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금융은 도넛구조…은행 회피전략이 만든 기형적 시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2일 금융위기의 책임과 관련, "시스템을 뒤흔든 파국은 언제나 거대 자본의 위험이 임계치를 넘어설 때 시작되었지만, 그 대가를 가장 가혹하게 치르는 건 역설적으로 가장 밑단의 개인"이라며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김 실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금융위기는 누가 만들었나: 절벽으로 설계된 도넛 시장' 이라는 제목의 글로 신용등급과 금리라는 숫자로 만들어진 금융시장의 비대칭을 조목조목 따졌다.
앞서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신용등급이라는 불완전한 과학'이라는 제목의 글에 이어진 두 번째 메시지다.
김 실장은 저축은행·레고랜드 등 국내 금융불안을 야기했던 사례들도 비슷한 현상을 불러일으켰다고 언급했다.
그는 "저축은행 사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무리한 질주가 멈춘 결과였고, 레고랜드 사태는 당연시되던 보증의 신뢰가 하룻밤 새 무너진 참사였다"며 "조선사 부실, ELS 등 파생상품의 몰락까지 시스템을 마비시킨 거대한 폭발은 언제나 자본의 최전선, 그들만의 정교한 설계와 모델 속에서 잉태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의 책임이 가벼웠다는 뜻이 아니다. 2000년대 초 신용카드 대란처럼 무분별한 소비가 사회적 홍역을 치르게 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부실'이었을 뿐, 금융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리는 '재앙'의 몸통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개인은 성실한 금융의 기초 토양에 가까웠다는 게 그의 얘기다.
김 실장은 "위기를 만든 몸통들은 '대마불사'의 논리로 살아남거나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뒤로 숨지만, 후폭풍은 대출 서류 한 장 들고 은행을 찾은 중저신용자들에게 향한다"며 "리스크 관리라는 명목하에 가장 먼저, 가장 서늘하게 문전박대당하는 건 늘 이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 기이한 비대칭은 신용등급과 금리라는 숫자로 그 민낯을 드러낸다"며 "상위 등급은 낮은 금리로 안온하게 자금을 조달하지만, 그 아래는 깎아지른 듯한 고금리의 절벽이 기다린다"고 썼다.
이어 "문제는 그 두 지점 사이가 크게 비어 있다는 것"이라며 "마치 가운데만 휑하게 뚫린 커다란 도넛 같다. 양극단에는 시장이 존재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사람이 머물러야 할 허리춤은 외면당한 채 방치돼있다"고 비유했다.
김 실장은 이를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의 편의주의와 회피전략에서 시작된 역설로 봤다.
그는 "신용점수 1점 차이로 1금융권의 문턱과 고금리 시장의 경계가 갈리는 건 통계의 과학이라기보다 운영의 편의를 위한 단순화에 가깝다"며 "삶의 위험은 완만한 오르막인데, 금융이 내놓는 답안지는 중간 계단이 통째로 빠져버린 끊어진 사다리"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건 금융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회피 전략' 때문"이라며 "은행에게 중간 지대는 가성비가 맞지 않는 구간"이라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데이터 깨끗한 우량 고객을 기계로 걸러내는 건 쉽고 싸다. 반대로 아주 높은 이자를 물려 리스크를 상쇄하는 고금리 시장도 나름의 수익 모델이 있다"며 "하지만 이 사람이 정말 갚을 의지가 있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금리를 조정해야 하는 구간은 품이 많이 든다. 리스크는 관리해야겠고 비용은 쓰기 싫으니, 그 구간을 다루지 않는 선택이 더 합리적으로 작동해 온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핀테크의 등장 조차도 은행이 포용하지 못하는 시장을 외면했다고 봤다.
김 실장은 "핀테크가 등장하면 이 구도가 깨질 줄 알았다. 하지만 정보가 늘어날수록 선별은 날카로워졌을지 모르나, '회피'라는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며 "데이터는 사람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더 우아하게 거절할 명분을 찾는 근거로 전락했다"고 했다.
이어 "결국 정부가 보증을 서고 금리를 낮추며 이 빈자리를 안간힘을 다해 메운다"며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일 뿐,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문제는 공급의 '양'이 아니라, 공급이 멈춰버린 그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실장은 재차 '왜 가장 어려운 사람이 가장 높은 금리를 내는가'라고 물었던 이재명 대통령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이같은 현상을 시장 경제의 자연스러운 결과로만 보기엔 석연치 않다고 봤다.
김 실장은 "금융이 국가의 면허를 받고, 공적 자금의 지원 아래 작동하는 제도적 산물이라면 지금의 이 처참한 결과 역시 철저히 '설계된 구조'의 산물"이라며 "위험은 연속적인데, 금융은 그걸 가차 없이 끊어버리고 그 경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며 시장 밖을 떠돈다면 이건 치밀하게 방치된 구조적 모순"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이 시스템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던지는 자백이자 반성"이라며 "우리가 만든 이 구조는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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