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45조원 청구서’… 합당한 분배냐 성장 족쇄냐

손재호,양윤선,이주은 2026. 4. 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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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성과의 역설] <2> 현금 일시불 보상의 함정


국내 반도체 ‘투톱’의 유례없는 호실적과 그에 따른 파격적 성과급은 단순한 ‘보너스’ 차원을 넘어 기업의 미래 경쟁력과 국가 경제 구조까지 연결되는 이슈로 부상했다. 수억원대 현금 보상 체계를 성과에 대한 ‘정당한 분배’로 볼 것인지, 아니면 미래 투자 동력을 담보로 한 ‘근시안적 소모’로 볼 것인지를 두고 공방도 일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하는 약 45조원 규모 성과급은 회사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 37조7000억원을 훌쩍 웃도는 수치이자 주주들에게 지급한 총배당금(11조1000억원)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서울의 한 대학교 반도체학과 교수는 22일 “반도체는 ‘기술 초격차’가 생존 조건인데, 미래를 위한 재원을 당장의 인건비로 소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내년에는 엔비디아를 제치고 영업이익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만큼 이에 걸맞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이익 분배에 주저하다가 국내 경쟁사는 물론 글로벌 빅테크에 우수 인재를 대거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삼성전자 내부에서 나온다.

사회적 쟁점으로까지 비화한 현 상황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진단과 해법이 갈린다. 다만 현금 일시불 지급 성격이 짙은 성과급 구조가 지속될 경우 노동시장 왜곡을 초래하고, 투자 유인을 감소시켜 기업의 장기 발전 역량을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현재 삼성전자 노조는 올해 전체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증권사 컨센서스(실적 전망치 평균)인 298조원을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회사가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할 금액은 약 44조7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노사 진통 끝에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기로 합의한 SK하이닉스 앞에도 20조원대 청구서가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얼마 전만 해도 SK하이닉스에서 삼성전자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성과급이 기업을 선택하는 기준이자 동기부여 일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승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1c D램(10나노급 6세대) 개발 관련 인력 상당수가 SK하이닉스로 이직했다”며 “이건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5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는 23일 경기도 평택사업장에서 조합원 3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투쟁 결의 대회를 열 예정이다. 노조는 ‘파업 시 30조원 손실’를 거론하며 사측을 압박하는 중이다.

문제는 ‘장치 산업’ 특성상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세대 공정 R&D와 설비 투자에 즉각 재투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년 천문학적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성과급은 자칫 미래를 위한 ‘장비’와 ‘인프라’ 구축의 발목을 잡는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고성능 컴퓨팅 등 첨단 산업 확산으로 인해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다"며 "이에 대응키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즉 대규모 투자는 필수"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R&D와 시설 투자비로 올해 약 110조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R&D에 역대 최대인 6조7325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는 그 몇 배 규모를 R&D와 설비 투자에 쏟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와 함께 기업의 성과는 자본을 댄 주주에게도 돌아가야 하는 게 원칙이다. 주주는 기업 성장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고 경영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임직원 성과급 규모가 주주환원 규모를 압도할 경우 국내외 투자자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건전한 자본시장에서 기업과 주주 간 신뢰가 확보돼 있어야 기업이 더 많은 주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그 돈으로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주식을 10년 넘게 들고 있는 직장인 A씨(42)는 "지난해 배당의 네 배에 달하는 돈을 성과급으로 뿌리는 건 주주 입장에선 반갑지 않다"고 말했다.

성과급 지급을 둘러싼 논란은 반도체를 넘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전년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 10조3648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약 3조1000억원 규모다. 최창환 한양대 반도체특성화대학원 반도체공학과 학과장은 "SK하이닉스도 고심해서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주기로 결정했겠지만 정교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우리 산업에 끼치는 파급 효과가 상당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받는 순간 효력이 끝나는 '현금 일시불' 보상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업이익 일정 비율을 매년 성과급으로 한 번에 지급하는 건 호황기에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지만 침체 국면에선 노사 간 신뢰를 흔드는 위협 요소로 변모할 수도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노사가 함께 장기적인 성과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100% 달성했을 때 이윤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나누는 '목표 공유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현재의 성과급 체제는 '한탕주의'를 부추기는 경향이 짙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가치가 오르면 개인이 얻는 보상도 늘어나는 주식 기반 보상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손재호 양윤선 이주은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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