일기도 했었는데요.
고이즈미 부자를 오래 취재했던 논픽션 작가 도코이 켄이치씨는 "싸움에 능하고 승부 감각이 뛰어난 아버지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좀 다르다"며 "심지어 아직도 지방에 가면 본인 이름 고이즈미 신지로 대신 준이치로(아버지), 코타로(배우인 형)로 불리니 제 몫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명"이라고도 평했습니다.
여하튼 인지도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을 고이즈미 신지로씨였는데요. 아직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펀쿨섹좌 꼬리표를 잘라내기 위해서는 많은 쇄신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정치인이니까요 (끄덕).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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